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2 17:20최종 업데이트 23.09.22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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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 wallpaperflar.com

 
커피는 끓이는 것인가? 타는 것인가? 내리는 것인가? 뽑는 것인가? 커피를 만드는 행위를 표현하는 방식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커피의 역사에서 가장 긴 기간 동안 커피는 끓여서 만드는 음료였다.

물에 커피 원두나 원두를 분쇄한 가루를 넣고 끓이는 방식은 15세기에 커피라는 음료가 처음 발견된 이후 20세기까지 6백 년간 이어져 왔다. 19세기 초에 프랑스를 중심으로 개발되어 사용되었던 여러 종류의 드립 포트들도 포트 상부에 커피 가루를 넣고 끓는 물이 상부에 놓여 있는 커피 가루를 반복적으로 적시면서 커피가 만들어지는 방식이었다.


커피를 끓이지 않는 방식은 20세기 들어 하나둘 나타났다. 20세기 초 이탈리에서 에스프레소 머신을 개발해 커피를 끓이는 대신 기계의 높은 압력을 이용해 빠른 속도로 추출하기 시작했다. 물 혹은 증기의 압력을 이용한 것이다. 1930년대 이탈리아에서 등장한 1인용 모카포트도 낮은 압력을 이용해 가정에서 간편하게 커피를 추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일부 지역에서만 사용됐을 뿐, 여전히 다수의 나라에서 커피는 끓여서 마시는 음료였다. 

다음으로 등장한 것은 내려 마시는 방식이었다. 커피 가루를 융이나 종이로 만든 드립 필터에 넣은 후 철사나 드립 도구에 걸쳐 놓은 후 끓인 물을 부어 여과시켰다. 1908년에 독일인 멜리타 벤츠가 종이 드립 방법을 개발함으로써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고, 이후 유사한 방식인 케멕스 등이 등장하여 커피를 내려 마시는 문화가 만들어졌다.

추출하고, 내리는 방식이 개발되었지만 여전히 커피를 만드는 보편적인 방식은 끓이는 것이었다. 20세기 전반에 유행한 퍼컬레이터나 20세기 후반에 유행한 커피메이커도 커피 원두 가루를 기계에 넣고 뜨거운 물을 흘려보냄으로써 커피를 만든다는 면에서 내리는 방식의 하나였다.

끓이고, 추출하고, 내리는 것보다 편리하게 커피를 만드는 방식이 등장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38년이었다. 경제 대공황과 전쟁으로 커피 소비가 축소되고, 커피 거래 가격이 급락하자 생산국 브라질이 스위스의 유아식 회사 네슬레에 의뢰하여 개발한 것이 "물에 타서" 마시는 커피였다. 즉, 커피 가루를 뜨거운 물에 타서 간단하게 마시는 편리한 방식이 등장한 것이다. 우리가 인스턴트커피 혹은 솔루블커피라고 부르는 제품이 개발되어 보급됨으로써 커피 만드는 방식에 일대 혁명이 이루어졌다.

인스턴트커피에 거부감 느낀 50년대 한국 사람들
 

<조선일보> 1959년 4월 16일 자에 실린 기사 '미국인도 모르는 커피맛'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그렇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방식으로 커피를 마셔왔을까? 커피를 처음 접한 19세기 후반부터 커피는 당연히 끓여서 마셨다. 일제 강점기에도 커피는 대부분 다관이라고 하는 찻주전자에 커피 가루와 물을 넣고 끓인 후, 찌꺼기를 제거한 커피물을 다시 끓인 후에 설탕을 듬뿍 타서 마셨다. 커피 기구라고 불리는 드립 포트가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널리 보급되지는 않았다. 이렇게 끓여 마시는 커피 음용법이 언제까지 지속되었을까? 대체로 1960년대 중반까지였다.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미국에서 인스턴트커피가 크게 보급되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커피는 끓여서 마셔야 제맛이었다. 1938년에 인스턴트커피가 개발되었을 때 사람들은 "이런 것도 커피인가?"하고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잘 마시지 않았다. 그런데 2차 세계대전 중에 군대에서 대량으로 널리 사용되면서부터 점차로 보급되기 시작하여 10년이 지난 1948년에는 미국 커피 총소비량의 5%에 달하는 7천만 파운드의 인스턴트커피가 소비되었고, 다시 10년이 지난 1958년에는 5억 파운드에 달하여 미국 총 커피소비량의 1/5 내지 1/3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인스턴트커피 소비량의 이런 증가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미국 사람들은 이 커피를 좋아한다는 말을 좀처럼 하지 않았다. 인스턴트커피는 가족용으로 사용할 뿐 손님 접대용으로 사용하지도 않았다. 인스턴트커피를 손님에게 내놓는 것은 결례였다. 이것을 커피라고 부르지 않고 '채소가루'라고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커피는 여전히 끓여 마시는 것이지 타서 마시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일보> 1959년 4월 16일 자에 소개된 '미국인도 모르는 커피맛'에 나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50년대 말까지 분말형 인스턴트커피는 크게 유행하지는 않았다. 한 신문의 표현대로 이른바 인스턴트커피가 "시장에 나와 돌아다니고 있지만" 여전히 사람들이 선호하는 것은 커피 원두 가루를 물에 끓여 만드는 제대로 된 커피였다.

<조선일보>는 1959년 1월 16일 자에 커피를 "손쉽고 맛있게" 만드는 법을 소개하였다. 이 신문이 소개한 것은 인스턴트커피를 손쉽게 "타는" 방법이 아니고, 커피 원두를 갈아서 "끓여 마시는" 법이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커피는 끓여 마시는 것이 제대로 그 맛을 즐기는 방법이라는 것이 상식이던 시대였다. 이 신문 기사에서 처음으로 다룬 것은 커피 원두였다. 미국산 "에무제트"(아마도 이상이 즐기던 MJB)가 빛깔도 좋고 맛도 제일 좋은 커피로 언급되었다. 그 외에 멧시월(맥스웰), 쌈뽕(샌본) 커피도 소개되었다.

원두에 이어 소개한 것은 커피를 끓이는 도구였다. 이 신문에 의하면 당시 보통 가정에서는 '파코레라'(퍼컬레이터)라고 하는 커피를 끓이는 주전자를 많이 사용하고 있었는데 이 신문에서는 '파코레라'보다는 융을 이용한 드립식이 제일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추천하였다. 원두 가루 2~3 티스푼으로 한 컵을 만드는 것을 권하였는데 이것은 요즘 드립에 사용하는 원두의 1/2 정도라고 보면 된다. 맛 좋은 커피를 마시려면 주의할 점으로 신선한 물을 사용할 것, 융을 비누로 빨지 말고 물에 담가두는 방식으로 세척할 것, 커피는 데워서 마시지 말 것 등을 나열하였다.

속속 들어오는 외국 브랜드 커피, 토종 커피보다 맛있을까?
 

카페의 모습 ⓒ pxhere

 
커피가 유행하는 것과 함께 커피를 마시면 몸이 어떤 영향을 받게 될지도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사였다. 당시 신문에는 커피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기사가 적지 않게 실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커피의 효능에 대해서는 상반된 주장이 난무하였다. <동아일보> 1959년 12월 1일 자는 커피가 중추신경 조직을 자극하여 깊이 사색하도록 만들어 주고 육체적인 능력을 진전시켜 주는 반면, 커피를 과다하게 마시면 위장 장애를 일으킨다고 주장하였다. 이런 특성으로 인해 잠이 오지 않게 하는 부작용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이에 반해 <경향신문>은 1959년 3월 23일 자 '수면의 과학' 기사에서 "커피가 우리를 자거나 또는 못 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고 썼다. <동아일보> 1959년 9월 29일 자 '카페인의 득실'에서는 커피가 "적당히 마시면 약이 되고 지나치면 해롭다"는 매우 평범하지만 정확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커피에 관한 상식이 넘치던 시대가 1950년대 말 대한민국이었다. 커피에 관한 신문 기사가 1년에 100건을 넘어선 것이 1957년이었고 1959년에는 180건을 넘어섰다.

<조선일보>는 1959년 4월 16일 자 '미국인도 모르는 커피 맛'를 통해 미국에서 인스턴트커피 소비가 늘고 있는 것을 보면 "보통 미국 사람들이 진짜 커피 맛을 알고 마시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1950년대 말 우리나라가 비록 미국의 경제원조에 의지해 살아가고 있었지만 커피를 보는 시각에서는 미국인보다 우월하다는 자신감이었다.

최근 한국의 커피 소비 시장 확대에 따라 미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 명성을 얻고 있는 유명한 커피 브랜드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이 자주 들린다. 밀려오는 외국 유명 카페에서 파는 커피가 우리나라 토종 카페에서 제공하는 커피보다 맛이나 향이 좋을까? 라는 의구심이 밀려든다.
덧붙이는 글 참고문헌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1959년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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