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의 지환(좌)과 윤정(우)은 같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동료 교사이자 연인이다.

1983년의 지환(좌)과 윤정(우)은 같은 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동료 교사이자 연인이다. ⓒ CJ엔터테인먼트


각각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두 남자가 돌연 32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소통한다. 2015년을 살아가는 강력계 형사 건우(이진욱)와 1983년 고등학교 교사 지환(조정석)의 이야기다. 이들은 꿈속에서 서로의 삶을 체험하는데, 이를 통해 과거 있었던 일과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을 알게 된다. 이 와중에 지환은 약혼녀 윤정(임수정)이 살해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건우는 우연히 윤정과 꼭 닮은 소은(임수정)을 만난다. 여기에 두 시간을 관통하는 미제 연쇄살인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영화와 TV 드라마를 통틀어 '시간 여행'이란 소재는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됐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간이탈자>는 바로 이 장르가 가진 특유의 문법을 충실히 답습한다. 미래를 예견하고 이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여의치 않다. 하나의 사건을 막는다 해도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이 터지기 일쑤다. 그렇게 윤정을 지키기 위한 지환의 사투를 보고 있노라면 tvN 드라마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 떠오른다. 미제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건우와 지환이 연합(?)하는 설정은 최근 종영한 <시그널>과도 닮았다.

 건우(우)는 꿈에서 본 윤정과 꼭 빼닮은 소은(좌)을 만나고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끌린다.

건우(우)는 꿈에서 본 윤정과 꼭 빼닮은 소은(좌)을 만나고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끌린다. ⓒ CJ엔터테인먼트


지환과 윤정, 건우와 소은의 관계를 부각하는 듯하던 영화는 중반 이후 연쇄살인범의 정체를 쫓는 데 급급하다. 로맨틱코미디 영화를 보던 중 갑작스레 범죄스릴러 영화로 채널을 돌린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서사에는 힘이 빠지고 관객은 이도 저도 아닌 어색한 표정을 짓게 된다. 2015년 강력반 강 반장(정진영)과 살인범, 1983년 지환과 제자 승범(이민호)의 이야기까지 다방면으로 풀어헤친 플롯도 흥미롭기보단 산만하다. 20부작 장편 드라마라면 모를까, 2시간 남짓의 영화 한 편으로 풀어내기엔 너무 거대한 이야기다.

메가폰을 잡은 곽재용 감독은 <엽기적인 그녀> <클래식>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싸이보그 그녀> 등에서 시간과 사랑을 함께 다뤄왔고, 그 한가운데에는 메시지를 대변하는 여성 캐릭터가 있었다. 그렇게 전지현과 손예진은 물론, 일본배우 아야세 하루카까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히로인이 됐다. 같은 맥락에서 <시간이탈자>가 빙글빙글 돌아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 또한 '시간을 초월한 지고지순한 사랑'에 대한 판타지다.

 임수정이 연기한 윤정과 소은 캐릭터가 극 중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점은 다소 아쉽다.

임수정이 연기한 윤정과 소은 캐릭터가 극 중에서 주체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는 점은 다소 아쉽다. ⓒ CJ엔터테인먼트


그 중심에 선 배우 임수정의 힘이 미약하게 느껴지는 것이야말로 이 영화의 치명적인 단점이다. 윤정과 소은을 연기하며 두 시대를 아우르는 그녀의 캐릭터는 이렇다 할 개성도 없을뿐더러 주체적이지도 못하다. 그저 범죄의 피해자이자 누군가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만 기능할 뿐이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추구하기에 앞서 유행하는 아이템들로만 코디한 패션. <시간이탈자>는 말하자면 그런 영화다. 깜짝 놀라게 하는 장면들이 곳곳에 튀어나오고 생각지도 못한 반전도 있다. 하지만 그뿐이다. 특유의 로맨스 감성을 전매특허로 삼았던 감독이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건 응원할 만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엽기적인 그녀>를 스릴러로 만든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이상하지 않은가.

 영화 <시간이탈자> 포스터. 4월13 개봉. 곽재용 감독. 15세이상관람가

영화 <시간이탈자> 포스터. 4월13 개봉. 곽재용 감독. 15세이상관람가 ⓒ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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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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