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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난 남편, 아내 죽이려고 킬러까지 고용?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영화] 박중훈-고 최진실의 부부연기 <마누라 죽이기>

24.01.05 14:10최종업데이트24.01.05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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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로 천만 감독이 된 강제규 감독은 2011년 300억 가까운 제작비가 투입된 신작 <마이웨이>를 선보였다. <명량>으로 한국영화 최고 흥행 감독이 된 김한민 감독도 제작비 300억 원의 <한산:용의 출현>과 <노량: 죽음의 바다>를 연출했다. 2009년 <해운대>로 천만 감독 대열에 합류한 윤제균 감독 역시 2014년 <국제시장>, 2022년<영웅> 등 많은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영화들을 차기작으로 선보였다.

반면에 천만 영화 이후 차기작으로 오히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영화를 만들면서 '한 박자 쉬어가기'를 선택한 감독들도 있었다. <왕의 남자> 이후 <라디오스타>를 만들었던 이준익 감독과 <괴물>이후 <마더>를 선보였던 봉준호 감독,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 7년의 밤 >을 연출했던 추창민 감독 등이 대표적이다.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은 차기작 <드림>에서 제작비가 늘어났지만 <드림>을 대작영화로 분류하는 관객은 거의 없다.

<실미도>로 한국 최초의 천만 감독이 된 강우석 감독은 <실미도>가 개봉하기 10년 전에도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화제작 <투캅스>를 만든 적이 있다. 하지만 강우석 감독은 <투캅스>를 통해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감독으로 떠오른 이후 다소 독특한 스타일의 성인코미디를 차기작으로 선보인 바 있다. 박중훈과 고 최진실의 코믹연기대결을 통해 1994년에서 1995년으로 넘어가는 겨울 많은 관객들을 즐겁게 했던 영화 <마누라 죽이기>였다.
 

<마누라 죽이기>는 1994년 연말에 개봉해 서울에서만 34만 관객을 동원했다. ⓒ (주)강우석 프로덕션

 
달콤·살벌한 부부싸움 다룬 영화들

대부분의 부부들은 결혼식장에서 평생 변하지 않을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지만 사실 부부는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사이다. 물론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속담도 있지만 실제로는 부부 간에 의견이 맞지 않아 다투기도 하고 그 다툼의 크기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커지면 이혼을 통해 남남이 되기도 한다. 특히 영화에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부부싸움을 집중조명하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1989년에 개봉했던 영화 <장미의 전쟁>은 <배트맨 리턴즈>의 펭귄맨으로 유명한 대니 드비토가 연출과 주연을 맡은 작품으로 2600만 달러의 제작비로 1억 6000만 달러의 흥행성적을 기록하며 크게 성공했다(박스오피스 모조 기준). <장미의 전쟁>은 첫눈에 반해 결혼한 부부가 경제적, 물질적 안정을 이룬 후 싸움과 의견충돌 횟수가 늘어나고 결국 집 소유권을 놓고 양보 없는 싸움을 하다가 끔찍한 파국을 맞는 이야기다.

<장미의 전쟁>의 이야기에서 스케일이 커지고 두 부부의 직업을 킬러로 바꾸면 2005년에 개봉한 브래드 피트와 안젤리나 졸리 주연의 <미스터&미세스 스미스>가 된다. 말싸움을 하거나 집에 있는 물건을 집어 던지는 고전적인(?) 부부싸움을 넘어 <미스터&미세스 스미스>에서는 서로에게 총을 쏘고 폭탄을 터트리며 자동차로 상대를 들이 받는다. 물론 오락영화답게 "스미스 부부는 싸우면서 화해했어요"라는 아름다운(?)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2007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싸움>은 '그저 예쁘기만 했던' 손예진을 배우로 성장시킨 드라마 <연애시대>를 연출했던 한지승 감독이 6년 만에 연출한 영화였다. <싸움>은 '하드보일드 로맨틱코미디'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장르를 붙이고 설경구와 김태희가 주연을 맡으면서 개봉 당시 큰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전국 38만 관객에 그치면서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고 이선균과 임수정, 류승룡의 연기앙상블이 돋보였던 <내 아내의 모든 것>은 아내를 무서워하는 남편이 아내와 이혼하기 위해 전설의 카사노바에게 아내를 유혹해 달라고 부탁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권태기에 빠진 부부사이'라는 무거워질 수 있는 주제를 코믹하고 유쾌하게 풀어낸 <내 아내의 모든 것>은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이 즐길 수 있는 웰메이드 상업영화로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강우석 감독의 흔치 않은 '19금 코미디'
 

박중훈(왼쪽)과 최진실이 부부로 출연한 <마누라 죽이기>는 강우석 감독 커리어에서 흔치 않은 '19금 코미디영화'다. ⓒ (주)강우석 프로덕션

 
영화 제목에는 감독의 의도에 따라 많은 은유와 상징을 담을 수 있다. 2003년에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은 범인의 시선에서 제목을 지었지만 영화는 범인을 쫓는 형사들의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어떤 은유나 상징도 없는 직관적인 제목이 관객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때도 있다. 1994년 12월에 개봉한 <마누라 죽이기> 역시 아무런 은유와 상징도 들어가지 않는 정공법(?)의 제목으로 승부를 본 영화다.

<마누라 죽이기>는 영화 제작사의 사장이지만 실세인 아내 때문에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남편 박봉수(박중훈 분)가 아내 장소영(최진실 분)에게 질려 아내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세운다는 내용의 코미디 영화다. 아무리 권태기가 왔다고 해서 아내를 죽이려는 생각을 했다는 설정이 대단히 황당하지만 <마누라 죽이기>는 강우석 감독의 전작 <투캅스>처럼 대놓고 코미디를 지향했기 때문에 관객들도 크게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박중훈은 <투캅스>를 통해 이미 한국영화 최고의 흥행배우로 떠올랐지만 TV드라마와 CF로 정점을 찍은 최진실은 1992년 서울관객 22만의 <미스터 맘마> 정도를 제외하면 영화 쪽에선 확실한 대표작이 없었다. 하지만 <마누라 죽이기>를 통해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을 펼치면서 서울 34만 관객 동원에 크게 기여했고 이듬해 대종상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최고의 여성배우 대열에 올라섰다.

<마누라 죽이기>는 강우석 감독의 물 오른 연출과 박중훈, 최진실의 열연이 만난 유쾌한 코미디 영화였지만 사실 영화의 결말은 관객들의 분노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봉수는 킬러에게 아내를 죽여 달라고 의뢰한 후 우연히 소영의 임신사실을 알게 되고 후회의 눈물을 흘리며 소영의 소중함을 재확인한다. 하지만 끝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 봉수는 또 다른 여자를 만나고 소영은 봉수를 죽이기 위해 킬러를 고용하면서 영화가 마무리된다.

강우석 감독의 대표작 <투캅스>가 고 필립 느와레 주연의 프랑스 영화 <마이 뉴 파트너>와 표절시비가 있었던 것처럼 <마누라 죽이기> 역시 필립 느와레가 출연했던 프랑스영화 <탱고>와의 유사성이 지적됐다. 일단 아내를 죽이려는 기본 설정부터 두 영화가 매우 흡사한데 <마이 뉴 파트너>와 마찬가지로 <탱고> 역시 서울관객 2000명으로 국내 관객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으면서 커다란 소동 없이 조용히 넘어갔다.

세상에서 가장 어설프고 무능한 킬러
 

어설픈 킬러를 연기한 최종원(오른쪽)은 <마누라 죽이기> 이후 충무로 최고의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 (주)강우석 프로덕션

 
1993년 유하 감독의 영화 <바람 부는 날이면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를 통해 데뷔한 엄정화는 아직 신인배우의 티를 완전히 벗지 못한 1994년 <마누라 죽이기>에 출연했다. 엄정화가 연기한 혜리는 봉수와 소영이 제작하는 영화의 주인공이자 봉수의 내연녀이기도 하다. 하지만 혜리는 제작사 대표의 내연녀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연출한 감독(조형기 분)과도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갔다.

<투캅스>에서 마약상 두목을 연기했던 최종원 배우는 <마누라 죽이기>에서 봉수가 고용한 킬러를 연기했다. 여느 할리우드 영화의 킬러들처럼 굉장히 비밀스럽게 등장하지만 금방 어설픈 행동과 실력이 들통나면서 사건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 사극에서 주로 간교한 능구렁이 역할을 주로 맡았던 최종원 배우는 <마누라 죽이기>에서 후반 대부분의 웃음지분을 책임지며 1990년대 중반 충무로 최고의 신스틸러로 떠올랐다.

<이장호의 외인구단>에서 혼혈선수 하국상, <투캅스>에서 자해전문 잡범으로 출연했던 권용운은 <마누라 죽이기>에서 봉수와 소영 부부가 휴게소에서 만나는 탈영병으로 출연했다. 봉수는 소영을 인질로 잡고 다 죽여 버리겠다고 협박하는 탈영병을 향해 "망설이지 말고 군인답게 빨리 행동에 옮겨"라고 부추긴다. 결국 분노한 탈영병은 소영을 풀어주고 대신 봉수를 인질로 잡아 얼차려를 시킨다.
그시절우리가좋아했던영화 마누라죽이기 강우석감독 최진실 박중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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