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 또 하나의 가족 제작위원회


|오마이스타 ■취재/이선필 기자|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상영관 확보 난항 등의 진통을 겪으며 6일 개봉했다. 하지만 영화계 내외부에서는 제작비를 모아준 시민들의 열망엔 여전히 턱 없이 부족한 상영관 수 때문에 안타까움을 표하고 있다.

현재 <또 하나의 약속>은 총 110개의 상영관을 잡은 걸로 파악됐다. 극장별로 보면 대형 멀티 체인인 CGV가 45개, 메가박스가 25개, 각 지역 개인사업 극장이 21개. 롯데시네마는 공식적으로 7개의 상영관을 내줬다고 했지만, 6일 오전을 넘기며 일부 위탁관과 예술극장 전용관을 열어 19개가량의 상영관에서 <또 하나의 약속>을 틀었다.

롯데시네마는 다른 멀티 체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너무 적은 상영관을 잡은 것에 대해 "프로그램 팀이 영화의 흥행 가능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해 정한 규모"라고 공식 답변했다. 롯데시네마의 상영관 수가 6일 부로 다른 극장과 비슷해지는 것에 일부 언론은 '(상영관 문제) 극적 타결'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재밌는 양가반응이다. 자본 권력을 비판하는 영화가 상영관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도, 멀티 체인 극장이 하나 둘 극장을 열어주는 것에는 호재라고 반응하고 있다.

110개로 늘어난 상영관에 만족?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주연을 맡은 배우 박철민과 김규리.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의 한 장면. ⓒ 또하나의약속제작위원회


이미 본지의 기사 '또 하나의 약속' 외면하는 극장들, 몸 사리나?에서 전한 대로 <또 하나의 약속>이 개봉 직전까지 얻었던 호응에 비해 영화의 상영관 수는 초라하다. 개봉 예정작 중 예매율 1위, 103만 건이라는 예고편 조회 수는 <수상한 그녀>와 <조선미녀 삼총사> 등을 뛰어 넘는다.

대형 멀티 체인들은 <오마이스타>와의 통화에서 "(예매율과 예고편 조회 수 등) 수치를 참고하긴 하지만 감독과 출연 배우, 영화의 흥행 가능성 역시 중요하게 본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 '객관적 기준'이란 사실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다. 배급 규모를 정하는 프로그램 팀의 호불호, 나아가서는 산업 논리와 여타 가변적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약속>이 6일까지 확보한 110개 상영관의 좌석 수는 총 7만 9천 석 정도다. 배급사 올(OAL) 집계에 따르면 이날 오전 12까지 <또 하나의 약속>을 찾은 관객은 약 1만 3천 명가량. 총 좌석 수에 비해 선방을 하고 있다. 배급사는 "사실상 오전까진 대부분의 극장에서 매진을 기록했다"고 전했다.

같은 날 개봉한 <프랑켄슈타인: 불멸의 영웅>은 320개 상영관을 확보했고, 같은 시간까지 대략 1만 1천 명의 관객이 찾았다. 그 절반도 안 되는 110개의 상영관, 그것도 서울 지역 상영관이 14개 안팎(CGV 9개, 메가박스 4~5개, 롯데시네마 1개)으로 10% 정도인 <또 하나의 약속>이 그만큼 선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애초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일까지 300개 상영관을 목표로 했다. 그에 맞춰 홍보·마케팅 비용 역시 12억 원을 들였다. 7억 원의 홍보·마케팅 비용을 썼던 영화 <남영동 1985>(2012)가 개봉 당시 285개의 상영관을 잡은 것에 비할 때 절반에도 못미치는 규모다.

제작두레·단체관람 열풍...그래도 "상영관 찾기 힘들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한 장면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한 장면 ⓒ 또 하나의 가족 제작위원회


묘한 기시감이 든다. 3년 전 부산국제영화제를 떠올려 본다. 당시 정지영 감독의 <부러진 화살>이 공개된 후 예상 외로 세련됐다는 평과 함께 과연 이 영화가 제대로 개봉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1년 뒤 <남영동 1985>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해운대 포장마차 촌에서 "영화의 만듦새를 떠나, 대형 배급사들이 아예 거들떠보려 하지도 않는다"는 한 관계자의 탄식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다.

우여곡절 끝에 개봉한 두 작품이 모두 관객의 호응을 받은 건 의외의 결과였다. 대형 배급사는 배급을 거부했지만 <부러진 화살>은 345만, <남영동 1985>는 35만 관객을 불러 모았다. 상업영화로 개봉한 <부러진 화살>과 저예산·다양성 영화로 개봉한 <남영동 1985>로서는 나름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시민 사회의 단체 관람, 일반 시민들의 대관 열풍도 한몫 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중소사업가를 비롯한 일반 시민이 제작비 전액 10억 원을 대준 작품이다. 또한 영화계에서 내로라하는 촬영감독 등의 스태프와 배우들이 노개런티로 참여했다. <타짜> <도둑들> <베를린>의 촬영을 담당했던 최영환 촬영감독이 시나리오를 보고 "돈 안 받아도 좋으니 이 영화는 꼭 하고 싶다"며 영화 제작 때까지 기다린 사연은 영화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6일 오전 개봉하자마자 곳곳에서 단체 관람 움직임이 보인다.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를 비롯해 삼성 관련 피해 당사자 및 가족들이 오전 중에 서울 구로CGV에서 영화를 관람했고, 배우 조달환, 컬투, 이경영 등의 연예인들 역시 일반 시민들과 함께 단체 관람을 예약했다.

분위기가 이러한데도 정작 상영관이 적어 영화를 볼 수 없다는 호소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상에서도 상영 극장 문의가 이어지고 있고, "대기업의 편파적인 극장 배정이 아니냐"며 분노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애초 60여개로 잡혔던 상영관이 110여개로 늘어났다고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이유다.

"상영관 더 잡지 못해 유가족분들에게 죄송할 따름"

 지난 4일 저녁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첫 상영 후 관객과의 대화를 갖는 <또 하나의 가족> 제작진과 연출자 배우들

2013년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 당시 영화는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상영됐다. ⓒ 성하훈


올(OAL)의 김윤미 대표는 "나름 목표를 갖고 상영관을 잡기 위해 뛰었는데 이 정도밖에 잡지 못해 유가족분들에게 죄송할 따름"이라며 "지금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극장 측에 계속 상영관을 더 열어 달라 호소하는 일뿐"이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300개 상영관을 목표로 그에 맞게 규모와 전략을 짠 영화가 110개의 상영관으로 개봉했다는 건 좋은 징조가 아니다. 당초 극장들이 제시했던 것보다 상영관 수가 조금 늘어났다는 숫자놀음에 일희일비할 사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형 극장들이 광고주인 삼성의 눈치를 보았든, 외압이 있었든 지금의 개봉 규모와 상영관 분포로는 관객들의 열망을 충족시키기 어렵다.

본래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또 하나의 가족>으로 소개된 이 영화는 제목 때문에 영화에 광고가 쉽게 붙지 않자 지금의 제목으로 바꿨다. 나름의 고육지책이었다. 사법권력과 정치권력을 비판한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보다 <또 하나의 약속>이 힘을 못 쓰고 있는 건 그만큼 두 권력보다 자본 권력의 힘이 오늘날 더 공고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이제 기댈 수 있는 건 관객들의 힘이다. 영화의 좌석 점유율과 예매율이 높으면 2주차에 상영관이 다소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화살은 활을 떠났다. 조준을 다소 잘 못했다면 좋은 바람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 영화 <변호인>과 같은 돌풍은 아니겠지만, 시민들의 열망과 왜곡된 영화 산업 구조에 일침을 가하기 위해서라도 이 영화가 의미 있는 성적을 거둬야 하는 이유는 이미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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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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