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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 개론>, 타이틀만 보면 건축에 관한 영화라는 느낌이 솔솔 풍긴다. 실제로 주인공의 직업과 영화 스토리에서 건축이 중요한 소재이고, 그들의 관계 맺음과 형성에 건축이라는 매개체가 결정적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건축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더라도 '개론' 수준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건축도면을 보는 방법도 모르고 복잡한 시공과정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더라도 영화 관람에는 지장이 없다. 그것은 이 영화가 건축의 탈(?)을 쓴 심리극이기 때문이다.

승민(엄태웅)이 서연(한가연)이 주문한 제주도 집의 건축을 맡았을 때, 클라이언트인 서연은 승민이 읊는 온갖 전문 건축 용어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리고 두 주인공이 대학교 1학년 때 같이 들었던 건축학 개론의 교수도 전문용어를 쓰지 않고 건축의 의미를 짚어본다. 이게 결정적인 단서다. 건축이라는 소재를 미세하게 파고들지 않고, 건축이 갖는 외연을 거시적으로 비춰보며 건축과 인간(관계)의 유사함을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낸다. 그리고 고백이라는, 무언가를 외부로 드러내는 미묘한 행위에 얽힌 심리와 긴장감을 밀도 있게 다룬다.

건축과 사람, 소통으로 소통

집을 지을 때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공사비? 실평수? 건축학 개론 수업에서는 이런 걸 언급하지 않는다. 외려 자기가 사는 곳, 자기가 움직이는 동선을 살펴보고 직접 사진에 담아보라고 한다. 이게 건축과 무슨 상관일까. 주문자 입장에서는 살기 편하고 멋들어진 건물이 최고가 아닐까. 절반은 맞다. 나머지 절반은 건축물 주변의 지역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온다.

<건축, 사유의 기호>(승효상)에서 건축은 역사와 인간을 담아야 한다는 의미의 구절이 있다. 신촌 네거리에 피라미드 형태의 금빛 찬란한 화려한 건축물을 지었다고 가정하자. 그 건물이 건축학적으로 뛰어난들 과연 한국에, 신촌이라는 지역의 역사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피라미드가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 그 땅의 역사성과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반영되지 않으면 죽은 건물, 불통(不通)의 건물이라는 얘기이다. 이것을 작금의 시대에 비유하면 스펙 쌓기에만 몰입하지 말고 자신이 속한 나라와 사회의 구성원이자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라는 호통처럼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과 건축은 그 자체로 독립적이거나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외부와의 소통과 관계에 달려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공간과 마음, 구획의 고뇌

건물의 외관은 외부에서도 볼 수 있고 건축가의 철학을 읽을 수 있다. 반면 건물 내부는 사적인 공간이고 건축주의 의향과 목적에 가깝게 만들게 된다. 물론 건물 외관에도 건축주의 요구를, 건물 내부에도 건축가의 철학을 담을 수 있지만, 서연이 아버지를 위하고 피아노를 치려는 목적 때문에 내부 설계를 바꾼 건 구획의 문제이기도 하다. 공간과 마음의. 특정 공간의 비중과 의미가 커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공간의 크기와 의미가 축소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특정인을 향한 마음이 넓어지면 다른 사람이 내 마음에서 차지하는 입지가 줄어들지 않을까. 서연이 동아리 선배인 재욱에게서 승민에게 구획하는 마음이 커져가는 과정, 성인이 되어 결혼을 앞둔 승민이 잊고 있던 서연에게 옛 감정이 다시 지펴지는 모습이 그렇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은 누군가를 뜨겁게 담았던 공간을 한순간에 급랭시키고 축소시킬 수 있다. "이제 그만… 꺼져줄래?"처럼. 연애 햇병아리인 승민이 서연과 선배 재욱의 관계에 의심을 갖고 속마음과 정반대되는 말을 토해낸다. 일종의 고백이자 폭로, 단점이면서도 어쩌면 장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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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의 미학(微學), 타이밍의 미학(微學)

건축학 개론의 미덕은 고백이, 특히 남녀 사이의 고백이 아름다운 행위나 미학(美學)이 아닌 고난도의 미학(微學)이라는 고백(?)에 있다. 풋내기의 첫사랑이든 인생의 쓰디쓴 맛을 겪은 노련한 성인의 사랑이든 고백은 그 자체로 쉽지 않다. 그런데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고백을 하고 접한다. 사랑의 감정뿐만이 아니라도 죄의 고백, 비밀의 고백 등. 넓게 보면 비리 폭로 같은 행위도 일종의 고백일까. 고백과 폭로는 뚜렷이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영화에서는 거의 샴쌍둥이처럼 간격이 없이 붙어 다닌다.

승민의 연인 은채(고준희)가 "쌍년이라던데요!"라며, 승민이 자신의 첫사랑을 표현한 말을 서연 앞에서 털어놓는다. 이때 서연은 그것이 과거의 자신에 대한 승민의 폭로인지 고백인지 애매모호했을 것이다. 분명 그 말은 학창시절 외모와 재력과 스킬(?)에서 '넘사벽'이었던 선배 재욱에 대한 열등감의 폭로이자 서연에 대한 서운함(오해가 빚은)이 담긴 고백이기도 하니까. 그것은 고백에는 진정성도 필요하지만 타이밍이 더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남긴다.

천주교의 고해성사 같은 고백행위에는 시한이 정해져있지 않다. 신에게 죄를 일찍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가산점(?)이 붙을지는 모르지만 늦게 한다고 고백 자체가 무효가 되거나 의미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러나 사랑 고백은 타이밍을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썰렁하거나 발설하지 않느니만 못한 행위가 된다. 어쩌면 평생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할 금기어가 되기도 한다.

승민이 서연에게 자기 감정을 밝히지 못한 채 어리바리 행동하고, 마침내는 제 스스로 서연과 선배 재욱의 관계를 단정해서 방구석에서 눈물 쏟는 모습에 관객들이 공감한 건 왜일까. 누군가를 애틋하게 품었던 감정이 표현해서는 안 될 사어(死語)가 된 경험을 한 번쯤은 겪어봤기 때문일까. 지나고 보니 저 때가 고백할 타이밍이었는데, 그런 말을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후회와 함께.

서툰 연인들의 서툰 고백인데 누군가가 떠올랐다. 승민의 순박하면서도 멍충이 같은, 자기 속내를 바보처럼 가감 없이 드러내는 행동에서. 우리 시대 희대의 바보라 불렸던, 개론 수준에서 그쳐야 할 고백을 커밍아웃하며 스스로를 험난한 세상의 먹이로 던진 사람. 그는 참 고백을 못했다. 하지 말아야 할 고백들을 직설화법으로 터트리며. 그 사람은 서연이 사는 제주도의 집처럼 자연 가까이에서 사색하고 산보하는 게 어울렸을 텐데, 정작 그런 시간은 운명처럼 짧게 끝났으니.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이해를 시작하는 것' 이 건축학 개론의 시작처럼 이 세상에는 귀 기울여줄 바보들의 고백이 무성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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