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7 15:33최종 업데이트 24.03.27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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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네트워크 넥스트 브릿지(Next Bridge)는 지식경제, 기후, 디지털,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 등 전환의 시대를 직면하여 비전과 정책과제를 연구하는 포스트 386 세대(90년대 대학을 다닌 사람에서 90년대생 청년) 중심의 연구자·정책 전문가의 공공정책 네트워크다. 넥스트 브릿지는 주권자인 국민들이 사회 지향과 정책과제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산업화와 민주화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와 사회발전이 가능하다는 데 뜻을 모았다. 정책담론을 위한 대중적인 소통을 희망하며 다양한 분야의 정책 전문가들이 자기 분야의 정책과제를 가지고 매주 정책 칼럼을 연재한다.[편집자말]
세계를 팬데믹에 몰아넣었던 코로나19는 한국의 디지털 기술과 사회망이 얼마나 선진적인지를 잘 보여주며 세계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그러나 코로나19는 '사회적 고립'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일깨우는 계기이기도 했다.

특히 최근 청년 고립이 사회적 문제로 떠올랐다. 국무조정실이 2023년 5월에 발표한 '2022 청년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제한된 공간에서 살아가는 은둔 청년은 약 24.7만 명(청년 중 약 2.4%)으로 추정되며, 보건복지부는 전체 고립·은둔 청년 규모를 약 51.6만 명(청년 중 약 5%)으로 추정하고 있다. 청년 100명 중 5명이 고립 청년이다.

청년과 고립,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의 만남
 

고립 청년 개념의 위치 (출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 모형 개발 연구」 p.19) ⓒ 김성아 외(2022)

 
필자는 복지·행정 연구자로 사회적 관계에서 배제된 청년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왔다. '고립' 또는 '은둔'이란 꼬리표를 붙이고 만나게 되니, 나의 인터뷰가 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은 아닌지 항상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 나의 우려와 달리 이들은 보통의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고립과 은둔이란 단어가 이들을 재단하고 있었고, 나 역시 이들은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란 선입견에 갇혀있었다.

일반적으로 청년이라는 단어는 통상 활발하고, 도전적이고, 생기있고, 진취적인 의미로 다가온다. 반면, 고립이라는 단어는 소극적이고, 배타적이고, 부정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상반된 2개의 단어가 합쳐져 고립 청년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우리에게 선입견을 주고 있다. 사회적 관계망이 부족한 청년들을 '고립 청년'으로 부르는데, 활발히 활동할 시기인 청년들에게 고립이라는 단어가 붙는 상황은 부자연스럽다.


'고립'이라는 용어는 다른 단어들과 연결되어 있다. 유사 개념인 '은둔', 직업훈련이나 구직활동을 하지 않는 '니트'(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등과 혼재되어 있다. 단 엄밀하게 고립과 은둔, 니트는 다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사업 모형 개발 연구>에서 니트는 경제활동 여부로 한정하고, 고립과 은둔은 경제활동이 아닌, 사회적 관계와 외출 등의 수준으로 구분한다. 고립은 사회적 관계 자본이 결핍되고, 은둔은 이러한 고립 청년 중 외출 부재가 겹친 상태로 고립의 하위 개념으로 접근한다.

필자가 소위 고립 또는 은둔 청년들을 인터뷰하면서 느낀 가장 중요한 질문은 "다양한 선택지가 있는 이들은 왜 고립을 선택하였는가? 아니면 이들은 선택할 수 없는 상황으로 내몰려 고립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국가와 사회가 함께 던지고, 함께 답을 찾아야 할 질문이다.  

새로운 정책, 새로운 성과관리 방식이 수반돼야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이 지난해 12월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고립·은둔 청년 지원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다행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여러 정책 수단이 마련되고 있다. '고립·은둔 청년'에 대해 17개 시·도 광역의회가 조례를 제정한 데 이어, 최근 창원시에서 고립·은둔 청년 정책을 발표하는 등 고립·은둔 청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도 지난해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에 이어, 12월에 '고립·은둔 청년 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여러 정책이 있으나, 핵심은 광역시·도에 '청년미래센터'(가칭)를 설립하여 취약청년을 전담하는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이다. 여기서 취약청년은 '가족돌봄 청년'과 '고립·은둔 청년' 등을 가리킨다. 그리고 올해(2024년)는 4개 광역시·도를 선발하여 시범사업을 해보고, 이후 전국까지 확대하여 고립 청년을 돕는다는 개념이다. 청년미래센터에서 수행할 고립 청년 대상의 주요 프로그램은 '상담', '일상회복', '관계회복', '일 경험' 등이다. 고립·은둔 청년 문제에 대해 연구하는 한 사람으로 중앙정부가 '고립'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위험에 대책을 마련했다는 점은 늦었지만 반갑고 고무적이다.

고립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 만큼 공적 해결을 위한 정책적 지원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러한 지원에 앞서 여러 측면에서 고민할 사안들이 많다. 특히 고립 청년의 지원사업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점은 '사업의 성과관리'이다. 정부의 고립·은둔 청년 지원 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부 정책과는 다른 성과관리 접근법이 필요하다.

공적 예산이 투입되는 만큼 이를 관리할 성과는 중요하다. 그런데 고립 대상의 정책은 성과관리가 매우 어렵다. 고립 청년 대상 정책의 성과관리는 주체의 특성으로 다른 정책의 성과관리와 달라야 한다. 고립·은둔 청년 대상으로 오랜 기간 사회운동을 해오신 한 단체 대표의 말에 따르면, 고립 청년이 사회에 나와 적응하기 위해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들이 필요할 때 바로 상담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이 사회적 관계 기술을 배우고 그 관계망에 녹아들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즉 정책 대상자에 따라서나 맞춤정책이 필요하고, 변화와 적응을 위해서 필요한 시간도 사람마다 다르고 길다. 그러나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정책의 성과관리는 1년 단위이거나, 프로젝트 진행 중간 혹은 마무리 시점에 이루어지는 등 성과관리 기간이 짧고 획일적이다. 그리고 성과관리 기준과 방식도 고립 청년의 사례에 맞춘 질적 접근은 부족하고, 고립 청년의 정책 성과를 취업 횟수로 설정한 한 지자체의 사례처럼 획일적인 정량적 접근이 주를 이룬다. 획일적이고 정량적으로 접근한 경우, 성과가 나오지 않아 2년 만에 관련 사업을 중단한 경우도 있다.

2024년 2월에 보건복지부는 <2024 新취약청년 전담지원 시범사업 수행지역 공모 선정계획(안)>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안)은 앞서 언급한 '청년미래센터'의 운영을 위한 4개의 광역시·도에 시범사업을 실시할 계획(안)이다. 필자가 교류하는 복지 연구자들은 다른 것은 몰라도 현 정부가 고립·은둔에 천착한 다양한 정책적 방안을 마련한 것은 잘했다고 평가한다. 필자 역시 복지의 필수요소인 관계망 확충이라는 점에서 현 정부가 이것 하나는 잘 잡았다고 여긴다. 그럼에도 지금의 '청년미래센터' 사업이 고립 청년을 사회적 관계망 속으로 진정 녹아들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지게 된다.

이를테면 현 정부가 우주과학기술의 증진을 위해 2045년까지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한 정책과 다르게 고립 청년과 연관된 정책은 단편적인 색채를 짙게 나타낸다. 올해 정부는 우주항공청을 개청하기 위해서 관련 특별법을 제정하였고, 조직·예산·인사 측면에서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여 시행하고 있다.

우주항공청을 설립하여 2032년에 달 착륙, 2045년에는 화성 탐사 목표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마련하였다. 우주항공청 채용을 위해 대통령의 연봉을 넘는 수준의 처우를 대우하며 우수한 인력을 선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국의 미래 먹거리를 위한 장기적인 투자라는 측면에서 필자 역시 우주과학 기술 투자에 긍정적이다. 다만, 이와 비교하여 고립 청년 지원 정책은 지자체 중심으로 진행해 오다가 중앙정부가 기존의 사회적 안전망 체계에 '청년미래센터'를 설립하는 방식이다. 잘 마련된 식탁에 숟가락을 놓는 대응 방식을 취하고 있다.

고립은 개인의 심리적 문제도 있지만, 개인이 고립될 수밖에 없는 환경의 문제나 사회적 문제 등 여러 원인이 있을 것이다. 어느 한 지점의 문제가 풀린다고 고립의 문제가 전체적으로 풀릴 수 없다. 따라서 고립과 관련된 사회적 위험을 적절히 관리하기 위해선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행정의 효율성을 위해 예산 집행률이나 사업의 진행에 관한 횟수 등에 방점을 둔 성과관리는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고립 청년 대상의 정책적 방향성은 여타의 정책과 달라야 한다. '청년미래센터'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정책 도구들이 나와야 한다.

사람의 성장을 위해 지원하는 정책은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가령,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에서 노벨상을 타지 못하는 다양한 이유 중의 하나를 단기성과에 급급한 연구비 지원으로 꼽는다. 물론 노벨상 수상이 기초과학의 수준을 판가름하는 잣대가 아니라는 비판도 있다. 그러나 명목 국내총생산(GDP) 순으로 10위권에 있는 국가가 과학 분야에서 권위 있는 상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우리나라 연구비 지원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이러한 현상은 고립 청년 지원 정책의 성과관리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한다.

향후 청년 정책의 중요한 축을 담당할 고립의 문제는 정부가 지원은 하되 관여하지 않고,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전문가들의 판단에 맡기는 관리가 필요해 보인다. 어떤 지자체에서 고립 청년의 문제를 취업 횟수로 성과를 관리하거나 2년 동안의 사업 기간 내에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사업을 중단할 경우, 고립 문제는 더욱 공고해지고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으로 남을 것이다.

따라서 획일적이고 정량 지표 중심의 관리가 아닌, '청년미래센터'나 사업의 활동 내역을 보고하고 그 보고를 평가하는 주체를 정부가 하면 안 된다. 이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면서 전문적인 성격을 지닌 위원회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이를 토대로 평가가 아닌 모니터링을 해야 하며, 저성과라고 판단되는 기관이나 사업은 중단하지 않고 오히려 잘 될 수 있도록 독려하고 컨설팅해야 한다. 이러한 체계는 논쟁적일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가 고립 청년의 문제를 공적으로 접근하되 성과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한 사람을 세우기 위한 사회적 관심이라는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이다.

고립의 시대,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고립 청년의 문제는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 Unsplash

 
현재 고립의 늪에 빠진 청년의 문제는 청년시기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고립 청년은 향후 중장년이 되고 노년이 된다. 일본의 히키코모리가 젊은 층에 집중되다가 이제는 중장년과 노년 세대까지 등장하고 있는 점은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오늘날 고립은 청년세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란 점이다. 코로나19로 부각된 사회적 고립 문제는 이제 우리 사회에 드리운 새로운 사회적 위험이다. 2020년에 사회적으로 고립되었던 성북구 네 모녀 죽음이나 2022년 수원 세 모녀 사망 사건처럼 고립된 사람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노인의 사회적 고립 문제나 독거노인의 우울증과 고독사는 양극화와 고령화에 직면한 현실을 생각하면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인구감소 문제의 원인은 저출산이란 현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사회적 불안에 있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사회양극화 해소를 포함해서 지금 살고 있는 이들이 잘 살게 만드는 사회적 구조가 정착하지 못한다면 고립도, 저출산도, 인구감소도 막을 길은 막막하다. 그리고 정부의 사회정책과 복지정책은 더 따뜻하고, 더 세심하고, 더 지속적일 때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공공기관 연구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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