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7.19 13:34최종 업데이트 23.07.1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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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자말]

14일 최신테크기술을 체험할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단장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비더비(B the B)에서 방문객들이 AI 바리스타 로봇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야기가 나온 지 이미 10년이 넘었다. 이제 디지털 전환의 속도는 연구자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빨라지고 있다. 지난 6개월 동안 우리는 새로운 풍경을 접했다. 바로 대화형 인공지능(AI) 챗봇인 챗GPT를 둘러싼 논쟁이다. 국내 주요 언론에서는 산업 및 일자리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위험성을 언급하고 있다. 혹자들은 '혁명의 시간'이라거나 '창의력이 위협당하는 시대'라고 언급하며 기술혁신을 강조한다.

1995년 제레미 리프킨이 <노동의 종말>을 출간한 이후 이렇게 전 세계적인 이슈가 된 것도 드물다. 리프킨은 정보통신의 발전으로 블루칼라는 물론 화이트칼라의 일자리도 다수 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지난 30년 사이 사회·경제만이 아니라 문화와 삶의 양식 전반이 변화함에 따라 수많은 직업들이 만들어졌다. 자본과 기업의 집적과 집중도 한몫했다. 이윤 추구 동기 때문에 새로운 산업을 계속 만들어 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 자동화와 로봇의 도입 수준을 떠나 기술혁신이 미칠 영향은 매우 논쟁적이다. 누구도 부인하지 않듯이 거시적 추세와 기술 변화가 향후 일자리에 미칠 영향은 적지 않다. 노동시장의 일자리 소멸과 창출은 현실 문제이면서도 미래 의제이기도 하다. 기술혁신에 대한 '비관론'과 '낙관론'은 항상 존재했다.

2023년 세계경제포럼(WEF)의 '회복력 있는 세계를 위한 기술' 세션에서도 그런 관점을 엿볼 수 있다. 포럼에서는 기술 발전이 가져올 전략적 기회와 미래에 대한 영향에 대해 다양한 논의들이 제기되었다. 그 화두 중 하나가 바로 챗GPT였다.

WEF의 <미래 직업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직업의 약 5분의 1이 앞으로 바뀌거나 소멸할 것으로 전망한다. 문제는 자본과 언론의 과잉에 있다. 국내외 주요 언론들은 의심의 여지 없이 우리들의 일의 미래가 매우 파괴적일 것이라고 다루고 있다. 일부 기사들은 향후 5년 이내에 사라질 일자리를 꼽으면서 공포를 조장하기도 한다.

물론 단순 검색과 같은 반복 작업을 대신할 효율적 도구가 이미 AI로 대체되고 있다. 최근에는 이메일 대필, 논문 요약, 번역, 글쓰기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다. 그렇다 보니 뉴미디어 콘텐츠 일자리부터 일러스트레이터, 웹툰 작가 그리고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같은 창작 영역까지 인공지능이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사라질 일자리 못지않게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도 있기에 '순 감소'는 그렇게 크지 않다. 정보통신기술(ICT) 발전 과정에서 새롭게 만들어지거나 필요한 일자리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컴퓨터 도입과 자동화 과정에서 수요가 늘었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센서·스캐너 설계와 설치 운영자들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경영 관리나 컨설턴트 일자리들이 주목받고 있다. 플랫폼 확대에 따라 중요해진 알고리즘 개발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100년의 경험을 보면 국가와 사회는 고용과 실업을 시장의 자율에만 맡겨 놓지 않는다. 국가와 노동조합이 노동시장에 개입해서 조율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간과하면 안 된다. 실제로 공공부문이 맡고 있는 교육과 복지 및 보건의료 영역의 일자리는 단순 자동화나 AI로 대체할 수 없는 영역들이 많다.

국가, 노동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AI로 인해 사라질 일자리 못지않게 새로 창출되는 일자리도 있기에 ‘순 감소’는 그렇게 크지 않다. ⓒ 셔터스톡

 
앞으로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고령자 돌봄 관련 일자리와 기후위기 대응 일자리들이 적지 않게 증가할 것이다. 그렇기에 산업과 기술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 반드시 인간의 영역으로 남겨둬야 할 영역은 무엇이고 기술 활용 영역은 무엇인지 논의하는 것이 우선일 듯하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신기술 도입으로 기존 일자리들이 대체되는 영역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활성화가 필요하다. 직업능력 향상과 교육훈련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성뿐만 아니라 안정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우리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예산 지출 비중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0.5% 남짓도 안 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하위권에 속한다. 우려와 논쟁에 매몰되기보다 기술 도입 과정에서 실직하는 사람들의 재취업을 유인하는 정책을 모색해야 한다.

어쩌면 AI가 인간의 노동보다 더 정확하고 섬세할 수 있다. AI의 설득력, 친근함, 회복탄력성 등을 드러내는 표현과 어조들은 부정성을 상쇄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AI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 특히 동료들과의 소통과 교감, 그리고 제안과 설득에는 한계가 있다.

이미 AI는 채용과 일상의 작업 과정은 물론 직업적 취향이나 우울, 장애 등 개인 상태에까지 개입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AI 속에 숨겨진 기술의 위험성을 간과하면 안 된다. 앞으로 AI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자리 이외에도 우리들이 논의해야 할 숙제들이 많다. 분명 다양한 영역에서 기술을 활용한 협력관계는 중요하겠지만 인간의 영역 침범을 어디까지 허용할지도 논쟁이다. 특히 알고리즘에 숨겨진 노동 세계의 차별과 편견에 대응해야 한다.

최근 유럽연합(EU)에서 '허용할 수 없는 위험'을 기치로 한 AI 규제법안을 제정한 것은 공정성과 객관성 논의의 시작에 불과하다. 미래의 노동과 일자리 문제만이 아니라 AI가 정치에 악용되고 지식을 왜곡해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류가 신기루와 같은 AI에 의존하는 순간 재앙을 접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기술은 자본이 결정할 몫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들이 논의하고 결정할 문제다.
 

김종진 /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 김종진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종진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은 불안정 노동, 노동시간, 감정노동, 정의로운 전환 등 다양한 노동과 청년 문제를 정책화하고 실천적으로 사회 의제화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 한국산업노동학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 부위원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플랫폼노동산업위 공익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노동자의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 않는다>, <숨을 참다>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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