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 MBC


지난 방영분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골든타임>에서 눈치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민우(이선균 분)가 응급환자를 앞에 두고 우왕좌왕하기 바쁜 과장 4인방에게 "최인혁(이성민 분) 선생님께 연락할까요"하는 장면은, 통쾌하거나 혹은 '싸한 느낌'이 교차하는 장면이었다.

시청자의 입장에선 당연히 이민우나 최인혁에게 감정이입할 테니 과장 4인방보다 최인혁의 솜씨를 신뢰하는 이민우의 발언에 속이 시원했을 테고, 반면에 과장 4인방의 입장에서 볼 때엔 '우리를 물로 보나' 하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호흡 곤란도 모자라 어레스트(심정지)라는 중대 고비에 직면한 응급환자를 앞에 두고 옥신각신하는 과장 4인방 대신에 최인혁이 있었다면, 어느 부서 소관이냐를 따지며 책임 회피에 급급하기보다는 당장 집도를 위한 메스를 집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과정 4인방들은 끝내 최인혁을 수술대로 호출하지 않았다. 최인혁을 호출하는 대신 이민우를 호출했다. 이는 자신들의 노력으로도 응급환자를 살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자 동시에 최인혁을 '디스'하는 전형적인 병원 정치의 구태를 보여준다.

병원이라는 조직이 단순히 생명을 살리고 병을 치료하는 히포크라테스의 정신에 입각한 하얀 가운의 집합체이기 이전에 정치적 논리가 작용한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는 과장 4인방이 최인혁을 '디스'하기 이전에도 있었다.

이사장 대리인 강재인(황정음 분)을 견제하는 이들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재인과 친척 관계인 작은할아버지와 고모할머니라는 건, 정치의 논리가 병원 곳곳에서 다각도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골든타임> 속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병원 정치의 논리는 강재인이나 최인혁이 작동하는 논리가 아니다. 과장 4인방 혹은 강재인의 작은할아버지 및 고모할머니가 자신의 이익을 보존하기 위해 정치 술을 발휘하는 데서 보여주는 정치 논리다.

<골든타임>

▲ <골든타임> ⓒ MBC


사람 살리는 병원이 실은 약육강식에 철저한 정글 같은 곳?

정글의 법칙으로 병원 정치를 조망하면 다음과 같은 은유도 가능하다. 정치 논리를 펼치는 병원 4인방이나 강재인의 작은할아버지 혹은 고모할머니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육식동물을 연상케 하는 반면, 최인혁과 이민우, 혹은 강재인은 초식동물처럼 보여진다. 이익을 위해 정치 술을 구가하는 이들 앞에서 이들은 한없이 무력해보이기 때문에 초식동물로 연상할 수 있어서다.

아무리 최인혁의 의술이 타 의사보다 뛰어난다 한들, 혹은 병원을 위해 건설적인 대안을 마련코자 하는 강재인의 의도가 순수하다 한들, 자신들의 유익이 최우선인 육식동물의 정치 논리 앞에서 한없이 무력하기만 하다면 이들의 열정이나 기백은 정치 논리 앞에서 먹잇감 밖에 되지 못하는 초식동물의 비애와 견줄 수밖에 없어서다.

병원 정치의 논리가 작동하는 사례는 최인혁을 '디스'하는 과장 4인방의 행태 말고도 또 하나 더 있다. 이민우를 향한 김민준(엄효섭 분)의 '디스'를 통해서 말이다. 송경화(홍지민 분)는 이민우에게 어느 과를 지원할 것인가를 묻는다. 이민우가 주저하며 외과라고 간신히 대답을 하자 송경화는 기뻐하며 이민우를 격려한다. 그리고는 이민우를 적극 밀어줄 것을 약속한다.

하지만 외과 레지던트 지원자 명단을 본 김민준은 이민우를 떨어뜨릴 것임을 송경화에게 밝힌다. 당황한 송경화에게 김민준은 "인턴 때는 실수해봤자 환자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레지던트는 다르다. 연차가 올라갈수록, 특히 외과는 생명과 직결되는데 (이민우는) 인턴 때부터 사고를 치는 거면 레지던트 때부턴 감당이 안 된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술 더 떠 김민준은 "게다다 (이민우가 개복하여 집도한) 산모가 만약 살아서 병원 밖을 나간다면 아마 더욱 기고만장할 거다"라고 응수까지 한다. 산모가 죽어 나가기를 바라는 고약한 심보가 그대로 표면화한다.

병원의 규정을 무시하고 인턴 주제에 임산부의 개복을 집도한 이민우를 견제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집도한 산모가 살아서 병원 밖을 나가지 못해야만 병원 내 위계질서를 되찾을 수 있다는 논리 때문이다.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드라마 <골든타임>의 한 장면. ⓒ MBC


중증외상센터 하나 없는 한국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디스하는 <골든센터>, 이번에는 최인혁과 이민우를 동시에 '디스'함으로 병원 정치의 냉혹함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병원 정치는 최상의 결과를 얻기 위해 달리는 메커니즘이 아니다.

강재인의 작은할아버지와 고모할머니처럼 자신의 유익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상대를 매수하는 정치술을 발휘하기도 하고, 실력 위주로 레지던트를 기용하기보다는 위계질서 보존을 위해 유능한 기린아, 이를테면 이민우와 같은 이를 냉혹하게 제치기도 한다.

유익을 위해서라면 혹은 위계질서라는 체계 수호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희생양을 찾기에 혈안이 된 병원 정치의 정치 술에 맞서는 법을, 강재인과 이민우는 배워야 한다. 병원 정치의 교활한 술수에 맞서 싸우는 법을 배우되 병원 정치에 오염되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 이들이 바로 이민우와 강재인이다.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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