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워있는 마네킹 옆에 섬뜩한 식칼이 놓여있고 벽과 바닥엔 피가 낭자하다. 마치 살인사건 현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곳. <한국의 CSI> 저자와의 대화 강연장에 범죄현장이 재현됐다.
대한민국 대표 프로파일러 표창원 경찰대학 교수와 과학수사 전문가 유제설 순천향대 법과학대학원 교수가 펴낸 <한국의 CSI>. 치밀한 범죄자를 추적하는 한국형 과학수사의 모든 것을 담은 만큼 지난 6일 <오마이뉴스>에서 독자들과 만난 시간도 흥미진진했다.
미국 드라마 CSI로 과학수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인지 강연장은 독자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두 저자는 호기심 가득한 독자들에게 루미놀 용액을 이용한 혈흔 감식과 흉기나 낙하혈흔과 같은 증거수집 등 현장 과학수사 과정을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연하는 것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이어 두 저자는 과학수사로 범죄사건을 해결한 국내외의 여러 사례를 소개했다. 최초의 DNA 감식 수사로 살인 누명을 벗은 영국 청년의 이야기, 자살처럼 보이는 사건현장에 오히려 깨끗하게 닦여있던 소주병과 참혹한 모녀 살인사건 현장에 남겨진 용의자의 흔적 때문에 범인을 잡을 수 있었던 이야기들은 독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자살인 것 같아요. 그래도 기본적인 것은 하자. 김 형사 소주병에 지문 좀 채취해봐. 그래서 분말처리를 소주병에 했는데 피해자의 지문이 나와야 하는데 그 누구의 지문도 안 나옵니다. 아 이상합니다. 일부러 누군가 지우지 않고선 이럴 순 없습니다." - 유제설 교수
하지만 이들은 흥미로운 과학수사 이야기와 함께 이내 과학수사의 위험성도 강조했다. 유제설 교수는 "과학의 발전이 과학수사의 축복이자 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수사를 통해 범인을 찾아낼 수도 있지만 과학수사에 대한 맹신이 억울하게 누명을 씌울 수도 있다는 것.
"과학의 발전은 과학수사의 축복, 과학수사의 재앙. 양날을 가진 검. 아주 미세한 범인의 신체 부위 조각만으로도 범인의 DNA를 찾아낼 수 있죠. 그렇다는 얘기는 범인이 아닌 사람의 DNA도 쉽게 찾아질 수가 있다는 얘기죠. 그것이 절대적으로 범인의 것이라고 믿을 경우, 근데 만에 하나 범인의 것이 아닐 경우 어떻게 돼죠?"
이어 표창원 교수도 "과학수사도 인간이 하는 일이 때문에 실수나 오류가 있을 수 있다"며 "잘 못했을 때 감추려고 하는 것보다 용기 있게 밝히는 것이 수사와 국민의 신뢰를 얻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요즘 '부러진 화살'이 웅변하듯이 우리 경찰도 검찰도 법원도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잘못, 실수했을 때 그것을 감추려고 하고 덮으려고 하기보다 받아드리려고 하는 것이 훨씬 더 용기 있는 일이다."
유제설 교수는 드라마나 책을 통해 수사기법이 너무 알려지는 것 아니냐는 독자의 질문에 "과학은 수사기관만의 무기가 아니라며 법정에서 피고 측과 무기평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답했다.
"우리가 가가호호 방문해서 CSI 보지 말라고 케이블TV 다 끊어버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야 법정에서 같은 무기를 들고 싸우겠죠. 이게 수사기관만의 무기라면 피고인 측은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현장에서 경찰로 근무했었던 두 저자는 사건 해결을 위해 참혹한 현장에서 일하며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수사관들의 고충을 털어 놓기도 했다.
"유영철 사건 때, 신촌 뒤 야산에서 땅을 파니까 비닐봉지에 쌓여있는 절단된 수많은 시신들을 발굴했습니다. 그 시신들을 발굴하는 것뿐만 아니라 짝을 다 맞춰야 해요. 그 역할을 경찰관들이 손으로 다 합니다. 코를 찌르는 시신 냄새를 맡으면서. 거기에 대해서 아직까지 그 분들이 이후에 휴가를 얻은 것도 아니고 상담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다음날 바로 출근해서 사건정리하고 서류보고하고 다 해야 했고.. " - 표창원 교수
현장 감식, DNA, 검시 등 과학수사의 대표 영역들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상세히 알려주고 오 제이 심슨 사건, 가수 김성재 사건 등 실제 사례를 통해 치밀한 과학수사 현장을 생생하게 담은 책. <한국의 CSI> 저자와의 대화는 오마이TV와 인터파크 인문소셜클럽 공동주최로 열렸다.
ⓒ | 2012.02.08 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