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청룡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배우 윤정희씨의 발언은 새삼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사실 윤정희씨의 말은 특가법상 뇌물수수죄로 구속된 신성일씨에 대한 구명을 호소하는 발언도 아니었다.

다만, 발언은 영화계의 큰 별이 불미스러운 일로 교도소에 있다는 사실에 인간적인 연민과 그에 따른 안타까움으로 읽혔다. 더구나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으며, 영화적 업적과 정치적 범죄를 다르게 평가해야 하는 측면도 있었다. 그럼에도 싸잡아 비난을 들어야 했다.

그날 정말 공격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니 비판을 들어야 했다면 그 영화 시상식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조나단 베론이 이야기하듯이 사람은 '부작위의 편향'이 있음이 한 번 더 확인되었다. 어떠한 행동과 말을 하면 욕을 먹고 아무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다.

▲ 지난 3월 스크린쿼터 축소 법안 국무회의 의결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연 영화인들.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무슨 말이냐 하면, 그날 시상식에서 그 누구도 스크린쿼터 축소에서 한국영화를 구원해달라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는 말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아예 논의가 되지도 않았다. 차라리 문제를 삼으려면 이 점을 문제 삼아야 했을 것이다.

더구나 진행자와 손님 간의 사업 이야기와 농담 따먹기가 더 크게 매체를 장식했다. 더구나 이날 시상식에는 진보적인 영화들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차별화되었다는 평가를 들었던 터여서 더 아이러니했다. 생각해보면, 스크린쿼터 이야기를 꺼내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자문하기도 한다. 왜 이러한 이야기를 꺼내는가 하면 연말을 마무리하는 한국 영화가 우울한 2007년을 예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BRI@2006년을 긍정적으로 기억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전반기의 이야기였다. <괴물>이 1300만 명을 동원하고, <왕의 남자>가 1230만 명, 여기에 <타짜>가 670만 명을 동원했다. 영화 편수는 110편에 이르러 예년에 두 배에 가깝다. <왕의 남자>의 경우 소나타 7000대의 효과를 본 것으로 추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괴물>과 <왕의 남자>는 당연히 참패했다. 일본에서 개봉된 영화 편수도 절반으로 줄어든 한 해였고, 일본 박스오피스에 단 3편만 올라가는 기염(?)을 토했다.

무엇보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들은 하반기에 '블랙아웃 효과'를 발휘해서 오히려 관객들을 쫓아냈다. 이는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을 높여 스크린쿼터 축소의 명분으로만 작용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 영화들은 아주 강도가 강한 초콜릿이었다. 매우 단 초콜릿은 사람들의 입맛을 버려놓아 다른 음식들을 먹지 못하도록 만든다.

추석 이후에 수많은 영화들이 의미 있음에도 백만은커녕 50만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속출했다. 곧 이들 영화들은 간판을 내리기에 바빴다. 11월에는 아예 수능 특수의 혜택도 받을 수 없었다.

12월 방학 들어 간신히 살아나기는 했다. 130억 제작비의 <중천>은 100만 관객을 기점으로 탄력을 받으려 무진장 애를 쓰고 있지만 쉽지 않다. <미녀는 괴로워>는 벌써 250만 명을 돌파했다. 그나마 내용은 'S라인'과 성형 노이로제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크린쿼터제도를 축소한 것이 얼마나 근시안적 선택이었는지 알 수 있다. 그렇다고 영화인들이 스크린쿼터 제도에 대해서 방기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안타깝게도 이들의 1인 시위나 각종 문제 제기에도 정부나 매체, 여론은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정말 위기는 2007년도에 시작된다. 실질적으로 스크린쿼터제도가 그 영향력을 보이는 것은 올해가 아니라 내년이기 때문이다. 이미 영화제작 기획이 줄어들었고, 구조조정을 하는 데도 늘었다. 여전히 외부의 투기 자본이 우회상장을 통해 대규모 들어와 있다. 일본 자본 또한 한류에 영합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 영향력의 행사는 단순한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돈 되는 영화 그렇지 않은 영화. 그만큼 한국 영화 제작 토대가 불안하다는 의미이다. 자본의 전횡으로 어느 때보다 영화계의 양극화가 심해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의 다양성은 더욱 위축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2006년 상반기의 껍데기 결과에서 벗어나 독립영화전용관 건립 등의 제도적 접근은 물론 스크린쿼터제도 재논의에 다시 주목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미 과거가 되어 버린 한류 승승 장구론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부 정책은 사전 '사이렌'과 같다. 사후 약방문이 아니라 미리 예측하고 대비하는 것이 정책의 본질임은 영화 정책에서도 달라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덧붙이는 글 |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보낸 글입니다.

2006-12-31 12:24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데일리서프라이즈>에도 보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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