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세 주인공(사진 왼쪽부터 문소리, 김정은, 김지영)이 골을 성공시킨 뒤 어깨동무를 하며 기뻐하고 있다. ⓒ MK픽쳐스 제공
그냥 보고만 있어도 가슴이 먹먹해진다. 잠깐 긴장을 놓을라치면, 금세 뜨거운 것이 목에까지 꽉 들어찬다. 그럴 때면 제대로 숨쉬기 힘들다. 대한민국 세 아줌마들, 관객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다. "아자~힘내자"라는 혜경(김정은)의 말에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가고, 사기 당한 남편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미숙(문소리)의 표정을 보면 시나브로 눈가가 촉촉해진다.
기약 없는 신파로 빠져들려고 할 때마다, 정란(김지영)은 농익은 사투리를 거침없이 내뱉는다.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제작 MK픽쳐스·이하 우생순)은 그렇게, 울다가 웃다보면 124분이 훌쩍 지난다.
사실 결론을 아는 영화는 매력이 없다. 보기도 전에, 누군가 "범인은 절름발이야"라는 얘기를 하면 벌써 김이 '팍' 새버린다. <우생순>이 딱 그 꼴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출전한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이야기를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대표팀은 우여곡절 끝에 결승전에 오르지만, 세계 최강 덴마크에 져 기대했던 금메달은 끝내 목에 걸지 못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3년 전의 옛 기억, 게다가 결론까지 알고 있는 이야기만으론 분명 긴장감이 떨어진다. 하지만 <우생순>은 볼 맛이 난다. 재미가 있다. 왜일까. 감동적인 스토리? 대답은 "아니올시다"다.
그래도 눈길을 사로잡는 건 역시 감독의 몫이 크다. 임순례 감독은 배우를 '선수'보다 '사람'으로 살갑게 그려냈다. 세계 최고란 평가를 받고 있는 미숙도 알고 보면 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임을 알렸다. 빚을 갚기 위해 젊음을 바쳤던 코트를 떠나 마트에서 물건을 팔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았다. "메달을 따서 돌아오는 포상금보다, 당장 갚을 돈이 필요하다"는 그녀의 대사가 "열악한 상황이었다"는 말보다 더 와 닿는다.
이 뿐만 아니다. 핸드볼 큰잔치에서 우승했어도, 당장 내일이 걱정돼 마음껏 기뻐하지도 못한다. 살기 위해 코트로 돌아갔지만, 젊은 선수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태릉이 경로당이야. 지들끼리 다 해 먹네"란 말까지 듣는다.
화가 나지만 아줌마 선수들이 감내해야할 냉혹한 현실을 감독은 '쌩'(live)으로 보여준다. 화려한 그래픽 등 특별한 기교는 덧대지 않았다. 이 때문일까. 누군가는 <우생사>를 "스포츠 영화보다는 인간극장에 가깝다"고 평하기도 했다.
배우들의 열연에도 경기 도중 보이는 어색한 몸짓은 못내 아쉽다. 그리고 이건 팁(Tip). 데이트 할 때는 절대 보지 말 것. 특히 KBS 휴먼다큐 <인간극장>보다가 눈물 흘려본 적 있는 이들은 더 조심해야 한다. 이 영화, 아무리 눈물샘이 말라비틀어진 사람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막기는 힘들다. 옆에 앉은 이보다 더 펑펑 울 수 있다. 정말이다. 10일 개봉.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