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현대무용단 <11분> 에 출연하는 김보람

▲ 국립현대무용단 <11분> 에 출연하는 김보람 ⓒ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발레단의 이영철이 백업 댄서를 하다가 발레리노가 된 것처럼, 오늘 소개하는 김보람은 조성모와 이정현, 엄정화의 백업 댄서였다가 현대무용의 매력에 빠진 무용수다. 김보람은 배트맨이나 캡틴 아메리카처럼 무용할 때마다 선글라스로 눈을 가리고 춤을 추는 걸로도 유명하다. 몸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을 시선으로 빼앗기는 걸 경계하기 때문에 눈을 가리는 특별한 콘셉트를 유지하고 있는 것. 이런 그가 <11분>에서 여성적인 춤을 선보이겠다고 하니 어떤 콘셉트의 춤으로 관객에게 선보일지 사뭇 기대가 크다.

- 무용수의 입장에서 보는 <11분>의 매력을 들려 달라.

"무용은 같은 이야기를 해도 무용수가 다르면 안무가 각각 다르게 나온다. 다섯 무용수의 개성이 모두 다른 데에서 나오는 재미가 쏠쏠하다. 여자를 좀 더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서 다른 무용수와 듀엣으로 무대에서 여자가 되고 싶은 캐릭터를 연기한다. 여성 무용수를 따라 하기도 하고, 여성 무용수보다 더 여성인 것처럼 여성스럽게 춤을 추는 식으로 한 남자의 욕망을 무용으로 표현한다."

- <11분>은 드라마투르그가 <만추>의 김태용 영화감독이라 다른 드라마투르그에 비해 특기할 만하다.

"무용수가 어떻게 작품을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을 능수능란하게 잡아준다. 가령 제가 여성을 무용으로 표현하고 싶다면 그 안에 어떤 캐릭터가 묻어날 수 있는가 하는 방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줄 안다. 감독님이 아는 게 많다 보니 하나가 아닌 다양한 캐릭터를 열거한다. 그리고는 나아가야 할 캐릭터가 무엇인가를 보여줄 줄 안다."

국립현대무용단 <11분> 에 출연하는 김보람

▲ 국립현대무용단 <11분> 에 출연하는 김보람 ⓒ 국립현대무용단


- 김보람 씨는 눈을 가리고 작업하는 무용가다. 본인의 눈을 가리고 무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모든 공연에서 눈을 가리고 춤을 추었다. 내 눈을 드러낸 채 무용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눈을 가리는 게 당연한 콘셉트가 되었다. 눈은 쉽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특징을 가진 신체 기관이다.

다양한 감정을 무용을 통해 표현하더라도 눈이 아닌 몸으로 표현하고 싶지만 눈을 보여드리면 몸이 아닌 눈으로 일부나마 감정 표현이 될 거 같아서 선글라스를 끼게 되었다. 하나 더, 반반인 거 같다. 몸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이유 외에도 낯가림이 심하다.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눈을 가린다.

수원에서 <11분>을 공연할 때 너무 급하게 나간 나머지 선글라스를 대기실에 놓고 나간 적이 있다. 무대에 올라 보니 선글라스를 끼지 않아서 눈이 허전하더라. 무대 위로 친구가 선글라스를 가져다주어서 급하게 눈을 가린 적도 있다. 선글라스를 끼자마자 몸의 에너지가 확 솟는 것 같았다. 제가 여자 분장을 한다. 이번에는 선글라스를 벗고 싶은 마음도 없진 않다. 선글라스를 벗으면 좀 더 여성스러운 분장을 보여드릴 수 있어서 선글라스를 낄까 말까 고민 중이다."

- 백업 댄서를 하다가 어떻게 무용수가 되었나.

"지금은 백업 댄스를 하던 기간과 무용을 하는 기간이 엇비슷하지만 백업 댄서를 십 년 가까이 했다. 특별한 동기에서 무용으로 넘어왔다기보다는 보다 가치 있는 춤을 찾고 갈망하다가 자연스럽게 넘어왔다. 현대무용은 방송에 노출되는 춤이 아닌, 저만의 이야기를 춤으로 찾을 수 있던 게 현대무용이 아닌가 생각한다."

국립현대무용단 <11분> 에 출연하는 김보람

▲ 국립현대무용단 <11분> 에 출연하는 김보람 ⓒ 국립현대무용단


- 발레도 섭렵했다.

"한예종에서 안성수 선생님을 통해 현대무용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 선생님의 티칭 기본이 발레였다. 안 선생님의 발레 클래스를 7년 동안 듣고 있다. 발레도 몸에 뱄다. 장르와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춤을 굉장히 좋아한다. 이런저런 춤을 다양하게 해 보니 춤은 하나더라. 그 이후로 춤을 더 좋아하게 된 게 아닌가 싶다. 과학자처럼 춤을 깊게 파헤치고 싶은 욕심이 있다."

- 무용수에게 중요한 건 테크닉일까, 아니면 영감을 얻는 것일까.

"얼마 전에 똑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다.(웃음) 춤을 추는 무용가에게 있어 테크닉이나 무용적인 재능, 신체 조건은 지나가는 거로 생각한다. 어느 때에는 재능이 들어와서 좋은 영감이 떠오를 때가 있고, 어느 때에는 몸을 단련하는 게 좋아서 테크닉에 빠질 때도 있는데 그런 건 지나가는 거다. 중요한 건 무용을 처음에 좋아한 마음이 십 년 뒤, 이십 년 뒤에도 좋아할 수 있을까 하는 변하지 않는 무용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춤과 자신만 바라보았을 때 춤을 사랑할 수 있는 한결같은 마음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

- 예전에 현진영의 춤을 동경해서 백업 댄서가 되고 춤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당시와 지금의 마음가짐이 달라진 게 있다면.

"소년 시절에 춤을 사랑하던 마음과 지금의 춤을 사랑하는 마음이 달라지지 않고 비슷하다. 운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백업 댄서로 방송을 타면 순수했던 마음이 달라졌을 수도 있다. 마음 가운데서 때가 탈 뻔한 적도 있었다. 춤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회생활을 하는 동안 변하지 않도록 지키는 게 가장 중요하다. 춤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게 지킨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 이상주의자가 아닌가.

"맞다. 그래서 돈 같은 물질적인 요소를 무용보다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은 돈을 벌어도 돈, 돈 하며 하고 욕심을 내기 쉽다. 돈보다 더욱 좋아하는 게 없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제게 있어 돈보다 소중하고 중요한 건 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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