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아프리카 케냐. 버스 밖에서 본 풍경 ⓒ 월드휴먼브리지


|오마이스타 ■ 취재/조경이 기자| 글로만 아프리카를 접했다. 연예기자다 보니, 이런저런 연예인들의 아프리카 봉사 소식을 전하는 일이 잦았다. 아프리카 케냐, 우간다, 가나 등을 다녀온 연예인들의 소식을 사무실에 앉아서 전화 몇 통 돌리면서 취재해서 쓸 때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보고, 느끼고, 그곳의 공기를 맡아야지 아프리카에 다녀온 연예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선행 그 이상의 채움과 감동에 대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아프리카라, 사실 쉽사리 결정을 내리기 어려웠다. 한여름에는 곳곳에 에어컨이 설치된 사무실에서 일 하는 게 익숙해져있는 나는 봉사활동을 앞두고도 주변 환경을 재단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운명적인 발걸음의 시초를 열어준 이가 있으니, 바로 배우 한지혜. 그녀가 올해 초 수자원개발 전문 국제구호개발 NGO 팀앤팀과 함께 아프리카 케냐로 봉사활동을 다녀온 것을 보고 동기부여가 됐다.

게다가 가수 자두가 이번 아프리카 봉사에 함께 하기로 했다.(관련기사: <가수 자두, 케냐에서 '잠보'만 50번 불렀다…왜?>) 자두 역시 아프리카 땅을 밟는 건 처음이었고 쉽지 않은 결정을 한 터라, 나는 더 고민할 새가 없었다.

그렇게 케냐를 향해 떠나기로 큰맘을 먹었는데, 주위에서 한마디씩 거들었다. "결혼할 나이에 신부수업이나 하지, 취소해라" "국내에 도와줄 사람 더 많다, 국내로 가라" "언니 거기 위험하대요. 괜찮겠어요?" "기자님 말라리아 걸려요, 황토병은요?" 등등. 긍정적으로 파이팅을 외쳐주는 사람보다 걱정과 근심어린 눈빛으로 우려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미 친한 동생까지 꼬드겨서 NGO 단체 월드휴먼브리지와 함께 하는 10박 12일 케냐 봉사 일정에 동참하기로 결심한 후였다. 총 42명의 봉사자가 한 팀이 되었다. 결정하기까지가 어렵지, 시작이 반이라는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상황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나이로비 공항 대형화재…"아프리카 못 가는 거 아냐?"

8월 7일 출국 날, 나이로비의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JKIA) 대형 화제가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먼 나라의 안타까운 국제뉴스 정도로 여겼을 일이 당장 내 문제가 돼 어리둥절했다.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떠나 나이로비에 내려야하는데 공항에 화재가 나면 우리 비행기는 어디에 착륙하는 거지?

위험하고 험난한 아프리카라고 생각하시는 부모님 걱정하실까봐 케냐가 아닌 캐나다로 간다고 했는데, 그럼 난 어디서 하룻밤을 자야할까. 그런 1차원적 걱정부터 오만가지 잡생각이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남은 휴가로 다른 나라에서 편안하가 즐기다가 돌아갈까.

그렇게 7일 하루 동안 '아프리카에 갈 수 있을까 없을까' 계속 걱정하고 잔꾀를 부리기도 하며 전혀 예측하지 못한 망상을 계속하다가 8일이 되었다. 42명의 팀은 혹시 몰라 오후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했다. 대박, 화재로 인해서 폐쇄되었던 나이로비 공항이 하루 만에 재개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뛸 듯이 기뻐해야겠지만 마음에 묵직한 것이 내려앉았다. 나, 진짜 간다.

13시간이 걸려 두려움 반, 설렘 반으로 도착한 케냐. 케냐의 수도인 나이로비에서 말린디, 말린디에서 가르센으로 우리들의 이동은 계속 되었다. 하루 종일 버스로 달렸다. 짧게 가는 거리가 3~4시간이 걸릴 정도였다. 태어나서 이렇게 버스를 많이 탄 건 처음이었다. 케냐, 정말 넓다. 

 케냐

ⓒ 월드휴먼브리지


 케냐

아프리카 케냐 나꾸르 사파리의 풍경 ⓒ 월드휴먼브리지


불평을 할 새도 없이 차창밖에 펼쳐지는 광경은 그저 서프라이즈! 놀라움 자체였다. 태초가 이런 모습이었을까 싶을 정도로 끝없이 초원이 펼쳐졌고, 하늘은 너무 맑았다. 구름이 저 멀리 손에 닿을 듯 했고, 그런 구름과 초원 사이에 원숭이 엄마랑 아가, 당나귀, 기린, 코뿔소 등이 지나갔다.

버스가 휙휙 지나가는 가운데 경이로운 풍경들은 계속됐고, 우리의 탄성도 이어졌다. 절대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촘촘하고 아기자기한 국내의 시골 마을과는 또 다른 광활한 날 것 그대로의 자연이 펼쳐졌다. 낮이고 밤이고 버스로 달리다보니, 긴 시간 동안 낮의 장엄한 풍경은 물론, 밤하늘의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 야경도 볼 수 있었다. 아름다운 소설 한편은 절로 뚝딱 써질 것만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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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케냐 오도간다 마을의 밤하늘 ⓒ 월드휴먼브리지


버스로 이동을 거듭하며 42명의 봉사대원들의 업무는 시작됐다. 이번 케냐행의 주된 목적은 의료봉사였다. 먼저 가르센 골반티 초등학교에 도착한 우리는 청소를 깨끗이 하고, 책걸상과 의료 용품, 약들도 정리했다. 그렇게 청소를 하면서 하루가 지나갔고, 의사 선생님들이 도착하면서 이틀간 실제적인 의료봉사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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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봉사를 하기 위해 가르센 한 초등학교 청소부터 시작. 아이와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청소 시작. ⓒ 월드휴먼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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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장을 받으러 오는 마을 사람들 ⓒ 월드휴먼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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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로 고통 받는 주민들에게 모기장을 나눠주고 있다. ⓒ 월드휴먼브리지


"당신들이 가면 우린 어떡하나요?"…가슴으로 눈물만 뚝뚝

이번 케냐 여정의 가장 큰 수확은 취재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봉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약국팀에서 약을 봉지에 담는 단순노동을 하고 있다가 피부과 보조로 배정된 나는 두 눈으로 믿기 힘든 광경을 맞닥뜨렸다. 심하게 다친 발목에 오염된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다. 누런 붕대가 깊이 파인 상처 부위에 들러붙어 있었다. 40대 초반의 아저씨로 보이는 환자는 울부짖었고, 내 가슴 속에도 계속 눈물이 흘러 내렸다.  

한국에서 의료 봉사단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인근의 마을 사람들은 몇 시간씩 걸어서 왔다. 워낙에 땅덩어리가 넓은 케냐지만, 걷고 또 걸어서라도 치료를 받고 약이라도 타가고 싶은 마음들이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많았고 대기하는 시간도 길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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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센 지역 의료 봉사 ⓒ 월드휴먼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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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에 염증으로 피부과를 찾은 아이.. ⓒ 월드휴먼브리지


2, 3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진료를 받았다. 점심도 먹지 못한 채 마냥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에게 캐러멜을 하나씩 까서 입에 넣어줬다. 오몰 조몰 잘 씹어 먹으며 미소를 짓는다. 그렇게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고, 그들의 얼굴을 쓰다듬고,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의 손을 잡고 안내하는 스킨십을 통해서 사랑의 마음을 주고받았다. 많은 말이 필요 없이, 마음은 계속 녹아내렸다.

의료봉사 마지막 날, 이미 약을 타갔던 남자가 또 약을 받으러 왔다. 이미 받아갔는데, 무슨 일인지 묻자, 남자는 "당신들이 가면 그 다음에는 어떡하냐"는 답이 돌아왔다. 기쁨과 보람 끝에 어쩔 수 없는 슬픔이 고였다. 의료봉사를 끝낸 뒤, 한국에 와서도 아프리카의 환자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고이는 후유증이 생겼다.

소똥으로 만든 집에서 하룻밤을 자라고요?

가르센 지역의 의료봉사 외에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마사이족 마을 체험이었다. 마사이족의 전통 집은 소똥과 흙을 물에 섞어 짓이겨 만든 '소똥집'이다. 내부의 가운데 화로가 놓여 있어서 거기서 요리를 하고, 좌우에 평상 같은 게 놓여 있어서 그곳에서 잠을 잔다. 한마디로 움막 혹은 텐트 같은 둥근 소똥집이다. 

마사이족 마을로 오기 전, 이런저런 풍문은 우리를 괴롭혔다. 소똥집 안에 벼룩이 있고, 화장실이 잘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밖에서 볼일을 봐야 하는데, 앉으면 전갈 등의 곤충이 엉덩이를 물 수도 있으니 여자들도 서서 볼일을 봐야 한단다. 이거, 완전 <정글의 법칙>이 따로 없다.

 마사이마을 소똥집

마사이마을 소똥집 ⓒ 월드휴먼브리지


 마사이마을 소똥집

마사이마을 소똥집 옆의 가축의 우리 ⓒ 월드휴먼브리지


아니, 어떻게 똥으로 만든 집에서 잠을 자란 말인가. 깨끗하게 자라온 처자들의 얼굴은 울상이 됐다. 그렇게 1시간가량 걸어 깜깜한 밤이 되어서야 공포의 소똥집에 도착했다. 큰 키가 아닌데도 살짝 고개를 수그려서 들어가야 했다. 그 집에는 할머니와 아들, 손자가 함께 살고 있었다. 할머니는 멀리서 온 손님에게 먹을 것을 대접하기 위해 콩과 옥수수알을 섞어 촉촉하게 대처서 줬다.

화로를 중심으로 나는 할머니와, 건너편에서 19살 청년과 10살 초등학생이 잠을 잤다. 혹시나 벌레가 몸을 타고 올라올까 걱정을 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 뒤척임도 잠깐이었는지, 어느새 새벽이 됐다. 일찌감치 일어난 소년이 염소우리로 가서 염소젖을 짜왔다. 할머니는 염소젖에 밥을 섞어서 리조또 비슷한 것을 만들어주셨다. 하지만 처음 맡아본 향 때문에, 한 숟가락만 뜨고 먹지 못했다.

마사이족 사람들은 인정이 많다. 손님이 대접한 음식을 다 먹었을 때 기쁨을 느낀다는 그들은 수시로 밀크티까지 끓여 냈다. 청년은 내게 "어제 밤부터 배가 고파 보였다"며 계속 음식을 권했지만, 비위가 약한 나는 한 숟가락 이상 먹지 못했다.

 케냐

케냐의 아이들과 함게 공놀이를 한다 ⓒ 월드휴먼브리지


계속 밥상 앞에 있으면 '먹어라', '괜찮다'로 실랑이를 할 거 같아서 아이들과 함께 밖으로 나와 축구를 하기로 했다. 축구공이 아닌 양말 몇 개가 말려져 있는 것 같은 천으로 된 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친척 아이들까지 4명이 모여서 축구를 했다. 아이들과 하니 나도 잘 하는 축에 들었다. 골대를 정해 놓고 아이들과 뛰어다녔다.

간밤에 구호물품을 건네줄 때보다 더 신나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세계 어느 곳이든 아이들은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30분 놀았나, 이제 그들과 더 친해지려던 참인데 벌써 다음 일정 때문에 이동해야 한단다.

마음 가득 채운 아프리카, 다시 만날 날 기약하며 '잠보!'

새벽부터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던 할머니는 나를 위해 화려한 비즈로 수놓은 목걸이를 만들어 내가 마을을 떠날 때 걸어주셨다. 할머니는 새벽부터 뭔가 만들고 계시더니 나를 위해 화려한 작은 비즈로 수놓은 목걸이를 만들고 계셨고 마을을 떠날 때 그걸 걸어주셨다. 과학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 "그 꿈 꼭 이루고, 나중에는 네가 한국으로 놀러오라"고 마지막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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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사이족 어머니들은 1박의 홈스테이가 끝나면 팔찌나 목걸이 등 소정의 선물을 준다. ⓒ 월드휴먼브리지


마시아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 그립다. 우리네 시골 할머니들이 그러셨던 것처럼, 꾹꾹 눌러 담아준 고봉밥을 다 비우는 것을 사람 사는 정으로 알았던 인정이 그들에게도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당장에 필요한 옥수수가루, 과자, 사탕 한 봉지보다 격 없이 함께 노는 게 더 큰 기쁨이고 진짜 나눔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연예부 기자를 하면서 아이돌 그룹과 함께 해외 출장도 다녔고, 선배들,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아프리카만큼의 충만함으로 채워진 시간은 없었음을 고백한다. 거대한 자연이 주는 청명함과 푸근함, 지금 내가 직면한 문제들은 정말 저 드넓은 벌판의 작은 선인장 하나에도 미치지 못하는 미미한 고민들임을 알게 한다. 그리고 순수한 눈빛. 아직 문명이 닿지 않아 불편하지만 그보다 더 환하고 행복한 미소를 안고 사는 사람들.

 아프리카 케냐 가르센 지역의 아이들의 미소

ⓒ 월드휴먼브리지


 아프리카 케냐 가르센 지역의 아이들

아프리카 케냐 가르센 지역의 아이들 ⓒ 월드휴먼브리지


다시 케냐를 간다면, 아이들과 함께 찰 수 있는 축구공을 가져가야겠다. 일상에 감사하고, 다시 마주할 아프리카 땅을 기대하며, 잠보(Jambo·안녕)!

아프리카 케냐 나이로비 가르센 마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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