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기대 이상!!!"(ABC, 다음) "
"산만하고, 내용도 없고, 재미없다."(kimjk9434, 네이버)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 대한 관객 평이 극과 극으로 엇갈리고 있다. '모' 아니면 '도'다. 웬만해선 타협하려 들지도 않는다. 논란의 강도만 따지면, 국내·해외 영화를 통틀어, 올해 개봉한 영화 가운데 단연 으뜸이다.

포털사이트나 블로그 등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분석 글이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져 나온다. 누리꾼들은 각자 나름의 논리를 내세우며 덧글 창을 통해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일단 지금까지의 대세는 "유치하다. 재미없다"에 무게가 쏠리는 듯하다. 하지만 "안 보면 후회한다"는 '맞수' 의견도 만만치 않다. 과연 누구 말이 맞는 것일까.

 워쇼스키 감독의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서 주인공 '스피드'(에밀 허쉬)가 운전하는 레이싱 자동차 '마하6'가 '드리프트'를 하며 경기장을 빠르게 돌고 있다.

워쇼스키 감독의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서 주인공 '스피드'(에밀 허쉬)가 운전하는 레이싱 자동차 '마하6'가 '드리프트'를 하며 경기장을 빠르게 돌고 있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엇갈리는 '통계' 따라 마음도 '흔들'

<스피드 레이서>는 지난 8일 전국 302개 극장에서 개봉했다. 개봉 2주째가 다 됐지만, 관객 수는 초라하기만 하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금껏 약 70만 명의 관객(20일 현재 기준)이 영화를 봤다.

반면, 9일 먼저 개봉한 <아이언맨>은 관람객 400만 명(20일 현재 약 360만 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스피드 레이서>에 비해 자그마치 5배를 훌쩍 웃도는 수준이다.

영화 평론가들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영 힘을 못 쓰고 있는' 상황"이라며 "지금 추세라면 100만 명을 넘기도 힘든 상황"이란 조심스런 전망까지 내놨다. '관객의 선택'만 놓고 보면, "재미없다"는 평이 맞아 보인다.

하지만, 누리꾼들의 평가는 자못 '너그럽다'. 포털사이트 다음(daum)에서 <스피드 레이서>는 평점 10점 만점 중 8.1점을 받았다. 네이버(7.77점), 야후(7.4점), 엠파스(7.56점) 등에서도 대부분 8점에 가까운 점수를 얻었다. 별 다섯 개에 네 개 정도 받은 셈이다. 다시 마음이 흔들린다.

"이 영화, 재미있나?"

<매트릭스> '워쇼스키 형제'는 어디로 갔나?

<스피드 레이서>는 자동차 경주를 소재로 한다. 감독은 이를 통해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정의는 결국 승리한다"라는 주제 의식도 담았다. 다소 뻔하지만, 이런 코드는 시쳇말로 쉽게 '먹힌다'. 단 1~2초 안에도 금세 마음을 '찡'하게 하는 소재다. 이 정도 구성을 갖추고 있는데, "토할 것 같다"는 평은 너무나 가혹하다.

논란의 핵심엔 '감독'이 있다. '앤디 워쇼스키'(동생)와 '래리 워쇼스키'(형). 이른바 '워쇼스키 형제'라 불리는 이 둘은 <매트릭스> 시리즈(매트릭스, 리로디드, 레볼루션)를 만들었다. 형제는 영화에서 '실제'는 아니지만, 마치 존재하는 것처럼, 때론 '실제'보다 더 생생하게 인식되는 가상현실(시뮬라시옹)이란 철학적 개념을 도입,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건물 옥상에서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허리를 90도로 뒤로 꺾어 총알을 피하는 장면은 영화팬들을 경악케 했다. 그 덕에 형제는 "영상 혁명을 이뤘다"는 찬사를 얻었다.

'그런 감독'이기에, 당시 기억을 기대했던 관객에겐 '가족애'나 '정의론' 따위는 다소 실망스럽게 느껴질 공산이 크다. 회사원 심윤식(36)씨는 영화를 보기 전 "<매트릭스> 3부작을 집대성한 워쇼스키의 작품이 아니던가"라며 기대했지만, 관람 뒤 "12세 관람가라구? 이건! 0세 관람가야!"라고 혹평했다.

 워쇼스키 감독의 영화 <스피드 레이서>의 한 장면. 레이싱 자동차들이 경기 도중 거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영화에선 이를 '카-푸'(car-fu)라 부른다. '카-푸'는 자동차(car)와 쿵푸(kungfu)를 합친 말이다.

워쇼스키 감독의 영화 <스피드 레이서>의 한 장면. 레이싱 자동차들이 경기 도중 거친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영화에선 이를 '카-푸'(car-fu)라 부른다. '카-푸'는 자동차(car)와 쿵푸(kungfu)를 합친 말이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화려한 그래픽, "역시 워쇼스키!"

하지만, 그래픽 얘기를 꺼내면 상황은 '급(急)' 반전된다. 이 대목에선 관객 대부분은 "역시 워쇼스키다"라며 입을 모았다. 영화는 초반부터 숨 막히는 레이스 장면으로 시작한다. 차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질주하는 '드리프트' 기술에 곳곳에서 "오~""와~"하는 엷은 탄성이 터져 나온다.

'드리프트'는 자동차 경주 용어로, 차가 코너를 돌때 옆으로 미끌리는 것을 말한다. 온라인 게임 '카트라이더'를 떠올리면 쉽다. 심하게 뒤틀린 경기장에서 절벽을 거꾸로 오르는 차까지. 형제는 중력의 법칙 따윈 깡그리 무시했다. 원작답게 영화는 지독하리만큼 만화 같다.

여기에 알록달록한 색감이 더해지면서 눈을 어지럽힌다. 한 누리꾼은 이를 "시각적 폭력 수준에 가까운 색들의 향연"이라고 했다.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쿵쾅'거리는 비트는 심장을 자극, 보는 이를 흥분시킨다.

또한 레이싱 자동차들의 격투, 이른바 '카-푸'(car-fu·자동차와 쿵푸의 줄임말) 장면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한 한 누리꾼의 평.

 "솜씨 없는 문장과 스틸 컷 몇 장으로 레이싱 장면의 화려한 비주얼과 스피디한 쾌감을 따라잡기란 역부족인 지경이다."(woodyh, 이글루스)

 <스피드 레이서> 이런 사람만 볼 것!

"좋다", "나쁘다" 다툼은 끝이 없어 보인다. 이에 한 누리꾼은 '5가지 조건'을 내걸었다. 이름하야, '<스피드 레이서> 이런 사람만 볼 것!'. 내용은 이렇다.

첫째, 어릴 때 원작에 대한 기억이 선명한 사람. 둘째, 디지털 영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는 이. 셋째, 카트라이더 등의 레이싱 게임에 익숙한 사람. 넷째, 비(정지훈)의 팬이라 자부하는 이. 다섯째, 온 가족이 손잡고 함께 극장에 가려는 사람. 자, 어떤가. 이 영화, 볼 마음이 생기는가? 판단은 독자에게 맡긴다.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 출연한 배우들이 함께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뒷줄 오른쪽 두번째에 할리우드 영화에 첫 진출한 가수 비(정지훈)가 보인다.

영화 <스피드 레이서>에 출연한 배우들이 함께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뒷줄 오른쪽 두번째에 할리우드 영화에 첫 진출한 가수 비(정지훈)가 보인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이기자 이야기](goster.egloo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스피드 레이서 워쇼스키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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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이 있어도 말을 못하는 내가 밉습니다. 화가 나도 속으로만 삭여야 하는 내가 너무나 바보 같습니다. 돈이, 백이, 직장이 뭔데, 사람을 이리 비참하게 만드는 지 정말 화가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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