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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톰 크루즈와 조니 뎁이 함께 찍은 사진이 화제가 되었다. 함께 출연했던 영화가 없던 두 사람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영화 제작자 제리 브룩하이머가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을 올린 것을 축하해주기 위해서였다.

먹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 도로를 질주하다 나무에 벼락이 떨어지면서 뜨는 '제리 브룩하이머 필름'. 할리우드의 최고 거물로 손꼽히는 제리 브룩하이머의 손길을 거친 영화들은 언제나 이렇게 시작한다.

<아메리칸 지골로> <플래시 댄스>등으로 입지를 다지다가 <비버리힐스 캅>과 <탑 건>으로 일약 할리우드 최고의 제작자로 등극한 제리 브룩하이머. 이후 그는 <폭풍의 질주> <나쁜 녀석들> <크림슨 타이드> <더 록> <콘 에어> <아마겟돈>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진주만> <캐리비안의 해적> <내셔널 트레저> 등의 흥행작을 쏟아냈다.

그가 제작한 영화에 출연했던 에디 머피, 톰 크루즈, 니콜라스 케이지, 윌 스미스, 조니 뎁은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배우로 올라섰다. 1980년대 중반 <탑 건>으로 스타 반열에 올랐던 톰 크루즈와 최근 <캐리비안의 해적> 시리즈로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조니 뎁은 제리 브룩하이머의 과거와 현재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서부극 같은 느낌

<론 레인저> 영화 스틸

▲ <론 레인저> 영화 스틸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할리우드 최고의 마이더스의 손인 제리 브룩하이머. 그러나 최근 제작한 영화들의 흥행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유명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페르시아의 왕자>와 애니메이션을 재해석한 <마법사의 제자>는 큰 실패를 거두었다. 그럼에도 제작한 드라마 <C.S.I>가 라스베가스, 뉴욕, 마이애미에서 맹활약했고, <캐리비안 해적>의 잭 스패로우 선장이 황금알을 낳는 해적으로 승승장구했기에 명성은 크게 바래지 않았다.

<캐리비안의 해적>의 영광을 다른 영화로 재현하고 싶었던 걸까? 제리 브룩하이머와 고어 버빈스키 감독, 조니 뎁은 다시금 의기투합했다. 그들이 뭉친 작품은 1933년 라디오 방송으로 첫 선을 보인 이후, TV·애니메이션·영화·만화·소설·게임 등으로 꾸준히 사랑을 받은 서부극 <론 레인저>.

보안관이었던 형이 악당 부치(윌리엄 피츠너 분)에게 죽임을 당하고, 자신 역시 총을 맞았던 존(아미 해머 분)은 죽음의 문턱에서 인디언 악령 헌터 톤토(조니 뎁 분)의 도움으로 '론 레인저'로 다시 태어난다는 <론 레인저>는 서부극 장르의 슈퍼히어로 같은 이야기다.

CG 애니메이션 <랭고>를 통해 흥미로운 서부극을 보여준 바 있던 고어 버빈스키와 조니 뎁이었기에 <론 레인저>에 거는 기대는 컸다. 하지만 영화는 다소 실망스러웠다. 149분에 달하는 긴 러닝타임에서 처음과 마지막의 대규모 기차 시퀀스가 눈과 귀를 자극할 뿐, 중간을 채우는 이야기는 하품이 나올 지경이다.

아미 해머가 론 레인저로서의 매력을 발산하는 부분도 없거니와 조니 뎁은 <캐리비안의 해적>의 잭 스패로우 선장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마치 <론 레인저>는 <캐리비안의 해적>의 서부극 버전인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다. 여기에 팀 버튼 감독의 영화에서 조니 뎁과 자주 연기 호흡을 맞추었던 헬레나 본햄 카터까지 진부함을 더해준다. 

백인인 론 레인저와 인디언인 톤토의 앙상블도 흥미롭지 못하다. 이미 이들과 유사한 콤비였던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에선 총과 흑인을 상징하는 짐 웨스트(윌 스미스 분)와 문명과 백인을 상징하던 아티머스 고든(케빈 클라인 분)이 티격태격하며 웃음을 주지 않았나. <상하이 눈>에서 동양을 상징하는 천 왕(성룡 분)과 서양을 상징하는 로이(오웬 윌슨 분)도 그랬다. 그러나 론 레인저와 톤토는 계속 옥신각신하지만, 전혀 유쾌하지 않다.

여러 의미로 작용한 '가면', 론 레인저의 경우

<론 레인저> 영화 스틸

▲ <론 레인저> 영화 스틸 ⓒ 소니픽쳐스 릴리징 월트디즈니 스튜디오스 코리아


1903년 발표된 바로네스 오르치의 소설 <스칼렛 핌퍼넬>에서 제시된, 낮에는 한량으로 지내다 밤에는 영웅으로 활약하는 이중적인 인물상은 1919년 존스톤 맥컬리가 연재한 <카피스트라노의 재앙>에서 '조로'로 이어졌다. 조로가 만든 망토와 가면을 계승한 이는 론 레인저다. 따지고 보면 오늘날 도시 자경단의 대선배 격이다.

숱한 영화들에서 가면은 여러 의미로 작용했다. <마스크>에선 욕망을 드러내는 장치였고,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는 과거를 감추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브이 포 벤데타>에선 저항의 상징이었고, <배트맨>이나 <조로>는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가면을 썼다. <론 레인저>에서 가면은 무슨 의미일까?

<론 레인저>가 회상의 구조를 취했음은 의미심장하다. 193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벌어진 쇼에 관객으로 찾아온 론 레인저 복면을 쓴 소년에게 톤토가 1869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론 레인저'의 이야기와 다르다는 소년에게 톤토는 "판단은 내게 달렸다"고 말하면서 "절대 복면을 벗지 말라"고 충고한다.

알려진 신화와 다른 이야기를 말해주는 구조에 담긴, 만인을 위한 정의의 상징인 복면 사나이의 모험담. 이것은 <브이 포 벤데타>에서 만들어진 세계에 저항하는 V(휴고 위빙 분)의 가면에 가깝다. <론 레인저>의 가면은 멈추지 말고 정의를 쫓으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다양하게 진행되는 서부극과 다른 장르의 이종교배

한때 할리우드 최고의 장르로 역사와 신화를 써나갔던 서부극은 지금은 주도권을 액션과 SF 장르 등에 내주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용서받지 못한 자>(1992), 코엔 형제의 <더 브레이브>(2010), 쿠엔틴 타란티노의 <장고:분노의 추적자> 정도가 온전한 서부극의 형태로 주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는 실정이다.

도리어 요즘 서부극은 다른 장르와의 이종교배로 활발하다. 서부 스타일의 스팀펑크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와 쿵후와 결합했던 <상하이 눈> 정도가 나온 2000년대 초반과 달리 근래에는 다양한 형태로 이종교배를 실험했다.

CG 애니메이션이었던 <랭고>, 뱀파이어가 나오는 <프리스트>, 만화책에서 빌려 온 안티히어로 <조나 헥스>, 무협과 결합한 <워리어스 웨이>, 외계인이 등장하는 <카우보이 & 에이리언>이 이종교배의 결과물이다. 하지만 <랭고>를 제외하고는 좋은 평가와 거리가 멀었다.

제작비 2억 5천만 불의 값비싼 이종교배 실험작 <론 레인저>는 완성도와 재미 면에서 관객에게 좋은 평가를 얻을 수 있을까. 서부극의 정서를 즐기고 싶다면 김치 웨스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만들었던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를 추천하겠다. 스시 웨스턴인 <스키야키 웨스턴: 장고>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이들이 멍청한 이종교배보다 몇 배는 우수하다. 많은 제작비가 영화의 전부는 아니다.

론 레인저 제리 브룩하이머 고어 버빈스키 조니 뎁 헬레나 본햄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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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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