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4 04:50최종 업데이트 23.07.14 0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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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서울의 한 고등학교 교실 풍경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쏘아 올린 수능 '킬러 문항' 논란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킬러문항'은 초고난도 문항으로서, 정답률이 한 자릿수에 가깝고, 문제 풀이 시간이 과도하게 많이 걸리며, 성취기준을 2~3개 이상 결합하기 때문에 상위권 학생들의 합격 유무가 여기서 결판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문항은 사교육 의존도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만약에 고교 교육과정의 범위를 넘어선 문항이 논술이든 수능이든 내신이든 출제되었다면 정의롭고 공정한 입시로 보기 어렵다. 킬러 문항이 갖는 반교육적 의미와 불공정의 문제를 생각해 본다면, 말만 그럴듯하게 하는 것보다 체감할 만한 하나의 문제를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시절 미래 교육의 관점에서 고교학점제를 도입한다고 해놓고, 정시 확대를 관철시킨 당시 청와대의 참모진과 일부 민주당 국회의원들에 비하면 윤석열 정부는 킬러 문항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할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정책적 의미가 있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랩공공장과 함께 '2020~2023학년도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정시모집 합격자'를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정시모집으로 합격한 학생들의 지역 분포를 보면 서울과 경기 지역 학생들은 71.6%에 달했으며, 고3 재학생은 36.0%에 불과했고, N수생은 61.2%를 차지했다.

수능으로 들어온 학생들은 대학에 합격을 해도 상위권 대학과 의대 진학을 위해 반수와 재수를 하면서 대학을 이탈하기도 한다. 그 한사람을 뽑기 위한 대학의 노력은 무의미해지고, 그 자리를 간절히 사모했지만 경쟁에서 탈락했던 누군가의 기회는 사라진다. 낭비도 이런 낭비가 없다.

수능 비중 확대가 만든 현실
 

2024학년도 수능 대비 7월 전국연합학력평가가 시행된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 경복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 준비를 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정시 확대 이후로 고3 교실은 더욱 어려워졌으며, 이제는 1학기부터 대놓고 학교에 나오지 않으려는 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학업중단숙려제를 활용하여 학교에 나오지 않고, 학원으로 가버린다. 학교 현장에 알려진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방에 있는 일반고에서는 수능으로 대학을 갈 수 있는 학생들이 몇 명 되지 않는다'는 말이 현장에서 나온다. 수능 확대는 지역 격차와 계층 격차로 이어진다. 좋은 용어와 철학은 개정 교육과정에 다 들어가 있지만, 수능 앞에서 교육과정의 목적과 가치는 오지선다형 문항 앞에 멈추어 선다. 수능이 공정하다면서 정시확대를 외쳤던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 참모진과 일부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침묵하고 있다. 그 이름을 실명 거론하면서 이 지면에 공개하려다가 꾹 참는다.

윤석열 대통령이 꺼낸 수능 '킬러문항'은 좋은 정책적 의제였으나 풀어가는 방식은 거칠었다. 마치 '두더지 잡기' 게임을 보는 듯하다. 대통령실의 메시지는 계속 바뀌었고, 사정의 칼끝은 급기야 학원가와 일타강사 세무조사로 향했다. 하나의 정책이 성공을 하려면 그 목표와 의미에 대해서 정책 추진자와 수혜자가 공감해야 하는데, 메시지는 난무하나 그래서 무엇을 하고자하는 것인지 오리무중이다. 의제 형성의 시기·방법·전략에서 준비되지 않았고, 적절하지 않았으며, 혼란만 가중되었다.

사실 지금 더욱 중요한 것은 2028 대입안이다. 2025년부터는 2022개정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가 전면 도입된다. 2025년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는 학생들이 치러야 할 2028 대입안은 4년 예고제를 감안한다면 올해 발표해야 한다. 한 번 대입안이 발표되면 거의 10년은 유지되기 때문에 대통령실과 교육부는 2028 대입안에 보다 많은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그런데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취임 직후에 대입 개편안의 미세조정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중장기 방안에 대해서는 미세 조정한다고 말하고, 당장 닥친 올해의 대입안에 대해서는 '킬러문항'을 잡는다며, 교육부 국장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까지 경질했다. 최소한 올해 초라도 수능 기조를 어떻게 가져가겠다고 예고라도 제대로 했어야 하지 않는가? 킬러 문항은 올해 초 정도에 고난도 수능 문항은 배제하겠다는 출제 방침만 밝혔어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일의 경중과 순서가 바뀌어도 한참 바뀌었다.

'닥치고 수능'을 말하기 전에 따져볼 점

우리는 대입안을 이야기할 때, '닥수'(닥치고 수능)를 기계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정은 곧 수능'이라는 논리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의 입시에서 여러 맥락을 고려하다 보면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여러 가지를 따져가며 2028 대입안을 모색할 때, 최소한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원칙이 있다.

첫째, 대학의 상황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이다. 우선은 대입 양극화 구조를 봐야 한다. 소위 서울권 대학을 선호하는 경향은 여전히 강하고, 지방 대학은 사립대학은 물론 국공립도 학생 충원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응시인원을 보면, 2000년에 89만 8천명에 이르렀으나 2023 수능 응시자는 44만 8천여 명으로 떨어졌다. 대교협이 발표한 2025년 4년제 대학 모집 인원은 34만 844명이며, 전문대 모집인원은 16만 3473명에 달한다. 대학 선발 인원보다 지원자 수가 훨씬 적다. 대입 경쟁률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으며, 모집 인원을 채우지 못해 추가 모집을 해야 하는 대학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두 번째로는 대학의 자율성이다. 생존 경쟁에 놓여있는 대학으로서는 학생을 잘 선발해야 생존할 수 있고,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 많은 대학에서는 수능 성적이 우수하냐 보다는 대학과 전공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공부를 하는 학생을 선발하기를 원한다. 대학 스스로 세운 인재상이 있다면 그에 부합하는 인재를 선발하고, 잘 성장시켜야 한다. A 학생은 수능 성적은 엄청 좋은데 학생회와 봉사활동 등을 거의 하지 않았으며, 학교폭력 가해자였다. B 학생은 수능 성적은 다소 떨어지지만 학생회와 봉사활동을 성실하게 참여하였으며, 또래 간 갈등을 중재한 리더십 발휘 경험을 가졌다. 공정성을 이유로 무조건 A학생을 뽑아야 하는가?

대학의 선발철학이 있다면 B 학생을 뽑을 수도 있을 것이며,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대학의 자율성이다. 물론, 그 자율성을 악용하여 부정입학을 했던 과거의 사례를 반복해서는 곤란하다. 공공성과 투명성, 윤리성, 신뢰성, 전문성의 가치를 전제하면서 대학 선발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

셋째, 다양성이다. 대학마다, 학과마다 상황과 처지가 다르다. 수도권과 지방, 특목고와 일반고 역시 마찬가지이다. 학생들 역시 내신, 수능, 실기, 종합적인 학교생활 등 각자의 강점 영역이 다르다. 그것을 인정한다면 다양한 강점 트랙 내에서 공정성을 요구해야 한다. 일률적인 하나의 잣대만으로 대학 전형을 표준화하는 방식은 위험을 넘어 폭력에 가깝다.

넷째, 고교교육과 대학입학의 연계성을 강화해야 한다. 고교교육의 과정을 충실히 이행하면 대입 결과도 역시 좋아야 한다. 교육과정과 수업평가를 혁신하면 생활기록부의 질이 당연히 좋아지게 되고, 학생들은 교육과정을 통한 성장스토리를 축적하게 된다. 수능 킬러 문항 논쟁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교 교육과정과 대입 제도의 전형 방식이 제대로 연계되지 않은 결과물이며, 사교육은 그 빈틈을 파고든 것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지 않을까?

수능과 내신 절대평가, 수시·정시 통합으로 새로운 대입 패러다임을 열자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지난달 26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발표한 뒤 기자들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권우성

 
이러한 원칙을 고려한다면 상대평가를 전가의 보도로 여기는 관점에서 탈피해야 한다. 지금이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를 도입할 수 있는 적기이다. 앞으로 상당수의 대학이 수능 최저학력 기준을 낮추거나 없앨 것으로 예상한다. 굳이 수능 최저등급을 걸어서 지원 인력 풀을 제한할 이유가 없다. 지원 풀을 넓혀 놓고, 선발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 내신과 수능의 절대평가 도입을 본격적으로 논의하자.

그 논의의 첫 출발은 수학능력시험을 어떤 성격으로 규정하는가에 달려있다. 소수점 넷째 자리까지 촘촘한 변별을 위한 도구로서, 수능은 30년간 그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 이 수능 체제를 앞으로도 계속 끌고 가야 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는 이 문제에 더 집착해야 한다. 나는 수능 9등급(절대평가)과 내신 절대평가제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수능 5등급제라든지 수능자격고사화도 가능하다고 보지만, 연착륙을 위해 우선 수능 9등급제를 검토할 것을 제안한다. 대다수의 대학에서는 수능 등급제를 적용해도 학생 선발에 큰 문제는 없다. 이는 상위권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수능을 절대평가를 적용한 영어 과목을 기준으로 보면, 2023학년도 1등급은 7.83%로서 3만4830명 정도이다. 서울의 16개 대학 인원에서 수시를 제외한 2024 대입 정시 모집 인원은 대략 2만 1986명 정도이다.

모든 과목에서 1등급을 맞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여기에 다른 과목을 추가하면 수능 절대평가 전환으로도 상위권 학생의 변별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별에 문제가 생기면, 내신의 정량 요소와 정성 평가를 선발 기준에 포함하면 된다.

동시에, 전공에 특화된 수능 과목 내지는 내신 교과 과목에 가중치를 주거나 가산점을 주면 된다. 필요시, 생활기록부의 기록을 중심으로 한 심층 면접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수능 9등급제를 거쳐 궁극적으로 수능 5등급제라든지, 대학입학 자격고사화를 도모할 수 있다. 대학교에 와서 공부할 수 있는 기본 학습 능력을 확인하는 차원으로 수학능력시험의 성격을 바꾸어야 한다.

동시에, 수시와 정시의 통합을 모색해보자. 고3 교실은 수시 접수에 들어가게 되면 상당히 어수선해진다. 수능 이후부터 원서접수와 전형을 시작하자. 학생부종합전형군, 실기중심전형군, 교과중심전형군, 수능중심전형군으로 나누고, 지원 횟수를 현행보다 약간 줄이면 된다. 수능이 필요 없는 전형은 수능 직후에 바로 전형을 시행해도 문제가 없다.

수능 중심 전형과 교과 전형은 정량 중심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선발에 어려움은 없다. 서류전형과 면접 등이 포함된 학생부종합전형 시간만 확보할 수 있다면 수·정시 통합이 불가능할 것도 없다. 필요하다면, 추가합격 등으로 인한 연쇄 이동 등을 고려하여 대학의 개강일을 1~2주 늦출 수도 있을 것이다. 나아가. 고교학점제를 고려한다면 수능은 1학년 때 배우는 공통과목 중심으로 구성하되, 필요시 영역별로 선택 과목을 볼 수 있게 하면 된다. 일부 대학에서는 전공별로 선택과목 점수를 요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논의를 막는 그 씨앗은 불신에서 시작된다. 우리나라의 대입 제도는 공교육 정상화, 대학 선발의 자율성, 국가가 관리하는 표준화된 평가에서 나오는 공정성의 세 가치가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다. 과거에 부정입학과 같은 자율성을 악용한 사례가 나오게 되면서 국가의 관리 체계가 강화되었다. 불신의 관점에서 대입 제도를 볼 것인가? 신뢰의 관점에서 대입제도를 볼 것인가? 후자의 관점으로 설계하고, 대신 신뢰성과 투명성,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요구해야 하지 않을까?

*필자 소개: 김성천은 경기도교육연구원 연구위원과 경기도교육청 장학사, 교육부 교육연구사를 거쳐 현재 한국교원대 교육정책전문대학원 부교수로 근무하고 있다.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며 학습공동체를 이끌고 있다. <고교학점제란 무엇인가>(공저), <소환된 미래교육>(공저), <교육자치시대의 인사제도혁신>(공저), <융합교육으로 미래교육의 길을 찾다>(공저)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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