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0 10:53최종 업데이트 23.09.20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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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오후 여의도 국회앞에서 열린 ‘공교육 멈춤의 날 -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집회’에서 참석한 교사들이 침묵으로 추모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 권우성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은 초등학교 교사가 학교 현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을 폭로했다. 교사는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쉽고 일자리도 안정적이라 청년 여성에게 꾸준히 인기가 높은 직업이었다. 그러나 위험 수위를 넘어선 무리한 요구, 폭언과 폭설, 악성 민원 등 교육활동과 교사의 인권을 침해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행태에 대한 누적된 불만은 교사들의 연이은 대규모 집회와 시위로 터져 나왔다.

이번 사건을 몰상식하고 과도한 민원을 제기하는 극소수 학부모로 인한 사고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다. 교권과 아동 인권의 균형을 흔든 아동학대법 등 제도와 구조의 문제가 곪아 있기 때문이다. 극단적 악성 민원과 외롭고 긴 법정 다툼은 일부 교사의 경험이라 하더라도, 이런 사건이 주변에서 쌓이고 쌓이면 교사 활동을 위축시키기에 충분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아이들이 떠안게 된다.


서이초 교사 사태 이후 현장의 목소리를 들으며, 교사들의 처지가 어린이집 교사나 요양보호사 등 소위 '돌봄 노동자'의 그것과 여러모로 닮아 있음을 알게 되어 적지 않게 놀랐다. 2020년 한국보육진흥원이 발표한 어린이집 교사들의 권익 침해 통계에 따르면, 보육교사의 68.3%가 어린이집에서 권익을 침해당한 경험이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학부모로부터 부당한 대우와 폭력을 당했을 때 참는 것 이외에는 어떠한 제도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2018년 김포시의 한 어린이집에서 아동학대 가해자로 오해를 받은 보육교직원과 2020년 세종시에서 아동 폭행사건에 연루된 보육교직원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무혐의로 판명됐지만 오랜 시간 법정 다툼을 견디지 못했다. 명백한 아동학대 사건도 있지만 보육교직원과 학부모 간의 오해에서 발생하는 사건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가정에 방문하거나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요양보호사들도 현장에서 보호자와 이용자로부터 폭언과 성희롱을 당하는 등 각종 인권침해에 노출돼 있다. 요양보호사 중에서도 특히 가정으로 방문하는 재가요양보호사는 '허드렛일 하는 사람' 정도로 취급되곤 한다.

돌봄 수요자의 책임 의식은 '에티켓'?
     
우리는 모두 돌봄 없이는 살 수 없고, 일상생활과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돌봄 노동자들의 노동이 소중하다며 치켜세운다. 하지만 돌봄 노동자를 하대하는 사회 분위기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학대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돌봄 노동자인 교사와 요양보호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커지며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하는 일이 생긴다. 돌봄 현장에서는 학부모와 교사, 보호자와 요양보호사 간 갈등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교육도 넓은 의미의 돌봄이다. 교권 강화 대책으로서 교사들이 요구하는 생활지도권은 돌봄권에 다름 아니다. 교육과 돌봄은 주무부처가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로 각각 나뉘어 있다. 근거 제도, 정책, 사업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둘을 구분 짓고, 돌봄이 교육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나는 돌봄 가치에 대한 사회적 저평가와 교사에게서 노동자 정체성을 박탈하는 신분 의식을 비판해 왔다. 그러나 교육과 돌봄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주장만 앞세우며 교사들의 교육과 돌봄의 통합을 방해하는 제도와 현실은 간과했다. 정규 수업을 마친 아동에 대한 방과후 돌봄 서비스를 누가 제공할 것이냐를 둘러싸고 학교와 지자체 사이에 다툼이 벌어졌을 때, 교사 단체의 돌봄 거부를 책임을 회피하는 이기적인 행태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안전한 학교에서 방과후 돌봄을 제공받기를 원하는 대다수 학부모의 입장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교사가 악성 민원으로부터 본인을 보호할 재량권이 없고, 학부모와 교사 간의 갈등과 분쟁을 조정할 교육 당국과 학교 관리자의 책임과 역할이 부재한 상황에서, 학교에 오래 남아 있는 아이들을 돌보기 버거웠을 교사들의 심정이 이제야 이해가 간다.

보육과 학교 시설, 그리고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확대되어 온 '돌봄의 사회화'는 돌봄 노동자와 돌봄을 받는 아동과 노인, 그들의 보호자 사이에 갈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돌봄의 사회화는 여성이 전적으로 떠안아 왔던 아동과 노인 돌봄을 국가의 재정 지원을 통해 남에게 맡기면서 여성이 사회경제적 기회와 권리를 확보하도록 도왔다.

그러나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내 아이나 부모를 대신하여 실질적인 구매와 의사 결정을 하는 대리인으로서 보호자가 가지는 책임과 의무는 모호하다. 돌봄에 관한 한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 확대와 품질 제고에 주력하느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들의 노동권에는 무관심하고, 그러한 권리를 보호하는 데 핵심적인 수요자들의 윤리와 책임 의식은 '에티켓' 정도로 요구할 뿐이다.

​교육부는 8월 말 교권 회복 및 보호 강화를 위한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교원의 교육활동을 보장하고 학생의 학습권을 보호하는 학생 생활지도 고시를 제정하여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에 대한 대응력을 제공하겠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아동복지법과 아동학대처벌법이 학교 현장과 교원의 직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되었다는 반성을 엿볼 수 있다.

학교 현장과 교원의 직무 특성이란 무엇일까. 경제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보육과 교육 같은 돌봄 서비스의 생산 과정과 결과물은 다른 일반적인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과정이나 결과물과 매우 다르다.

무엇을 얼마만큼 투입하면 제대로 된 결과물이 기대한 만큼 나올지 정확히 계산하고 평가하기 어렵다. 서비스의 품질을 높이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있는지, 생산된 서비스 결과물의 품질이나 완성도를 온전히 측정하기 어렵다. 따라서 노동자와의 계약에서 정해진 만큼 혹은 그 이상의 노력을 끌어내기 위해 어느 정도 임금과 성과급을 줘야 하는지 인센티브 체계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돌보는 마음'은 금전만으로 움직이지 않아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내재적 동기는 양질의 돌봄을 끌어내는 데 임금과 수당보다 중요하다. ⓒ 셔터스톡

 
서비스의 품질은 서비스를 받은 사람의 만족도와 동일한 의미인가. 교사가 학생을 잘 가르치고 돌본다는 행위는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즐겁고 행복한 감정 상태를 동반하기도 하지만, 교육과 공동체적 가치를 가르치기 위해 학생과 학부모의 뜻과 감정을 거스를 수밖에 없는 경우도 있다.

교사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학생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해서는 안 되는지, 아무리 법과 규칙으로 테두리를 정해 놓는다 하더라도, 사람을 상대로 하는 노동은 법과 규칙으로 일일이 정할 수 없는 예외와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

돌봄 노동은 그 어떤 노동보다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와 유대를 수반하는 노동 과정이 바탕을 이룬다. 낸시 폴브레라는 경제학자는 저서 <보이지 않는 가슴>에서 인간의 지적, 감정적, 신체적 역량을 유지 발전시키는 돌봄 서비스의 품질과 성과는 돌봄 제공자의 헌신, 사랑, 책임이라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 가격과 금전적 동기인 '보이지 않는 손'보다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무리 금전적 보상을 충분히 한다 해도 돌봄 노동의 사회경제적 혜택에 비하면 개별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보상은 충분하지 않으며, 잘 돌보도록 이끄는 적정 보상 수준을 정하기가 어렵다. 그럴수록 돌봄노동을 하는 사람들의 내재적 동기, 즉 헌신, 사랑, 책임과 같은 '마음'은 양질의 돌봄을 끌어내는 데 임금과 수당보다 중요하다.

아이와 교사에게 행복한 교육 현장이 되려면 교사들의 '보이지 않는 마음'이 상처받거나 훼손되지 않도록 국가와 우리 사회가 돌보고 보듬고 격려해야 한다. 오랫동안 인상하지 않았던 담임수당·보직수당을 현실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돌보는 마음은 금전적 인센티브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국민일보>가 최근 전국교사노조연맹을 통해 현직 교사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59.4%는 "교직 입문 후 열의가 매우 작아졌다"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 어떤 직종보다 타인에 대한 헌신과 사랑, 책임으로 가득했을 교사들의 열의를 식게 하고 심지어 안정적인 일자리를 버리고 교육 현장을 떠나게 하는 제도와 관행이 바로 잡혀야 할 것이다. 돌봄 노동자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일은 돌봄을 받는 사람들의 책무이다.
 

윤자영 /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소셜 코리아 운영위원) ⓒ 윤자영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부교수는 노동경제학과 젠더경제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소셜 코리아>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관심분야는 시장과 비시장 영역의 돌봄과 젠더·계층·세대 질서 및 불평등의 상호관계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사회보장위원회 등에서 공익위원과 민간위원으로 참여했고, 학계에서는 한국노동경제학회 이사와 한국사회정책학회 편집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젠더와 기본소득, 노동시장 성차별과 불평등, 돌봄서비스 일자리 근로조건 등 논문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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