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한 장면
마스터 마인드
의료와 교육, 그 무엇보다도 공공의 영역으로 지켜야 할 두 부분이 그 어느 때보다 위태롭다. 그리고 이 공공의 영역을 지키고 만들어가야 할 정치는 더욱 위태롭다. 벌써 반년 가까이 지속하고 있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한 갈등은 이 문제의 본질에 대한 논의로 전혀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 의료라는 행위가 가진 공공성에 대해서 함께 더 깊게 고민한다면, '의대 증원'이라는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해결책이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필요한 의료 정책을 도출하고도 남았을 시간이다.
교육은 어떠한가. 물수능이니 불수능이니 한동안 시끄러웠지만, 이제 어디에서도 교육 정책에 대한 논의조차 볼 수 없다.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것들에 대한 논의보다 누가 더 잘났고 누가 더 뛰어난지 처절한 경쟁만이 남은 듯하다. 그 속에서 개인 각자의 능력으로 살아남아야 하고, 뒤처진 것은 오로지 자신 탓이다. 경제력, 학력, 권력이 없는 자에게는 한없이 냉정하고 위험한 사회, 과연 이대로 살아도 괜찮은 것일까.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이 존재하기 위한 조건으로 첫째, 생명으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둘째, 자연의 필연성에서 벗어난 자신의 세계가 있어야 하며, 셋째, 말과 행위를 통해 이 세계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며 함께 살아야 함을 꼽았다.
이것들이 가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바로 '공공 영역'이다. 생명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의료, 자신의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것이 교육, 그 세계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다. 아렌트의 철학에 따르자면 우리는 인간으로 살아갈 조건을 모두 잃어가고 있다.
곧 국내 개봉 예정인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주인공 히라야마는 끝없이 공중화장실을 청소한다. 그의 직업인데, 청소에 필요한 모든 장비를 직접 구비할 만큼 최선을 다한다. 공중화장실이니, 이곳을 쓰는 사람은 외국인, 남자, 여자, 어린이, 장애인...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다.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진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을 하는 주인공은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것들을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해내는 사람이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것 같고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이지만 그의 삶은 '퍼펙트 데이즈'다. 그런 그의 삶 덕분에 많은 사람이 또 하루를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간다.
영화의 주제는 그것이 아니었겠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우리가 쓸고 닦아 가꿔야 할 공공 영역에 대해 생각했다. 돌아서면 금방 더러워질 것이지만, 열심히 노력해도 크게 티가 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누가 오더라도 가장 존엄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켜내야 하는 것, 공공 영역을 사수하는 일은 그런 것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만 허락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영역이 더 많아져 생명에 필요한 모든 것에 대한 공평한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우리의 '퍼펙트 데이즈'를 상상한다. 더 이상 운에 우리의 목숨과 미래를 맡기지 않아도 되는, 그런 충만한 삶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