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1.24 10:26최종 업데이트 24.01.24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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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명절을 앞둔 시점, 집에는 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차례를 지내러 간다는 동료는 이제 코빼기도 안 보인다며 나는 반려자에게 한숨 섞인 불만을 쏟아낸다. 차라리 출근하는 게 마음 편하겠다 싶은 적도 있다. 명절날 시댁에 가는 일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낳아준 부모님을 뵈러 가는 일이기보다 육체노동을 하러 가는 일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가 도착하기 전 이미 대부분의 차례 음식을 해놓으시는 어머님 덕택에 나는 두세 종류의 전을 부치는 일이 고작. 그래도 의문이 들었다. 허리에 파스를 붙이는 건 기본, 지독한 몸살에 걸리곤 하는 엄마들이 차려낸 음식을 정작 본인은 왜 편하게 먹지 못할까. 음식이 잘 됐는지 간 좀 볼까 으름장 놓는 어른들의 '명절 아침 멘트'도 불편했다.


"어머님이 명절을 다 책임져 오신 거나 마찬가진데… 아버님은 어머님한테 잘하셔야 해요.", "아버님도 간소하게 하자고 하시는데, 음식 좀 줄이셔도 괜찮지 않을까요?"라고 말을 건넨 어느 날이었다. 시어머니는 수화기 너머 침묵을 지키셨다. 내가 함부로 말한 걸까? 혹시 그의 노동을 희생의 맥락에서만 해석해 불필요한 무엇으로 요약해버린 건 아닐까.

그의 세계를 함부로 평가하고 있었다는 자각은 늦게 왔다. 정성들여 일곱 가지 야채를 조리해 나물밥을 만들고, 고기소를 넣어 동그랑땡을 빚어내는 사람. 그 노동의 곡절은 대물림하지 않되 손수 한 음식의 온기는 내 선에서만큼 두루 전하고 싶은 사람. 냉동 재료는 찾아볼 수 없는 차례상.

스무 살 적부터 시동생들을 줄줄이 먹이고 자손들을 키워낸 밥상을 자긍으로 여기는 사람. '등골 빼먹는' 악습 뒤 한 사람의 성취감이 거기 있었다. 나는 모른 척 했던 것 같다. 여성의 가사노동을 누군가는 해치워야 할 멍에로 몰이해한 채로.

두 번 읽으니 보이는 것들
 

ⓒ 고정미

 
맛있게 먹었다고 잘 표현했다면 죄책감이 덜했을까. 고백하자면, 산문집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를 읽고 처음 든 생각은 이 책을 쓴 이순자를 문학인으로 기억하자는 다짐이었다. 책이 출간된 2022년 생각이다. 당시 나는 '엄마'라는 정체성은 그의 업을 나열할 때 뒤편으로 이해하려 했다. 결혼 뒤 이뤄진 그의 노동 기록을 의식적으로 부차적인 무언으로 보려 했다. 안일한 생각이었다.

예순에 접어든 여성이 일자리를 얻고자 동분서주한 경험을 핍진하게 담은 글 '실버 취준생 분투기'(2021)는 몇 해 전 SNS에서 뒤늦게 화제가 되었다.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되는 쾌거까지 거둔 분투기가 한 챕터로 들어간 이 책은 마트 청소, 요양보호, 장애인 활동지원 등을 해온 작가의 삶과 노동의 기록을 곡진하게 보여준다. 작가는 공모전에 당선된 후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문장은 지금도 쉼 없이 읽히고 있다.

최근 이 책을 재독했다. 완독 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어머니가 수화기 너머 지켰던 침묵의 색채를 찬찬히 더듬는 기분이랄까. 애써 보지 않으려 했던 장면들이 비로소 눈가에 맺혀 펼쳐졌다.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와닿았던 장면들부터 복기해본다.

작가가 명동성당에서 운동권 동지들과 투쟁하고 봉사를 다니던 청년 시절, 시티즌 주식회사 근무 당시 여공들의 주말 수당을 갈취하는 관리자에 맞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 했던 일, 쉰넷에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시(詩)는 이야기"임을 뜨겁게 배웠던 일, "여그서 같이 살어라." 간청하는 이웃 할머니의 곁이 되어 준 날들, 기초생활수급자로 원룸 다리미판에 노트북을 놓고 글을 쓰던 나날들. 작가로서의 긍지.

두 번째로 이 책을 읽고 나니, 나도 모르게 지나쳤던 작가의 한 시절이 선명해졌다. 그 시절을 드러내는 첫 문장은 "남편과 결혼해 25년을 정말 열심히 살았다."

작가 이순자는 이혼을 끝으로 며느리의 세월을 통과했다. 그는 그 세월을 아프게만 보지 않았다. "시할머니, 시어머니, 시동생을 모시고" 기꺼이 살아냈으며, "명절이면 100명 가까운 손님을 혼자 감당"했다.

시절을 회고한 문장 사이사이 '종갓집 맏며느리'의 과업을 수행해냈다는 보람이 배어 있었다. 청춘의 땀과 돌봄의 성취가 맺혀 있었다. 손님이 들이닥친 날, 요리 준비로 분주했을 '칼잡이 새댁'의 근육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그 힘줄들은 따뜻하고, 역동적이고, 화려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갓 시집온 새댁이 수돗가에 앉아 그 많은 닭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모습이 얼마나 끔찍했을까 싶다. 그래도 그 맛은 장작과 가마솥, 집에서 만든 간장, 그리고 오직 맛있게 해야겠다는 장손 며느리의 책임감과 지금은 맛볼 수 없는,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닭의 육질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순자,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중에서
 
화려한 칼잡이 실력만큼 작가의 정체성은 책에 담긴 이야기 속에서 여러 개의 이름으로 빛난다. 혹자는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를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이 겪은 경험의 총합으로 부를 수도 있겠다. 과연 그러한지 조심스레 따져볼 일이다.

유복녀로 태어나 아버지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자라났던 식구 많은 가난한 가정의 여성, 병원 진료 갈 때마다 의사의 말을 정확히 듣기 위해 필담을 요구했지만 수시로 거절당한 청각장애인. 식모를 부리던 버릇이 남은 이로부터 고초를 당하기도 했던 시니어 근로자. 독거노인과 장애인, 아이를 돌보던 요양보호사. 그리고 무용함이 세계를 구원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 시심(詩心)으로 창작을 이어 나갔던 시인.

정체성들을 하나하나 모아 보니, 소외된 이웃이라는 기표가 가진 효능이 그에게 중요하지 않겠다는 예감이 든다. 한 마디 더 보태자면, 예순을 넘긴 대다수 여성 어른들이 흔히 요양보호사로, 청소 노동자로 살아간다.

내가 본 바에 따르면 그들 대다수가 일찍이 아버지 혹은 어머니를 여의고 살아왔다. 그러나 나의 양가 어머니, 할머니, 이모 들은 자신이 소수자라고, 삶이 진창이었다고 함부로 평한 바 없다. '언니'들은 떳떳했다. 그래서 작가 이순자의 삶은 내게 차라리 '보편'에 가까웠다.

그래서 고쳐 써본다. 그는 다만 '이순자'였다. 그는 어쩌면 여러 정체성 중에서 고유명사인 이름으로 가장 불리고 싶어했다. 그가 책 서두에 쓴 것처럼 식구와 부대끼는 갈등 속에서 청년 시절엔 숱하게 양보했지만 예순을 넘겨서는 할 말 다하는, 작가의 문장을 빌려 보자면 "나는 여전히 나였다."

스스로를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아닌 '경계인'이라고 여긴 그는 힘든 이웃의 곁을 지키는 데 도가 튼 사람이 되어 갔다. 아파본 만큼 타인의 고통에 기민하게 반응한다는 그는 천사도, 무엇도 아닌 다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었다. 이 책은 자신을 오롯하게 완성하기 위해 그가 출렁이며 기록한 작업물이자, 생의 철칙이다.
 
"밤이 이슥해져 사위가 고요한 시간, 아픈 사람들은 내게 전화를 건다. 나는 창에 기대 전화를 받으며 나를 필요로 하는 이의 벽이 되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아무리 피곤해도 절대 먼저 전화를 끊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공간에서 우리가 서로의 등에 기대고 있는 걸 아니까. 하나가 등을 떼면 벽이 무너지니까."
- 이순자,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60대의 시선으로 본 불공정
 

책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휴머니스트

 
이 책의 백미는 자기 삶을 정직하게 기록한 데 나아가, 장애인활동지원사와 요양보호사 일을 하며 목도한 부조리한 관행들을 통찰력 있게 드러냈다는 데 있다. 62세 나이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그는 애초에 "미술이랑 문학, 음악, 상담 치료 쪽으로 1급 자격증"이 있음을 일자리센터 담당자에게 밝혔다.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솔직히" 말했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중졸"로 축약한 이력서를 제출해서야 일감을 배정받는다.

이후 아현동 시장 인근 공장에서 자신보다 어린 이주노동자와 부대낀 일, 지상 8층-지하 7층에 이르는 마트 청소를 홀로 하며 먼지와 함께 밥 먹은 일, 철 지난 재료로 아이들에게 밥을 해 먹이라는 업무 지시에 따를 수 없어 어린이집을 뛰쳐나간 하루가 담담히 이어진다. 새해 벽두마다 노인 일자리 사업 창출을 자축하는 뉴스, 정부가 발표하는 취업률이 "진짜인지 의심"하며 "탁상공론이거나 짜고 치는 고스톱"임을 영민하게 추론한다.

고용주의 핍박뿐 아니라, 요양보호와 장애인 활동 지원 이용자들이 "쉽게 사람을 부리는" 작태도 지적한다. '집 반찬까지 만들어 두라'는 주문에 시름을 앓는 요양보호사들의 호소는, 아는 사람이라면 이미 넘치게 들었을 것이다.

근거를 조목조목 제시해 자기 의견을 피력해도 남성인 아들을 대동해야만 문제가 풀렸던 생활 속 차별에 대해선 "여자가 어쩌고 하는 생각이 아직도 이 사회에 뿌리박고" 있는지 지적한다. 오래 버틴 여성의 목소리를 우리는 왜 여전히 듣지 않는가.

작가는 삶과 부대끼며 느낀 통증이 자신의 약한 처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일찍이 알았다.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감각, 타인의 곁이 되고자 돌봄의 정의를 자문하는 마음, 세상을 살아가는 누구든지 문학, 그러니까 이야기를 기꺼이 할 수 있다는 믿음은 이제 또 다른 독자에게 이어져 파도로 출렁인다. 그의 문장과 에너지는 이제 내 생활에도 바다처럼 스미고 있다.

"나는 몸으로 가장 감명 깊은 인생을 살았어."

그의 산문집과 함께 출간된, 작가의 유고 시집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에 실린 '몽유 랩'의 시구다. 때때로 사는 게 전쟁 같아서 하루가 야속하다가도, 다리미판 위 노트북을 올려놓고 "써야 해", "나의 마지막을 남겨야 해" 읊조렸던 작가의 문장은 나에게도 정신을 바싹 들게 하는 물줄기가 되어 준다.

그의 글은 종종 자기연민에 골몰하려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책상이 되어 준다. 먹이고, 입히고, 썰고, 다듬고, 보듬은 돌봄의 무늬를 더 이상 뭉뚱그려 보지 않는 연습이 되어 준다. 감명받는 인생을 사는 법을 찾게 하는 선배가 되어 준다. 작가의 이름을 새해에 가만히 불러본다. 뵌 적 없으나 이미 뵌 것 같은 마음으로. 


꿈이 다시 나를 찾아와 불러줄 때까지 - 이순자 유고 시집

이순자 (지은이), 휴머니스트(2022)


예순 살, 나는 또 깨꽃이 되어 - 이순자 유고 산문집

이순자 (지은이), 휴머니스트(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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