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키스>

연극 <키스> ⓒ 세종문화회관

 
무대 위는 아랍 풍으로 장식된 거실이다. 스페인 궁전의 방처럼 화려하다. 넓은 소파와 서너 개의 전등, 양주가 올려진 테이블. 속이 비치는 실내복을 입은 하딜이 티브이를 시청하며 깔깔거린다. 무대 위 전광판에는 "2014년 다마스쿠스"라고 적혀 있다.

'2014년 다마스쿠스에 저런 집이 있었다고?' 관객 중 누군가는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고 누군가는 '그렇군' 하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괜찮다. 다마스쿠스는 우리에게 멀고 낯선 곳이다. 어제 극장에 있던 관객 중 다마스쿠스에 가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마 '0명'이 아니었을까?

다마스쿠스는 시리아의 수도이며, 우리나라는 시리아와 외교 관계를 맺은 적이 없다. 당연히 대사관이나 공관도 없다. 다마스쿠스를 방문한 대한민국 국적의 누군가가 있다면, 절차에 따라 처벌받을 것이다. 시리아는 외교부가 지정한 '여행금지국가'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2014년 다마스쿠스의 호화로운 거실에 있는 하딜에게 돌아가자. 그녀는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연인인 아메드, 그들의 친구인 유세프와 바나 커플이 올 것이다. 예정보다 훨씬 이르게 유세프가 도착한다. 하딜과 유세프 사이에 이상한 기류가 흐른다. 자, 이것이 1막의 시작이다.
 
 연극 <키스> TODAY's CAST

연극 <키스> TODAY's CAST ⓒ 세종문화회관

 
이 연극은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극의 내용을 설명하는 일은 마치 영화 <식스 센스>를 보고 나오며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다'라고 소리 지르는 것만큼 치명적이다. 연극의 구성 자체가 반전이다. 내용이 놀랍다기보다 그것을 풀어가는 형식이 대단했다. 나도 모르게 양쪽 엄지 손가락이 한꺼번에 펴질 정도였다. 하지만 이렇게 단순하게 연극 감상기를 써 놓는다면 너무 성의 없어 보일 것이므로 사족을 달아보겠다. 2014년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에 저런 종류의 거실이 존재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진 이유에 대해 말이다.

현재 알려진 시리아 국민의 종교 분포를 보면 이슬람교 수니파가 약 70%로 주를 이루고 시아파와 그것의 방계인 알라위파가 15%, 드루주교도가 3%, 기독교도가 12%로다.

1970년 '하피즈 알아사드'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는다. 알라위파였던 아사드 대통령은 주요 요직을 알라위파 인사로 채운다. 타 종교, 특히 수니파는 차별의 대상이었다.

1980년 말리 대통령을 맞이하던 하피즈 대통령은 자신의 발아래 수류탄이 떨어지는 아찔한 경험을 한다. 용케 수류탄을 발로 차버려 목숨을 구하기는 했지만 수니파인 무슬림 형제단과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안 후 칼춤을 추기 시작한다.

먼저 수감 중이던 무슬림 형제단 및 이슬람 극단 주의자 1200여 명을 즉결 처형한다. 재판대신 총이었다. 무슬림 형제단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폭탄 테러와 요인 살해로 반응했다. 군에서 쿠데타를 모의하다 적발되기도 한다. 이럴 때마다 정부는 무슬림 형제단과 관련된 이들을 찾아내 투옥한다. 이런 일이 몇 년간 지속되었다. 이쯤 되면 양쪽 다 문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수니파 들이 주로 거주하는 '하마'에서 대규모 봉기가 일어난다. 대통령은 대규모 병력을 투입한다. 하마 시가지를 포위하고 탱크를 진입시켰다. 무슬림 형제단은 자살 폭탄 테러와 인간 방패를 동원해서 싸웠지만 결론은 시리아 군의 승리였다. 하피즈 대통령은 하마시의 건물을 다 뭉갠 후 평평하게 만드는 '평탄화 작업'까지 실시했고, 화학무기까지 투입되었다는 루머도 돌았다.

2000년 '하피즈 알아사드'의 사망 후 둘째 아들인 '바사르 알아사드'가 대통령이 된다. 비밀경찰을 앞세운 철권통치는 이어진다.

그리고 2011년 '아랍의 봄'이 시작됐다.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은 순식간에 이웃 나라로 퍼져 나간다. 튀니지, 이집트, 리비아, 예멘의 독재 정권이 무너졌다.

국가가 아무리 감시하려 해도 인터넷 시대에는 어려움이 많다. 2011년 3월, 정부를 비방하는 그라피티가 발견된다. 비밀경찰이 범인을 잡고 보니 15명의 청소년이었다. 이들은 가혹하게 고문받고 심문당한다. 그 과정에서 13살의 소년이 사망한다. 가족과 친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고 군이 대응한다. 사망자가 발생한다. 이웃과 인근의 성난 주민들이 쏟아져 나온다. 군대가 민간인을 향해 무차별 발포를 시작한다. 마침내 무장 반군이 등장한다.

이때까지 미국, 유럽 등 서방의 국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정부군이 헬기를 동원해 민간인을 사살하고, 자국민을 향한 납치, 강간, 고문, 살해가 벌어지는데도 개입하지 않았다. 반군의 세력은 점점 다마스쿠스로 향했다. 수도의 70퍼센트 정도를 반군이 장악하고 정부군에서 이탈자가 속출하던 2012년, 러시아가 시리아 정부의 편을 들면서 이 혼란에 개입한다.

정부는 시리아 특수군을 투입해 수도를 탈환하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화학무기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2014년 IS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시리아 북부를 장악하고 국가를 선언한다. 아수라장이고 지옥도 자체다. 2014년에는 미국의 공습이 시작된다. 하늘에서 폭탄이 쉴 새 없이 떨어진다. 그것이 2014년 다마스쿠스의 상황이다.

자, 이런 대 재앙의 한복판에 네 명의 친구가 모였다. 이들은 어떤 곳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게 될까. 3막까지 다 본 후 대답을 알 수 있다. 무대 위에서 열연한 정원조, 김유림, 김세환, 이다해 배우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어쩐지 이 연극의 주인공은 떨리는 목소리로 무대 위로 올라온 우종희 연출이 아니었나 싶다. 더 이상은 스포라서 입을 다물겠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기예르모 칼데론(Guillermo Calderón)의 작품이 더 많이 무대 위에 올라가길 바란다.

뉴욕타임스 종군 기자인 "크리스 헤지스"는 <당신도 전쟁을 알아야 한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1900년에서 199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4300만 명의 군인이 전쟁 중에 전사했다. 같은 기간에 민간인 사망자는 6200만 명이다. 2차 대전 중에 340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북한에서는 100만 명의 민간인이 사장했다. 모든 전쟁 사망자의 75%에서 90%가 민간인이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예맨과 레바논, 에티오피아와 시리아, 수단, 소말리아, 우크라이나에서도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이 모든 전쟁은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이 연극은 4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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