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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영화 속 여주인공을 '마녀'라 지칭하며 연애에 대해 갑론을박할 때만 해도 '<마녀사냥>이 뭐야?' 싶었다. 하지만 첫 방송이 시작된 지 6개월여 간이 지난 지금, 거리에서 만난 젊은이들은 소리 높여 말한다. "매주 즐겁게 시청하고 있어요~."

군대 간 아들의 전언에 따르면 군인들이 가장 즐거이 시청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이 JTBC <마녀사냥>이라고 한다. 어느덧 이 프로그램에서 묘한 분위기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초록빛 기운과 시그널이 타 프로그램에서도 도용되어도 전혀 이물감이 없을 정도다. 집계되는 시청률과는 상관없이, <마녀사냥>이 이 시대 젊은이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 중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권력화'된 <마녀사냥>, 이제는 위험하다

 JTBC <마녀사냥>을 진행하는 신동엽·성시경·허지웅·샘 해밍턴

JTBC <마녀사냥>을 진행하는 신동엽·성시경·허지웅·샘 해밍턴 ⓒ JTBC


그래서 이제 <마녀사냥>은 위험해졌다. 그저 어느 종합편성채널 방송국 스튜디오에서 출연자들이 각자의 개성을 살려 누군가의 연애를 도마에 올려놓고 회를 칠 때만 해도 그저 저런 시각도 있구나 싶었지만, 이제 동시대의 연애 코칭의 상징적 프로그램이 되어가는 <마녀사냥>에서는 '권력'의 향기가 난다.

들여다 봐 주는 사람들이 적을 때의 <마녀사냥>에서 곽정은 기자가 외국의 연구 결과를 들먹일 때만 해도, 그의 이야기는 그저 각자의 사견에 불과한 연애론에 보태지는 조금은 더 객관적인 데이터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제 다수의 관심이 쏠린 <마녀사냥>에서는 어떨까. 그가 매주 들먹이는 이론들은 마치 교과서처럼 신봉되어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마녀사냥>의 1부인 '그린라이트를 켜줘'가 그저 네 남자의 지극히 남성 중심적 뒷담화와 거리의 반향을 모으는 수준에 그친다면, 2부인 '그린라이트를 꺼줘'에선 나름 연애에는 일가견이 있다는 출연진에 방청객의 선택까지 더해지면서 '연애 재판정'같은 분위기까지 풍긴다. 대다수가 그린라이트를 끄면, 당연히 질의자의 연애는 '쫑'을 내야 하는 분위기로 몰린다. 즉 연애가 남녀 간의 사설이 아니라, 공적 담론이자 일정한 잣대에 따라 지속 여부를 정할 수 있는 사건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마녀사냥>을 통해 등장하는 질문들의 경향도 묘하게 달라졌다. 처음에 그저 그린라이트를 켜느냐, 끄느냐처럼 이것이 사랑인지 아닌지 헛갈리는 감정에 대해 질문하는 정도였다면, 언제인가부터 자꾸만 출연진에게 자신의 연애를 결정해달라는 식의 질문들이 등장한다. 출연진이 원했건, 원하지 않았던 이젠 그들이 질문자들의 '연애 멘토'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을 인지한 듯 '자신들이 그린라이트를 켜고 끄는 결과와 상관없이 결정은 질문자의 몫'이라는 출연진의 언급이 부쩍 늘어났다. 여기에 '연애는 끝까지 가보지 않고서는 미련이 남는다'는 부연 설명까지 덧붙인다. 하지만 이렇게 더 책임감 있어 보이는 '한 발 빼기'가 시청자에게는 겸손으로 비춰지고, 신뢰의 도를 더할 가능성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이건 사견일 뿐'이라는 첨언만이 필요한 게 아니다

 14일 방송된 JTBC <마녀사냥>에는 엄정화·문소리가 게스트로 나섰다.

14일 방송된 JTBC <마녀사냥>에는 엄정화·문소리가 게스트로 나섰다. ⓒ JTBC


물론 <마녀사냥>이 마치 '이 시대의 대표적 연애 코칭 프로그램'마냥 여겨지는 것에는 프로그램 자체의 문제보다도 우리 사회의 특성이 그대로 반영된 탓이 클 것이다.

공부 외의 그 어떤 것도 가르쳐 주거나 의논해 주지 않는 사회에서 그저 공부만 하다 어른이 된 이들은 자신에게 닥친 '감정'의 문제를 풀기 위해 우왕좌왕하다, 결국은 금요일 밤 TV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는 것이다. 적어도 그 곳에서만은 가식적이지 않게, 연애에 대한 속 시원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그렇지 않다면 인터넷의 바다를 헤매며 공인되지 않은 연애 담론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런 검증되지 않은 의견들에 비하면 TV에서 버젓이 방송되는 <마녀사냥>의 공신력은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마녀사냥>에게 필요한 것은 '이것은 그저 출연진의 사견일 뿐'이라는 첨언이 다가 아니다. 제작진이 지금 <마녀사냥>이 처한 위치에 대한 책임감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때다. 그저 '우리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어', 혹은 '시청률이 높아'라는 자부심만 가질 게 아니라, 갈 곳 몰라 목말라 하는 청춘들이 <마녀사냥>이라는 연못에 우르르 모여드는 현상에 좀 더 진지하고 유연한 자세로 임해야 하는 시점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마녀사냥 곽정은 연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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