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가라 하와이'의 3연승은 불발로 그쳤지만, 그는 가왕의 자리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가수가 아니라도 가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줌으로써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던 또 다른 편견을 깨뜨린 것이다.

지난 13일 방영된 MBC <일밤-복면가왕>(이하 <복면가왕>)에서는 12대 가왕의 자리를 둘러싼 복면가수들의 치열한 경연이 펼쳐졌다. 먼저 지난주 1라운드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준 '금은방 나비부인'과 '상남자 터프가이', 그리고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와 '아이 러브 커피'가 각각 대결을 벌였다. 그 결과 '상남자 터프가이'와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가 3라운드에 진출했다. '금은방 나비부인'의 정체는 서영은, '아이 러브 커피'는 베스티의 유지로 밝혀졌다.

3라운드 결과 승리를 거머쥔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가 가왕에 도전장을 던졌고, 최종 투표 결과 12대 가왕은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가 차지했다. '상남자 터프가이'는 팝페라 가수 임형주였으며, 가왕의 자리에서 내려온 '네가 가라 하와이'의 정체는 많은 이들의 예상처럼 뮤지컬 배우 홍지민이었다.

홍지민의 얼굴이 공개되자 MC 김성주와 패널들은 비가수가 가왕의 자리에 올랐던 적은 없다며 홍지민의 실력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비록 3연승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홍지민의 도전은 가수가 아니더라도 가왕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었다.


<복면가왕>은 음악과 추리가 적절히 버무려진 프로그램으로 보이지만, 중심이 되는 것은 결국 '음악'이다. 그래서 가수들이 집중 조명을 받을 수밖에 없고, 배우나 개그맨 등은 그런 가수들을 뒷받침해주는 조연의 역할에 머물러 왔던 것이 사실이다. 김영철 같은 개그맨이 1라운드에서 개인기 등으로 웃음을 주면, 프로 가수가 2라운드나 3라운드에서 노래로 감동을 안겨주는 식으로 한 주의 방송분이 구성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리 편견에 맞서기 위해 복면을 쓰고 노래를 부른다 한들, 가수와 비가수의 실력 차이는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홍지민 이전까지 가왕의 자리는 늘 가수들의 몫이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될 경우 <복면가왕>은 자칫 가수들의 잔치로 전락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홍지민의 2연승은 많은 걸 바꿔 놓았다. 이젠 단순히 실력만으로 가수냐 비가수냐를 논할 수 없게 됐다. 마음에서 마음으로 진심이 전해진다면, 그리고 목소리에서 감동이 묻어난다면 누구라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복면가왕이 된 홍지민이 증명해냈다. 노래를 좋아하고 무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이름이나 경력, 또는 직업에 상관없이 이 축제의 장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이날 홍지민이 보여준 마지막 무대는 처진 달팽이(유재석과 이적이 2011년 MBC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에서 결성한 듀오 이름-편집자 주)의 '말하는 대로'였다. 이 노래는 많은 시행착오와 산후 우울증으로 힘든 시기를 보낸 자신에게 보내는 다짐의 메시지이자, 용기를 갖고 무한히 도전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시청자에게 들려준 희망가였다.

가수들의 경연에 당당히 뛰어들어 최고의 자리를 찍고 내려온 홍지민이 들려줬기에 이날 '말하는 대로'는 더 큰 울림이 있지 않았나 싶다. 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마음먹은 대로 가왕의 자리에 올랐던 홍지민. 역시 '말하는 대로'의 가사처럼, '도전은 무한히 인생은 영원히' 즐겨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