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14 07:10최종 업데이트 24.05.14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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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7월 19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루스벨트 대통령이 시작하고 존슨 대통령이 확대한 것을 조 바이든이 완성하려 하고 있다"는 마저리 테일러 그린 의원의 비판 영상을 엑스에 공유하고 "동의한다"고 썼다. ⓒ 엑스

 
지난해 7월 미국 공화당의 마저리 테일러 그린 하원의원은 조 바이든 대통령의 사회 인프라와 기후 관련 투자를 가리켜 "이는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시작하고 린든 존슨 대통령이 확대한 것으로 조 바이든이 완성하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린이 언급한 루스벨트와 존슨은 사회경제적 정의를 추구했던 대통령이다. 미국 역사학자들이 뽑은 위대한 대통령 순위에서 노예 해방의 에이브러햄 링컨과 건국의 조지 워싱턴을 제치고 1위에 선정된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으로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고 중산층 중심의 경제로 전환시켰다. 6위에 뽑힌 존슨은 1960년대 "큰 사회"를 외치며 인권법 제정, 노인 의료 보험, 도시 재생, 낙후 지역 개발을 추진했다.


노동과 기후 문제를 접합해 그린 뉴딜을 방향타 삼고 있는 바이든에게 루스벨트-존슨의 계보를 잇고 있다는 말은 비판이 아닌 칭찬이었다. 바이든은 즉시 자신의 엑스(옛 트위터) 계정에 그린의 영상을 공유하면서 "이 메시지에 동의한다"고 답했다.

바이든이 잇고 싶어 하는 루스벨트-존슨 대통령의 운명은 전쟁 처리능력에서 갈렸다. 루스벨트는 서로 불신했던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와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 서기장을 조율하는 데 성공해 독일과 일본을 상대로 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반면 존슨은 임기 후반 베트남 반전 여론을 제대로 읽지 못해 재선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바이든에게는 이스라엘-가자 전쟁이 있다. 미국이 전통적으로 취해왔던 친이스라엘 입장을 바이든이 견지하자, 4월 중순 이후 2000명 넘는 대학생들이 친팔레스타인 시위에 나서 체포되었다. 지난 3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CNN 인터뷰에서 "바이든의 베트남이 될지도 모른다"며 "젊은 세대와 민주당의 기반을 잃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샌더스가 "젊은 세대와 민주당의 기반"이라고 막연하게 표현했지만 이들은 실체가 있다. 청년 기후운동단체인 선라이즈 무브먼트(Sunrise Movement)와 미국 하원 내 진보파인 스쿼드(The Squad)다. 이들은 사회 개혁에 있어 바이든과 뜻을 같이하지만 이스라엘-가자 전쟁에 대해서는 이스라엘을 비판한다.   

선라이즈와 스쿼드
 

선라이즈는 웹사이트에 "기후 위기를 막고 그린 뉴딜을 달성하기 위해 싸우는 젊은이들의 운동"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 선라이즈


2017년 설립된 선라이즈는 노동, 정치 운동 등을 내세우는데 중심 의제는 기후 변화다. 대책에서는 2010년대 초 월스트리트 점령 운동의 영향을 받아 반거대자본 특성을 보인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정치 영역으로 진출 필요성을 절감하고 정치 운동을 선언했다.

이 단체의 변곡점은 2018년 말이다. 회원 250여 명이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사무실을 점거했다. 이 사건으로 존재감을 증명하면서 순식간에 미 전역에 300개 이상의 지부를 가진 단체로 성장했다. 이때 이들의 목소리를 경청했던 이가 스쿼드의 일원인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였다. 스쿼드란 2018년 하원에 처음 당선된 네 명의 진보 여성의원으로 일한 오마르, 러시다 털리브,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아이아나 프레슬리를 가리킨다.

2020년 대선에서 선라이즈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으나 민주당 후보가 바이든으로 결정되자, 바이든을 압박해 그린 뉴딜을 수용하게 한 후 선거를 도왔다. 하지만 바이든의 기후 정책안이 의회에서 교착상태에 빠지자 "우리가 민주당을 차지해야 한다"라고 선언하고 2022년 그린 뉴딜 지지자를 위한 선거 운동을 공식화했다. 이때 이들이 선거 운동을 도와 하원에 진출한 이가 서머 리와 저말 보먼이고 이들은 스쿼드에 들어갔다.  

초기 스쿼드는 민주당 내 극히 소수였다. 하지만 이들은 의회 진보의원 모임(CPC)을 통해 영향력을 확장했고 2024년 민주당 하원 212명 중 96명이 이름을 올렸다. 규모상 미국 하원에서 두 번째로 큰 단체이고 스쿼드 중 한 명인 일한 오마르가 부회장이다.  

바이든은 기후 변화와 노동에 있어서는 선라이즈-스쿼드를 수용했다. 2023년 9월 바이든이 서명한 미국 기후봉사단 법안은 선라이즈가 일자리와 기후 변화를 결합해 2019년 제시한 시민 기후봉사단을 약간 변형한 것이다. 스쿼드와 진보의원 모임은 의회에서 힘을 보탰다. 미국 기후봉사단이 공식 출범한 4월 22일 선라이즈는 축배를 들었다.

사흘 뒤 바이든은 선라이즈에 또 하나의 선물을 선사했다. 4월 25일 미국 환경 보호국이 화석연료 사용 공장을 대상으로 2039년까지 탄소 배출을 90% 줄일 것을 의무화하는 안을 발표한 것이다. 선라이즈는 "게임체인저"라고 환호했다.

이스라엘-가자 전쟁에 대한 입장차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친이스라엘과 친팔레스타인 단체 간의 야간 충돌이 발생한 후 시위대가 UCLA 캠퍼스에 모여있다. ⓒ 연합뉴스


하지만 이스라엘-가자 전쟁은 이들 사이의 가시다. 선라이즈-스쿼드는 바이든의 친이스라엘 입장에 반대한다. 미국 대학의 친팔레스타인 시위가 불붙기 전인 2월 12일, 선라이즈 회원 100여 명이 델라웨어에 있는 바이든 선거운동본부를 찾아가 기후 변화 문제와 이스라엘 군사원조 중단을 외치다가 20여 명이 체포되었다. 4월 14일에는 40여 명이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집 앞에서 시위하다 6명이 체포되었다. 

선라이즈-스쿼드 조합은 지난 4월 23일 펜실베이니아주 민주당 하원 경선에서 다시 영향력을 증명했다(대선과 함께 상·하원 선거도 치르기 때문에 현재 각 당 후보를 정하는 경선이 진행 중이다). 경선의 승리자는 서머 리로 2020년 선라이즈가 공식적으로 힘을 실어주었던 스쿼드의 한 명이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리는 2020년에도 친이스라엘 단체의 표적이 되었다. 수백만 달러를 상대 진영에 쏟아부었으나 당시 리가 1000여 표에 달하는 0.9% 차이로 신승을 거두었다. 전쟁이 발발한 만큼 올해도 거액의 정치 자금이 상대 진영으로 흘러갈 것이라 예상했지만, 승산이 없다고 판단해 물러섰다. 

리의 승리 이후, 선라이즈의 미셸 웨인들링 정치국장은 "큰손을 상대로 이길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며 "우리 세대는 억만장자들을 짐 싸서 돌려보내고 스쿼드를 재선시킬 것"이라고 했다. 이들이 주력할 다음 스쿼드 멤버는 뉴욕의 저말 보먼이다. 오늘 6월 선거에서 유대인이 많은 뉴욕인만큼 친이스라엘 단체들이 막대한 정치자금을 앞세워 보먼 낙선 운동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월 25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의 민주당 소속 일한 오마르 의원(오른쪽 첫번째)이 컬럼비아대에서 반전시위 중인 학생들을 방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이스라엘 비판은 미 정계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되기 어려운 민감한 주제다. 여기에는 일차적으로 서구의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와 그로 인해 2차대전 중 벌어진 유대인 학살에 대한 경험이 있다. 거기에 미국-이스라엘공무위원회(AIPAC) 등 친이스라엘 단체의 막강한 로비가 있다.

미 정계의 암묵적인 친이스라엘 흐름에 스쿼드는 균열을 내고 있다. 일한 오마르는 이스라엘이 범죄에 가까운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가자지구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시민 피해를 줄이고 인도적 구호를 방해하지 않는 조건 속에서 미국이 원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 비판이 어려운 이유는 반유대주의라는 오해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오카시오코르테스는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와 동일시하며 비난하는 것과 실제 반유대주의,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날 수 있다"고 사안의 민감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이스라엘 비판 목소리를 합법화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결국 이 예민한 부분을 언급할 수 있는 이는 유대계 정치인들이다. 여기에 앞장을 선 이가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다. 지난 3월 14일 그는 자신의 이름 슈머가 히브리어 '수호자'에서 유래한 것을 언급하며 이스라엘 정체성을 부각한 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중동 평화에 걸림돌이라며 이스라엘이 그를 교체할 수 있는 총선을 실시해야 한다고 연설했다.

이에 대해 스쿼드의 한 명인 아이아나 프레슬리는 "오늘 우리 비전이 정치 담론의 주류가 되었다"고 환영했다. 반면 공화당 내 유대계 의원들은 "미 의회 내 가장 높은 지위에 있는 민주당 의원이 뒤에서 이스라엘에 칼을 꽂았다"라고 비판했다.  

하원 내 진보의원 모임의 일원인 민주당의 사라 제이컵 의원도 슈머의 입장에 힘을 실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을 반유대주의로 본다"며 두 가지가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적합한 비판이 존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 노력한다"고 말했다.

복잡한 바이든의 고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스터티번트의 게이트웨이 테크니컬 대학에서 연설하고 있다. 이날 바이든 대통령은 CNN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단 라파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나설 경우 공격 무기와 포탄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바이든의 고민은 좀 더 복잡하다. 미국-이스라엘 관계에 공간이 생길 경우 러시아 변수까지 넣어야 한다.

권위주의적인 네타냐후는 2010년대 푸틴과 돈독한 "우정"을 발휘하며 선거 운동에 푸틴과 악수하는 사진을 내걸었던 인물이다. 이란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면서 관계가 소원해졌지만, 네타냐후는 러시아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문을 열어두고 있다.

대선 승리를 위해 미국 중도파와 선라이즈-스쿼드로 이어지는 젊은 진보 세력의 지지를 모두 받아야 하는 바이든은 일단 양쪽에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3일 침묵을 깨고 대학생들의 폭력 시위 자제를 요청했다. 8일에는 이스라엘에 경고를 보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남단 라파에 대한 대규모 공격에 나설 경우 공격 무기와 포탄 지원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이다. 선라이즈-스쿼드 수용으로 해석될 수 있는 부분이다.

바이든의 경고는 변화의 신호탄일까. 그러나 신호만으로는 부족하다. 1968년 존슨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종전이라는 확실한 결과물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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