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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공습한 우주선, 1997년생 감독의 '엉뚱한' 상상

[김성호의 씨네만세 504] 제27회 BIFAN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23.07.04 17:59최종업데이트23.07.0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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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27회째를 맞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한국에서 드물게 뿌리를 내린 영화축제다. 적잖은 영화제가 저만의 색깔을 내지 못하고 지자체 지원으로 연명해온 현실 속에서 분명한 스타일과 품격을 가진 점이 높게 평가된다. 강릉과 평창, 인디다큐페스티발 등 여러 영화제가 속속 폐지되거나 중단되어온 근래의 흐름 가운데 이 영화제의 건재함은 지켜보는 영화 팬들의 마음을 든든하게 한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가장 큰 특징은 독특함이다. 색깔 있는 저예산 독립영화를 우대해온 정책이 꼭 그러한 작품들의 모집으로 이어져 독특하고 선명한 영화가 매년 모여든다는 평가다. 올해도 그런 작품이 적지 않아 개막 이후 이어지는 영화팬들의 발길을 붙들고 있다.
 
흔히 단편영화는 전문적인 영화 연출자를 검증해내는 등용문이라 불린다. 10분에서 30분 가량의 러닝타임을 가진 단편영화는 장편에 비해 제작비가 크게 적기에 젊고 열정 있는 연출자들이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짧은 단편 가운데서 제가 지닌 연출적 재능을 검증받은 작가는 더 좋은 연출기회를 보장받게 되기도 한다.

현 시점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출자로 꼽히는 데미언 셔젤 역시 단편 <위플래시>가 선댄스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으며 장편을 제작했고, <라라랜드>와 <바빌론>으로 이어지는 시대적 역작을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영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포스터 ⓒ BIFAN

 
부천판타스틱이란 이름에 딱 어울리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주목받는 섹션으로 많은 이들이 '코리안 판타스틱: 단편'을 꼽는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다. 이 영화제가 가진 독특한 색깔과 아직 대중에겐 생소한 젊은 작가들의 날 것 그대로의 단편이 만나 발현되는 색채를 영화팬들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는 1997년생 젊은 감독 정인혁의 신작이다. 흔히 키치적이라 불리는 정제되지 않은 독특한 분위기 가운데 B급 유머와 병맛 연출을 적극 시도하는 그의 스타일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와 절묘하게 어우러진다며 기대를 받았다. 전작인 <냉장고 속의 아빠>나 <틴더시대 사랑> 등도 특정한 팬들에게 호응을 자아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영화제 단편 가운데 주목할 만한 작품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다고 하겠다.
 
실제로 영화제를 찾은 이들 가운데 여럿이 감독의 전작을 보고 이 섹션을 골랐다고 답하기도 했으니 장편을 만들기도 전에 팬덤을 얻은 드문 감독이라 평해도 부족하지 않을 듯하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는 한국에선 그리 흔하지 않은 SF 영화다. 지구를 공습한 우주선 탓에 인류가 멸망의 위기로 치닫는 와중, 한 대학교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학교엔 지구를 수호하려는 한 여성이 있고, 또 그녀에게 은근히 마음을 품은 또 다른 여성이 있다. 철학동아리 친구들은 외계인의 공습 가운데 일대 혼란에 빠지고, 그 혼란 속에서도 저만의 마음을 따라 움직이는 여성의 모습이 그려진다.
 

영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스틸컷 ⓒ BIFAN

 
모든 이의 인정따윈 필요 없어!
 
사실 줄거리가 그리 중요한 영화는 못된다. 시종일관 어딘지 들뜬 분위기 속에서 수다스럽고 난잡하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관객에게 어느 한 대목에 차분히 집중할 수 없도록 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온갖 소품이며 설정, 대사들은 시대성을 반영한 무엇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또 그와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무의미와 의미가 마주 닿고 온갖 것을 조롱하기도 숭배하기도 하는 이야기 가운데서 결국한 한 사람과 다른 존재의 만남과 사랑만이 영화의 궁극적 관심으로 이어진다.
 
처음부터 각오한 바이겠으나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는 모든 이에게 호응을 이끌어낼 만한 작품이 되진 못했다. 산만하고 난잡하며 일부 연출에 있어 조잡하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듯하다.

그러나 사랑과 모험, 위험과 환상, 그밖에도 온갖 독특한 특징을 영화의 군데군데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오랫동안 관심을 두어온 그만의 특징과 이 영화는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동기들을 피하여 마침내 외계인의 손을 붙든다. 키치적이고 컬트적이라 불리는 많은 영화들 또한 저를 인정하지 않는 대중을 벗어나 저에게 열광하는 관객들과 만난다.

산만하고 난잡하며 누군가는 조잡하다고 평가할지라도 그것을 밀고 나가면 저만의 색깔이 된다는 것을 이미 이 영화제는 보여주었다. 어쩌면 1997년생 젊은 감독의 미래도 그와 같은 것일지 모르겠다.
 
요컨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올해도 어김없이 판타스틱하다.
 

영화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스틸컷 ⓒ BIFAN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가슴이 터질 것만 같아! BIFAN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정인혁 김성호의 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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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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