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0.24 11:48최종 업데이트 23.10.24 11:48
  • 본문듣기
한국의 공론장은 다이내믹합니다. 매체도 많고, 의제도 다양하며 논의가 이뤄지는 속도도 빠릅니다. 하지만 많은 논의가 대안 모색 없이 종결됩니다.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는 이런 상황을 바꿔 '대안 담론'을 주류화하고자 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근거에 기반한 문제 지적과 분석 ▲문제를 다루는 현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거쳐 ▲실현 가능한 정의로운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소셜 코리아는 재단법인 공공상생연대기금이 상생과 연대의 담론을 확산하고자 학계, 시민사회, 노동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플랫폼입니다. 기사에 대한 의견 또는 기고 제안은 social.corea@gmail.com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기자말]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3월 6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는 노동·연금·교육의 3대 개혁을 주요 국정과제로 삼았다. 특히 노동시장 개혁이 핵심 개혁 정책으로 부각되면서 사회적 관심을 받았다. 소위 과로사 법안으로 지칭된 '69시간 연장근로 상한'이나 '시럽급여' 발언은 이를 반영하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주 4일제나 텔레워크(원격근무)와 같은 전 세계 흐름과 달리 최근 정부의 노동시간 정책은 저임금 장시간 노동 체제를 벗어나기 위한 방향에 역행한다. 특히 노동자 건강 및 생명 위협, 삶의 질 하락의 위험성 등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문제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장시간 노동은 감정 탈진, 직무 스트레스, 심리적 건강 등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하는 주요 요인이다.


고용노동부는 11월 또다시 노동시간 관련 정책을 발표한다고 한다. 어떤 정책을 발표할지 모르겠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파괴하는 정책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한국은 국제노동기구(ILO) 노동시간 협약 중 1935년에 채택된 47호 협약(주 40시간)만 비준한 상태다. ILO나 유럽연합(EU) 등에서도 노동시간 규제는 주요 핵심 의제다.

ILO는 좋은 일자리의 한 형태로 '괜찮은 노동시간 편성'을 강조했다. 균형 있는 노동시간 편성으로 노동자들이 일·생활 균형을 찾고 건강을 유지해 결근과 이직이 감소하며, 노동자들의 태도가 좋아지고 사기가 진작되며,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향상되어 기업에게도 이익이 된다는 점을 ILO는 강조한다. 때문에 장시간 노동의 규제와 더불어 균형 있는 노동시간의 편성·배열은 매우 중요하다.

어떤 노동자들이 더 힘든가  

일하는시민연구소와 유니온센터는 지난 9월 노동자 500명을 대상으로 노동시간을 조사하고 '시간의 정치'와 관련된 글을 10월에 세 차례 발표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이미 알려진 것들도 있지만 새롭게 확인된 사실들도 있다. 직장에서 어떤 노동자들이 휴가를 사용하지 못할까. 더불어 어떤 노동자들이 아픈데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출근하는 것일까. 우리 주위 곳곳에서 장시간 노동으로 몸이 아파 결근과 출근이 반복되는 일상이 확인된다. 병가조차 없는 일터에서 법정 연차휴가조차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큰 문제다.

조사 결과 주당 평균 52시간 이상 장시간 노동 비율은 8.1%였다. 장시간 노동은 교대 근무자와 저임금 노동자 집단에서 더 많았다. 지난 한 해 동안 법정 연차휴가 사용은 평균 8.6일에 불과 했다. 비정규직(5.9일)과 최저임금 이하(5.5일), 교대 근무자(6.4일)는 가장 적은 연차휴가를 사용한 집단이었다.    

이런 이유로 10명 중 4.5명(45.6%)은 지난 1년 사이 몸이 아파 결근했고, 몸이 아파도 어쩔 수 없이 출근한 노동자도 6.8명(68.4%)이나 된다. 몸이 아파도 어쩔 수 없이 출근(프리젠티즘, presenteeism)하는 현상은 노동시장 내 불평등한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포착할 수 있는 개념이다.

이를 반영하듯 여성(75.6%), 최저임금(70%)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프리젠티즘 유경험이 높았다. 아무리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라도 '아파도 쉴 권리'는 일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적용해야 한다.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지금 우리에게는 ‘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한 시간의 정치’가 필요하다. ⓒ 셔터스톡

 
향후 노동시간 정책 방향은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서라도 과로나 소진, 압축노동과 야간노동 예방·규제 등에 방점을 둬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난해 8월부터 1년간 진행한 세브란스병원의 주 4일제 시범도입 사례에서 우리는 다양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교대제, 야간·장시간 노동을 개선하기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사합의로 주 4일제 시범도입 후 세브란스병원에서는 간호사 '번아웃'과 퇴사·이직 의도가 감소했다. 의료사고 위험성은 낮아졌고, 환자 응대와 서비스 질은 향상됐다.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과 내일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이 대폭 감소했다. 매년 3~6명의 간호사가 퇴사했던 병동에서 올해는 퇴사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고 있다. 개인의 연간 노동시간 단축(469시간 20분)은 물론 출퇴근 교통시간 절약(52시간 36분)과 같은 간접적인 효과도 확인된다. 주 4일제는 이미 몇몇 국가나 기업들이 시행하고 있고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있다는 점에 비춰 볼 때 미래의 노동 의제로 볼 수 있다.

물론 앞으로 노사정 및 이해당사자들은 ILO와 EU 기준으로 노동체제를 개편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특히 장시간 노동 및 불규칙한 노동시간 개선 등을 통해 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한 '괜찮은 노동시간'으로 사회적 전환이 필요하다. 앞의 노동시간 조사 결과 직장인들은 1일 노동시간을 7.5시간 혹은 7시간으로 단축(62.4%), 1주 연장근로 한도를 48시간으로 단축(62.4%), 유급 연차휴가를 20일 혹은 25일로 확대(74.6%) 등에 찬성 의견이 적지 않았다.

향후 괜찮은 노동시간 정책은 노동시간 체제 변화를 위한 재구조화에 초점이 있다. 무엇보다 '일과 삶의 균형이 가능한 시간의 정치'는 포괄임금제 폐지, 특별연장 근로 인가 규제와 함께 5인 미만 사업장과 고령 노동자 등 취약 사각지대 노동시간 규제를 실현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김종진 /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 김종진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종진 사단법인 유니온센터 이사장 겸 일하는시민연구소 소장은 불안정 노동, 노동시간, 감정노동, 정의로운 전환 등 다양한 노동과 청년 문제를 정책화하고 실천적으로 사회 의제화하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회권 전문위원, 한국산업노동학회 운영위원을 맡고 있습니다.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실무위 부위원장,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플랫폼노동산업위 공익위원 등을 역임했습니다. 주요 저서로는 <노동자의 시간은 저절로 흐르지 않는다>, <숨을 참다> 등이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소셜 코리아>(https://socialkorea.org)에도 게재됐습니다. <소셜 코리아> 연재 글과 다양한 소식을 매주 받아보시려면 뉴스레터를 신청해주세요. 구독신청 : https://socialkorea.stibee.com/subscribe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