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3.26 09:59최종 업데이트 24.03.26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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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9일(현지시간) 모스크바에서 의회의 주요 당파 지도자들과 만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최근 치러진 대선에서 5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 연합뉴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북한을 핵무기 보유국으로 인정한 것일까?

푸틴이 지난 13일 러시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자체 핵우산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자, 국내외 일각에서 내놓은 의문이다. 그는 '북한군에 도움을 요청하고 대가로 핵우산을 제공할 수도 있지 않은가'라는 질문에 "(북한은) 우리에게 어떤 것도 요청하지 않았다"면서 이렇게 답한 것이다.


푸틴의 발언 취지는 북한이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보유한 만큼, 러시아가 북한에 핵우산을 제공할 필요도 없고, 북한이 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푸틴이 북한의 핵보유를 인정한 것이라는 해석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한 걸음 더 들어가 '핵무기의 국제정치'를 바라볼 필요를 일깨워준다.

현재 핵무기를 자체적으로 보유한 나라는 모두 9개국이다. 공식적인 핵보유국은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중국 등 5개국이고, 비공식 핵보유국은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북한 등 4개국이다. 공식과 비공식을 나누는 기준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따른 것이다. 이 조약에선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실험에 성공한 나라의 핵보유는 인정하고 있다. 반면 비공식 핵보유국은 NPT 비회원국들이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해 질문을 던져보자.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은 것일까? 필자가 알기로는 미국을 포함한 어떤 나라도 이들 나라의 핵보유를 공식적으로 인정한다고 발표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미국을 포함한 대다수 국가들은 이들 나라의 핵보유를 인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 '사실상(de facto)'과 '법률적인(de jure)'이라는 개념이다. 즉,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은 '법률적인' 핵보유국이 아니라 '사실상' 핵보유국으로 간주된다. 이들 나라가 핵보유를 이유로 제재를 받는 건 고사하고 미국 등의 지원을 받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북한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2023년 8월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회의가 열리고 있다. 6년 만에 북한 인권 상황을 의제로 열린 이날 회의에서 대부분의 이사국은 북한의 인권 침해 상황을 규탄했으나 북한 측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 연합뉴스


그럼 북한은 어떨까? 북한 역시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과 마찬가지로 NPT 비회원국이다. 다만 이들 세 나라는 NPT에 가입조차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핵무기를 개발·보유한 반면에, 북한은 이 조약에서 탈퇴해 핵무장을 강행한 유일한 나라라는 차이가 있다.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태도다. 유엔 안보리는 이스라엘의 핵무장이 '공공연한 비밀'로 드러나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수용, 중동 비핵무기지대 창설 등의 결의를 채택한 바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이 1998년 5월에 복수의 핵실험을 실시하자, 안보리는 결의를 채택해 핵실험, 핵무기 프로그램, 탄도미사일 개발, 핵물질 생산 등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활동의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안보리 결의를 철저하게 무시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결의는 흐지부지되었다.

이에 반해 안보리는 북한이 핵실험이나 탄도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때마다 거의 매번 결의를 채택했다. 이는 북한의 핵보유가 국제규범상 불법이라는 딱지를 붙인 주된 근거였다. 그런데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고 있다. 2020년 이후 북한이 비핵화의 종언을 선언하고 탄도미사일 등 각종 핵무기 운반수단의 개발·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음에도 안보리의 대북 결의 채택은 자취를 감췄다. 거부권을 갖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의 인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들 나라는 한반도 평화와 비핵화 프로세스가 좌초된 데에는 한미연합훈련, 미국의 전략자산 전개, 한미일 군사협력 강화 등의 요인도 작용했다며, 이들 문제의 해결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하게 제기해 왔다. 더 중요한 이유도 있다. 미중 전략경쟁과 미러 대결이 격화되면서 중국과 러시아가 북핵 문제를 '핵비확산'보다는 '세력 균형'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인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 전쟁은 그 전환점에 해당된다.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해 보면, 북한이 포탄과 미사일 등 다량의 무기나 부품을 러시아에 제공해 온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는 러시아의 북핵 묵인과 북한의 대러 무기 제공의 '교환'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외교와 군사의 균형
 

2022년 10월 10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리설주 여사가 지난달 29일부터 보름간 진행된 전술핵운용부대 군사훈련을 참관했다고 보도했다. ⓒ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북핵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와 관련해 또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외교적'으로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한국, 미국, 일본 등도 '군사적'으로는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한미, 혹은 한미일 연합훈련은 북핵 사용 억제뿐만 아니라 사용 시에 대비한 내용도 포함되고 있는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이게 바로 딜레마의 핵심이다. 북핵 불인정은 물러설 수 없는 원칙이지만, 비핵화를 앞세울수록 비핵화에서 멀어지는 게 현실이다. 북핵에 대한 군사적인 대비는 필요하지만, 이것이 과도해질수록 북핵 고도화와 안보 딜레마의 격화 역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외교와 군사의 균형이 필요한 까닭이다.

그럼 균형의 지혜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대세는 핵우산을 포함한 미국 확장억제의 가시성과 강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그런데 한반도 정세에 안도감보단 불안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래서 혹자는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을 통한 '공포의 균형'을 도모해야 한다고 한다. 이게 화끈한 대안인지, '앗 뜨거워'하면서 손을 댔다가 화상만 입고 손을 떼게 될 것인지는 제대로 따져봐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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