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월 22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남소연
2021년 7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대선후보로 급부상한 상태에서 부산 민주공원을 찾았습니다.
그곳 추모비에는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머리에 피를 흘린 채 동료의 부축을 받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의 상징이 된, 바로 그 사진입니다.
장제원 의원은 옆에 있던 윤석열 전 총장에게 "이한열 열사"라고 귀띔해 주었습니다. 그때 설명을 듣던 윤 전 총장은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건 부마(항쟁)인가요?" 그 자리에 있던 측근들의 답변도 걸작이었습니다. "네", "1979년." 윤 전 총장은 자신이 1979년에 대학에 입학했던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대학 1학년 때…"
최근에는 국민의힘 당 비대위원장으로 스타덤에 오른 한동훈 전 법무부장관이 민주화 항쟁과 관련한 '학번' 발언으로 주목 받았습니다. 그는 자리에 오르자 마자 "운동권 카르텔 청산"을 내세우며 이것이 "시대정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그 발언을 비판하며 되물었습니다.
"본인의 출세를 위해서 바로 고시공부를 한 게 아닙니까. 동시대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 선후배들에게 좀 미안한 마음을 갖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닐까요?"
그에 대한 한 위원장의 답변은 명료했습니다. "임종석 의원께서 저한테 동시대에 있었던 학생들에게 미안함을 가져야 한다고 얘기했던데요, 저는 92학번이거든요." 그리고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제가 특별히 누구에게 미안함을 가져야 될 이유는 없어요. 우리 세대가. 저는 80년 광주항쟁 당시에 유치원에 다녔습니다. 누구에게 미안해야 한단 말입니까."
저는 이 말을 듣고 윤석열 대통령의 '부마' 발언만큼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가 대학에 입학한 1992년에 저도 대학생이었기에, 당시 상황을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는 민주화가 성취된 태평성대가 아니었습니다. 더욱이 1992년은 한동훈 위원장의 꿈이었던 검찰이 치욕적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한 해이기도 하지요. '한국의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리는 유서대필 조작사건이 대법원에서 확정된 해이기 때문입니다.
민주화의 숨통을 죄며 몸집을 불린 검찰
1990년대 초, 대통령 직선제 등 형식적 민주주의는 이뤄졌지만 대대적인 민간인 사찰과 탄압이 지속적으로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1990년 국군보안사령부(보안사)에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이 보안사가 사찰해 온 민간인의 목록이 담긴 디스크를 공개하며 양심선언을 하기 이릅니다. 1991년 4월에는 대학생이었던 강경대씨가 전투경찰 '백골단'의 폭행에 숨지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이 들불처럼 번져 나가기 시작합니다.
이 상황에서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분신하기에 이릅니다.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낀 노태우 대통령은 자신이 검찰총장으로 임명했던 김기춘을 법무부 장관에 앉히고는 사건의 '해결'을 맡깁니다. 이때 검찰은 강기훈씨가 유서를 대신 써줬다며 이른바 '유서대필 사건'을 조작해 내고, 정부는 이를 빌미삼아 민주화 운동에 대한 대대적 탄압을 시작합니다.
이전까지는 보안사와 경찰 등의 기관이 고문과 강압을 통해 사건을 조작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혐의를 검찰이 넘겨 받아 죄인을 만들어 내는 하수인 역할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분신사건을 기점으로 검찰은 정권 보위의 주역으로 등장합니다. 한국 검찰은 한국 민주주의를 다시 암흑기로 돌려놓으면서 날아오르기 시작한 것이지요. 아이러니라기보다는 비극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오랜 세월 고통 받은 후, 강기훈씨는 24년 만에 재심을 통해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고, 법원은 유서대필 조작사건의 국가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 국가배상 판결을 내립니다. 하지만 법원은 고문 등 가혹수사를 통해 사건을 조작한 검사들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나 배상책임이 없다고 판결합니다. 한 사람의 삶을 처참히 파괴해 놓고도 아무런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기막힐 뿐입니다.
반성과 공감능력도 없는 정부, 어떻게 상대할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가진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창밖을 보며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위원장은 전두환과 노태우 정권을 보위했던 검찰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다가, 그 정권을 계승한 당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미안함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없다"였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의 과거사를 그렇게 손쉽게 덮으려 하는 데에는 모종의 '동지의식'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검찰 역시 자신의 과오를 제대로 사과한 적이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현 정부의 가장 큰 문제는 상대의 고통을 느낄 줄 모르는 심각한 공감 능력의 결여입니다. 한동훈 위원장은 새해 첫 공식일정으로 대전 현충원을 찾아 호국영령을 추도했습니다. 그는 지지자들과 유튜버들과 악수를 나누고 돌아가다가 뒤에서 들려오는 외침 소리를 듣습니다.
"한동훈 위원장님, 채수근 해병의 생일입니다. 오늘 참배하고 가주십시오."
지난해 7월 수해 실종자를 찾다가 사망한 해병대 채 상병이 그곳에 안장돼 있으니 추모해 달라고 부탁한 것입니다. 한 위원장은 요구를 무시하고 단체촬영을 위해 입구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 나갔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태원 참사 유족들에게 보인 태도와 너무나 닮았습니다.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반성이지요. 반성은 변화의 필요조건이자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반성 없는 정부에게 미래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집권한 뒤, 전에 보지 못했던 낯선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이 판단에 동의하신다면, 좀 더 긴 호흡을 가지고 지켜 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진정으로 '낯선 나라'는 총선 이후 나타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여소야대'에서 이런 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다면, 그 반대의 상황에서는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요?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희망이 선거날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선거 날에만 작동하는 장치가 아니니까요. 투표날이 아닌 일상의 싸움을 위해 표현의 자유도 있고, 결사의 자유도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이 권리는 권력자가 외면하더라도, 입을 틀어막고 끌어내더라도, '운동권 카르텔'이라 겁박해도 행사돼야 합니다. 그것이 1987년이든, 1992년이든, 2024년이든 변함없이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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