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술 기자가 페이스북에 올린 사진에 대한 반응이 폭발적이다. ⓒ 김종술 페이스북 캡처
그의 '페친'(페이스북 친구)은 폭발적으로 반응했다. 75개 댓글이 달렸고, '좋아요'는 436개였다. '공유'만해도 317회에 달했다. 그는 지난 7월 27일 금강변의 한 커피숍에서 잠시 쉬다가 대전충남녹색연합으로부터 항공 촬영한 금강의 사진을 전달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1분도 안 돼 아래와 같은 글을 붙여서 사진 3장을 올렸다.
"감옥에 있는 MB가 신통술을 부렸습니다.
금강을 잔디밭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금강 요정'으로 불리는 오마이뉴스 김종술 시민기자, 그는 1인 미디어다.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처절한 몸부림의 기록
나는 이날 오전부터 그와 동행했다. 그가 최근 펴낸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한겨레 출판)과 관련한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날 대전충남녹색연합 양준혁 활동가와 이상호 사진작가를 안내하면서 수박만한 큰빗이끼벌레를 땄다. 녹조 물속에 들어가 시궁창 펄을 맨손으로 퍼 올렸다. 녹색연합의 인턴학생들에게 '죽은 강'의 민낯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다음 장소로 이동하려고 차에 올라탄 김 기자가 녹조로 염색된 자기 바지를 거친 손으로 툭툭 털면서 나에게 말했다.
"이건 빨아도 제대로 지워지지가 않아요. 시궁창 냄새도 그렇고."
그의 옷처럼 지난 10년 동안 김종술 기자가 쏘아 올린 1300여 편의 기사에서도 강물 썩는 냄새가 났다. 떼죽음 당한 물고기 사체의 악취와 실지렁이와 깔따구가 사는 시궁창 펄 냄새가 진동했다. 어느 날 갑자기 평화롭던 농촌마을에 4대강 보상금 '폭탄'이 떨어졌다. 그의 기사를 보면 돈에서 파생된 갈등으로 풍비박산 난 농촌공동체의 비명소리도 들린다.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은 강과 인간의 처절한 몸부림의 기록이다. 4대강의 재앙이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리는 사이렌 소리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강에서 매일 협박과 폭행에 맞서 '나홀로 전투'를 치렀던 싸움의 흔적이다. 죽어가는 강을 보며 슬픔과 분노에 휩싸였던 한 시민기자의 절규이자, 비단결 같은 금강을 그리는 애절한 연가(戀歌)이기도 하다.
▲ 금강에 창궐한 녹조 속에 들어가 자기가 쓴 책을 들고 있는 김종술 기자. ⓒ 이상호
[아주 특별한 일기] 4대강의 역사이자 그의 육성 목격담
그에게 물었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일기다. 지금까지 4대강 사업에 대해 쓴 1300개의 기사는 매일 금강에서 쓴 나의 일기이기도 하다. 4대강에 댐이 생기는 과정에서부터 그 뒤에 목격한 강의 죽음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기록했다. 4대강 부역자들은 아직도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지만, 일기에 거짓말을 쓰는 사람은 없다."
이 책의 1부 '강의 죽음'을 기록한 그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강변 모래톱은 나의 휴식처였다. 지역신문 기자를 하면서 화가 나거나 힘이 빠질 때면 무조건 강으로 뛰어갔다. 밤이고 새벽이고 가리지 않았다. 모래톱에 누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쏟아지는 별빛 속에서 잠이 들기도 했다."(책 25쪽)
모래는 강물의 오염을 걸러내는 필터인데, 그의 지친 몸과 정신도 정화했다. 하지만 그는 "이명박 정권이 금강의 뼈를 발라내듯이 모래와 자갈을 퍼내기 시작하던 날부터 나의 전쟁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기사를 쓰려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육두문자부터 날아왔다.
"야, 새끼야, 찍지 말라니까! 개xx 정말로 말 안 듣네."
공사장 인부들은 삽을 휘두르며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멱살을 잡았다. 이 와중에 이명박 정권은 군사작전을 벌이듯이 속전속결로 강바닥을 파헤쳤다. 그의 휴식처였던 금강은 전쟁터였다. 모래톱이 사라지고 동식물들도 강에서 쫓겨났다. 일개 시민기자인 그는 취재수첩과 카메라를 들고 저항했다. 그는 책에서 당시 심경을 이렇게 적었다.
"저들은 골리앗, 나는 말조차 하지 못하는 새와 수달, 너구리, 오리의 편에 선 다윗이었다."(책 34쪽)
그 뒤 금강에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했다. 그가 이 책에 쓴 '물고기 떼죽음 : 열흘의 기록'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생생하고 참담했다. "백제보 인근에서 물고기 수천 마리가 떼죽음을 당했다"는 제보를 듣고 달려간 그곳에서 그는 열흘 동안 수십만 마리 물고기의 주검을 목격했고, 이를 숨기고 축소하려는 공무원들과 사투를 벌이듯 연일 특종 취재를 했다.
"물고기 떼죽음 현장은 내가 난생처음으로 겪은 생지옥이었다. 취재를 마치자 그간의 고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내 몸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며 멀리했다. 하루에도 서너 번 살갗이 벌겋게 벗겨질 정도로 문질러 씻었다. 하지만 몸의 악취는 사라지지 않았고 머리가 빠개질 듯 밀려오는 두통은 줄지 않았다."(책 90쪽)
결국 김종술 기자는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 이때부터 주변에서 그를 '금강의 요정'이라고 불렀다. 거친 외모와 다르게 마음이 여리고 착하다는 의미로 붙여준 별명이었다.
▲ 김종술 기자가 대전충남녹색연합 관계자들에게 큰빗이끼벌레를 따서 보여주고 있다. ⓒ 이상호
[강의 역습] 5600원짜리 취재
김종술 기자에게 취재하면서 목격한 4대강 사업의 가장 큰 폐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지역공동체 파괴다. 보상금은 마을공동체를 한꺼번에 날린 폭탄이었다."
농민들은 농토를 빼앗겼다. 어민들은 더 이상 시궁창 냄새나는 녹조의 강에 그물을 내리지 않았다. 그는 이 책에서 강에 기대어 살았던 농민과 어민들의 비극적인 삶을 생생하게 묘사한 뒤에 씁쓸한 소회를 내비쳤다.
"4대강 사업으로 모래와 자갈을 퍼내자, 농지가 사라지고 돈 폭탄이 떨어졌다. 평생 뼈 빠지게 일했던 농민들에게 한순간 달콤한 유혹이었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노름과 유흥에 빠져 보상금을 날렸고, 삶의 터전인 농토도 잃었다. 갈 곳 없는 농민들과 헤어질 때마다 발걸음이 무거웠다."(책 49쪽)
4대강 사업 완공 첫해인 2010년부터 강의 역습이 시작됐다. 댐에서 누수현상이 일어났다. 댐 아래쪽의 사석 보호공도 수시로 떠내려갔다. 수심이 깊은 본류와 지천이 만나는 곳에서는 역행침식으로 제방이 무너졌다. 이듬해부터 전에 없던 녹조가 창궐했다.
그는 취재수첩을 들고 강의 몸부림을 기사로 올리며 각종 특종을 했지만 시민기자였다. 그에게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언론사는 없었다. 기름 값만 해도 한 달에 100만 원을 넘어섰다. 은행 빚도 모자라 가족과 친구들에게 손을 벌리며 버텼다. 결국 빚더미에 오른 그는 2014년 봄, 4대강 취재에 올인한 지 6년째 되던 해에 마지막 취재를 하기로 결심했다.
"때마침 아파트에 울려 퍼지는 고물장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보물 같은 컴퓨터와 모니터를 건네고 고작 3000원을 받았다.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고 책상 서랍을 탈탈 털어서 찾아낸 동전은 2600원이 전부였다. 차를 팔까도 고민했는데, 일찌감치 근저당이 잡혀 있었다."(책 127~128쪽)
그는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라는 심정으로 5600원짜리 취재에 나섰다. 그 돈으로 며칠 동안 먹을 빵을 샀다. 풍찬노숙을 하면서 마지막 취재 여행을 했다. 그곳에서 그는 괴생명체를 봤다. '큰빗이끼벌레'였다. 그는 생체실험을 하듯이 시궁창 냄새가 나는 큰빗이끼벌레를 먹고 자기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을 담은 특종기사를 썼다. '괴물 기자'였다.
김종술 기자는 "최근 내 책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오는 데, 5600원짜리 취재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한다"면서 "부끄럽고 미안하다는 말을 덧붙인다"고 했다.
▲ 김종술 기자가 물속에서 죽은 물고기를 건져내고 있다 ⓒ 이상호
[4대강 독립군] 4대강 흑역사
나는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인 김종술 기자와 매년 1~2번씩 현장 취재를 했다. 금강과 낙동강을 취재하면서 일주일을 같이 지낸 적도 여러 번이다. 2017년 초에는 4대강 독립군인 낙동강 지킴이인 정수근 기자(대구환경운동연합 생태보존국장), 4대강 백서를 쓰는 이철재 시민기자(에코큐레이터), 정대희 기자 등과 함께 미국의 댐 파괴 현장을 취재했다. 그동안 나는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책을 보면서 새로 안 사실도 많았다.
"나는 고라니의 발자국을 사진에 담으려고 카메라 렌즈를 최대한 당겼다. 그런데 움푹 들어간 발자국에서 무언가가 꿈틀대고 있었다. 낯선 생명체였다.(중략) 고라니가 내게 전해준 슬픈 선물이었다."(책 193~194쪽)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그의 또 다른 특종의 순간이었다.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2016년에 금강을 탐사보도하면서 최악 수질 4급수 지표종인 붉은 깔따구가 금강의 시궁창 펄에 득실거리고 있다는 것을 최초로 알렸다. 그 이듬해에는 영남인의 식수원인 낙동강과 수도권 시민들의 식수원인 한강에서도 4급수 지표종을 최초로 보도해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가 녹조 송편을 만들고, 밀봉된 유리병에 시궁창 펄과 깔따구 등을 담아 다니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악취 나는 그의 차에 올라탔다가 냄새의 정체를 묻자 그가 직접 병을 꺼내 확인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우편으로 배달하려고 했다가 무산된 사연은 책을 통해 처음으로 알았다. 그는 지독하게 집요했다.
"(녹조로 빚은 송편과 접시를) 4~5일 말리자 물컹거리기는 해도 형태는 유지되었다. 버려진 박스에 녹조 송편과 접시를 정성스럽게 포장해 우체국으로 향했다. 우편물을 접수하는 직원이 냄새에 얼굴을 찌푸리면서 박스를 가리켰다. '뭔가 썩은 냄새가 심한데 속에 든 물건이 뭔가요?' 사실대로 답할 수밖에 없었다."(책 212쪽)
그의 말처럼 '강의 위대한 삶과 죽음'은 매일 강에 나가 금강이 죽어가는 모습을 시시각각 기록한 생생한 목격담이자 한 시민기자가 무소불위의 권력과 처절하게 싸우면서 쓴 일기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보다 더 가까이 다가가서 끈질기게 4대강 사업의 민낯을 기록한 기자는 없다. 이 책은 그가 목격하고 경험한 것을 기록한 일기이자 4대강의 흑역사다.
▲ 김종술 기자가 쓴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책 표지. ⓒ 한겨레출판
[인터뷰] "사이비 교주들의 집안 잔치"
요즘 그는 매일 천국과 지옥을 오간단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열린 세종보와 공주보 구간은 그에게는 천국과 같다. 특히 최상류에 있는 세종보 구간에는 시커먼 펄을 밀어내고 금은 모래톱이 형성됐다. 그는 나와 함께 그곳에서 1급수 전령 재첩을 발견했을 때에 환호성을 질렀다. 금강을 떠났던 멸종위기종 흰목물떼새도 깨끗한 자갈밭에 알을 낳았다.
수문이 열린 구간은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수문이 닫힌 백제보와 하굿둑 구간은 예전보다는 나아지기는 했지만 녹조가 짙고, 실지렁이와 깔따구들이 창궐하는 죽은 강의 모습 그대로다. 이날 그와 '극과 극'의 현장을 둘러본 뒤에 커피숍에 마주 앉아 인터뷰를 시작했다.
- 이 책에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무관심이다. 만약 나와 같은 사람이 100명이라도 있었다면 4대강 사업은 이뤄질 수 없었고, 수문 몇 개 여는 데 10년이 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수문을 연 뒤에 일어나는 강의 변화를 끈질기게 기록하고 알린다면 나머지 수문은 금세 열릴 것이다. 무관심하게 내버려두면 수문은 곧 닫히고, 제2, 제3의 4대강 사업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책을 통해 4대강 사업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호소하고 싶었다. '죽은 강'에 와서 강의 아픔을 만지고 보듬어 달라. '산 강'에 와서 고인 물은 썩는다는 상식을 확인하고 기쁨을 함께 나눠달라. 자연을 훼손하는 케이블카나 송전탑 문제도 또 다른 4대강 사업이다. 우리들의 복지에 쓰일 세금을 허투루 낭비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힘은 우리의 관심에서 나온다."
- 책을 읽고 연락이 오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5600원 짜리 취재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코끝이 찡했다' '슬펐다'는 말을 해온다. 엊그제 밀양에서 책을 10권 주문했는데 25만 원을 보냈더라. '돈을 더 보낸 것 아니냐'고 문자를 했더니, '부끄러워서 좀 더 보냈다'고 답신이 왔다. 한 치과 원장도 책 한권을 사면서 5만 원 보냈다. 나도 부끄러운 말이지만, 이런 게 힘이 된다."
- 이 책을 꼭 선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명박이다. 아직도 4대강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을 텐데 나와 같은 놈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그에게 4대강 사업의 맨얼굴을 보여주고 싶다.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뉘우칠 텐데,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 이 책에서 못 다한 이야기가 있다면?
"가족들의 이야기다. 나에게 도움을 준 친척과 지인들의 이야기다."
- 미안한 사람들의 이야기인가?
"항상 손을 벌렸던 누나에게 미안하다. 공주에서 식당을 하는 데 내가 밑바닥으로 떨어졌을 때 가는 곳이 누나의 집이다. 하루 종일 불 앞에서 요리를 한다. 나를 볼 때마다 '한번 굿이라도 해야겠다'면서 이제 4대강 취재를 그만하라고 하는데, 사실 나보다 더 힘든 건 누나다.
공무원이나 지역 유지들도 찾아가는 식당인데, 손님들이 오면 '당신 동생 왜 그래?'라고 묻는 사람이 많다. 내가 기사를 쓸 때마다 손님이 떨어졌다. 어떤 때는 내가 기사를 쓰고 한두 시간 뒤에 누나가 '너 또 기사 썼니?'라고 물어볼 정도였다. 손님들이 와서 누나를 닦달한 것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전히 내가 기댈 최후의 언덕이다."
- 그간 4대강 사업을 취재하면서 고마웠던 사람들도 있을듯하다.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이다. 2013년 오마이뉴스가 진행한 '두 바퀴 현장리포트 OhmyRiver!'를 위해 한자리에 모였는데, 비를 쫄딱 맞으며 태풍을 뚫고 오는 독립군들을 보면서 감동했다.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밤늦게까지 현장 취재와 인터뷰를 하고 새벽까지 기사를 쓴 뒤에 다음 날 아침 일찍 취재에 나서는 열정을 가진 기자들을 본 적이 없다.
그전까지만 해도 나는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와 비슷하게 미친놈들이 있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4대강에는 그림자도 비추지 않을 때에 지속적으로 큰빗이끼벌레와 붉은 깔따구, 녹조라떼 등의 이슈를 물고 죽은 강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도했다. 4대강 독립군이 없었다면 수문도 열리지 않았을 것이다."
▲ <오마이뉴스>와 환경운동연합으로 꾸려진[두 바퀴 현장 리포트-OhmyRiver] 특별취재팀이 7일 오전 부산 강서구 수자원공사 앞에서 출정식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유성호
- 나홀로 전투에서 가장 소중한 무기는?
"오마이뉴스다. 시민기자제를 채택하는 오마이뉴스가 내 글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이름도 없는 한 시민이 금강변에 앉아서 쏘아 올린 글은 순식간에 확산됐다. 오마이뉴스는 나의 대포이자 로켓발사기이다. 내 기사 때문에 광고 탄압도 받았을 텐데, 대한민국에서 오마이뉴스를 빼고 4대강 사업을 말하지 못할 것이다."
- 4대강 사업은 한마디로 어떤 사업인가?
"대국민 사기극이다. 흐르는 강물을 막아서 맑은 강을 만든다는 것은 인간이 할 이야기가 아니다. 신의 영역이다. 사이비 교주 같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황당한 이야기를 떠들고 이에 부역한 학자와 전문가, 언론인들이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렸다. 4대강 사업은 사이비 교주들의 집안 잔치였다."
- 언제까지 강을 지킬 수 있을 것 같나?
"내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 왔을 때 반했던 금강의 모습을 되찾을 때까지다. 하지만 의지와 열정만으로 버틸 수 없다. 틈틈이 노가다도 뛰지만 금전적으로 한계점에 왔다. '5600원짜리 취재'를 했던 때가 재연되고 있다. 얼마 전 강에 드론이 떨어져서 새 드론을 샀다. 그 돈은 3개월째 밀린 방세였다. 책을 팔아서 아직 끝나지 않은 4대강 싸움을 계속하고 싶다."
[마치며] "그대가 진실로..."
▲ 금강 지킴이 김종술 시민기자가 충남 세종시 세종보 하류에 위치한 요트 선착장에서 펄밭으로 변해 버린 바닥의 토사들을 손으로 퍼내 실지렁이를 찾고 있다. 실지렁이는 환경부가 정한 환경오염 최하위 등급인 4등급 지표종이다. ⓒ 이희훈
김종술 기자와 헤어진 뒤에 공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고속버스를 탔다. 경기도에 들어서면서 차는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그의 페이스북을 들어갔더니 3장의 사진에는 계속 댓글이 달리고 공유 수치가 늘고 있었다. 주렁주렁 달린 댓글을 보고 있는 데 김 기자에게서 카톡이 왔다.
"급하게 썼어요. ㅋㅋ."
그는 20분 만에 썼다는 오마이뉴스 기사 링크를 보내왔다. "강인가 잔디밭인가... 녹색으로 변한 금강"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이 기사는 내가 고속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포털 다음의 메인면을 장식했다. 집에 들어와서 확인하니 기사를 올린 지 2시간 만에 '가장 많이 본 글' 1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날 쓴 그의 일기는 "4대강 수문을 열라"는 댓글과 함께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은 '앞으로 어떤 기자가 되고 싶은가'였다.
"대한민국에는 큰 문제가 터졌을 때 겉만 핥고 빠지는 기자들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의 아픈 곳, 망가진 곳, 상처 난 곳, 부조리가 많은 곳을 끝까지 파헤치는, 소위 '뽕을 빼는 전문기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의 책에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드는 방부제, 김종술'라는 제목의 긴 추천사를 써준 이는 이외수 작가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소설가 중의 한 명인데,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존버 정신'(존 나게 버틴다는 의미의 조어)을 주창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작가가 10년째 금강에서 '존버 정신'을 실천하는 김종술 기자의 책에 쓴 추천사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그대가 진실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리고 진실로 나라가 잘되기를 바라신다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주시고, 우리 주변에 아직도 살아 있는 강물과 자연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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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술 기자를 비롯한 오마이뉴스 4대강 독립군은 지난 6월21일부터 금강과 낙동강을 탐사 보도합니다. 또 오마이뉴스는 4대강 사업을 소재로 한 최초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 가입으로 김종술 기자와 4대강 독립군을 응원해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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