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세계보건기구(WHO) 본부 외관.
연합뉴스
팬데믹 2년 차인 2021년 6월, 세계보건기구(WHO)는 남아공 케이프타운에 'mRNA 백신 기술이전 허브'를 출범한다고 발표했다. 적어도 다음 팬데믹에는 코로나19와 같은 백신 불평등을 경험하지 않도록, 중·저소득국의 자체생산 역량을 구축한다는 목표였다.
mRNA 백신이 가진 여러 장점은 '안성맞춤'이었다. 코로나19 외에 중·저소득국이 겪는 다른 질병의 백신·치료제로도 적용이 가능했다. 애초 계획은 화이자-바이오앤테크, 모더나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은 뒤 다시 여러 중·저소득국에 기술을 이전한다는 것이었지만, 화이자-바이오앤테크와 모더나는 일체의 기술이전이나 노하우 공유를 거부했다.
반년 뒤인 2022년 2월, mRNA 백신 허브는 모더나 mRNA 백신 염기서열을 기반으로 백신(후보물질)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기술이전을 거부한 제약사들에 보기 좋게 한 방 먹인 셈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에는 전 임상 동물실험까지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자체 습득한 기술과 노하우는 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아시아·동유럽 15개 국가에 전수했다.
임상시험을 앞둔 상황에서, 기반으로 삼은 모더나 백신이 새로 유행하는 변이 바이러스에는 효과가 떨어진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결국 임상시험을 취소하고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신규백신 개발을 시작했다. 동시에 기존 백신은 영장류 실험을 진행하면서 다른 중·저소득국에 전수하기 위한 대량생산 기술을 확립하기로 했다.
mRNA 백신 허브가 개발한 코로나19 백신은 원 개발자로부터 기술이전이나 노하우 공유 없이 개발된 최초의 제네릭(복제) 백신이다. 그렇다 해도 모더나, 화이자-바이오앤테크가 기술을 이전하거나 노하우를 공유했더라면, 부족한 자원과 시간을 중복연구에 낭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기술이전이 있었더라면 1년 안에 끝마쳤을 과정에 3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특허 등 지적재산권 분쟁 가능성도 mRNA 백신 허브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요인이다. 2020년 10월 모더나는 '팬데믹 기간 코로나19 백신에 대해 특허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라고 공약했지만 mRNA 백신 허브가 소송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팬데믹 선언은 해제되었고 mRNA 백신 허브는 이 기술을 코로나19 백신 외에 다른 질병의 백신·치료제에도 활용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기술 독점의 폐해는 중·저소득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바이러스벡터 백신(옥스퍼드-아스트라제네카), 합성항원 백신(노바백스, 스카이코비원)에 대해 위탁생산 혹은 자체 개발을 통해 원천기술을 확보했지만 mRNA 백신은 그러지 못했다. 단지 기술적 어려움 때문일까?
mRNA 백신은 이미 소수의 기업이 수많은 특허를 가지고 있어 개발하기 쉽지 않다. 심지어 이들 기업 사이에도 서로 여러 건의 특허침해소송이 진행 중이다. 특허청이 국내 mRNA 백신 개발사를 위해 발간한 <mRNA 백신 특허 분석 보고서>는 '기존 특허의 라이선스(이용허락)를 취득하거나, 기존 특허를 회피할 자체 기술 개발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한다.
이와 같은 어려움 때문인지, '문재인 정부 국정백서'에 따르면 2021년 6월 남아공 케이프타운이 mRNA 백신 기술이전 허브로 선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달 뒤 한국 정부는 '멀티테크 기술이전 허브'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추가 지정을 제안했다. 아무래도 한국이 mRNA 백신 기술을 이전받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작용한 듯싶지만,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WHO는 '한국은 이미 많은 종류의 백신을 생산할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기술이전 허브보다는 기술이전 허브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필요한 인력양성 허브 역할이 더 적합하다'라는 의견을 표명했다. 이후 한국은 '글로벌 바이오 인력양성(생산훈련) 허브'로 선정되어 중·저소득국 대상 백신·바이오의약품 생산 교육·훈련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막대한 지원의 대가... 한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