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김성훈 감독 김성훈 감독이 3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터널> 시사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터널>은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되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 빠진 터널 속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 사람들과 사회,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리얼 재난 드라마다.10일 개봉.

▲ '터널' 김성훈 감독 김성훈 감독이 3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터널> 시사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이정민


세계 최고, 혹은 세계 최초 등 우린 수치화해서 기록을 말하길 좋아한다. 그 대상이 갖는 의미를 확연하게 전달할 수 있는 효율적 방법인 게 일견 사실이다. 그런데 종종 우린 이 수치를 맹신한 나머지 중요한 실수를 하곤 한다.

오는 10일 개봉 예정인 영화 <터널>은 재난 드라마라는 장르적 특징을 갖고 있지만, 이 실수에 대한 영화다. 대체 어떤 실수인지 궁금하지 않나. 영화는 3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언론에 우선 공개됐다.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 외침

 영화 <터널>의 한 장면.

영화 <터널>의 한 장면. 평범한 하정우가 겪는 평범하지 않은 사건. 재난 앞에서 우리는 어떤 행동을 선택하게 될까. ⓒ 쇼박스


'평범한' 자동차 딜러 이정수(하정우 분)는 여느 때처럼 영업을 하며 차를 몰고 국도를 달린다. 주유 중 노인 직원의 실수로 출발이 다소 지연되지만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러다 공교롭게도 하도 터널을 지나는 중 붕괴사고로 갇히고 만다. 초반 10분 내에 벌어지는 빠른 전개 이후 이야기는 예상했듯 구조와 관련한 각종 사건이 이어진다.

평범함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그 캐릭터가 보편적이면서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데 있다. 애써 웃긴 하지만 말귀를 못 알아듣는 주유소 직원 때문에 다소 짜증을 낸다. 함께 터널에 갇힌 또 다른 누군가가 물을 달라고 할 때 주저하는 모습도 보인다. '왜 내게 이런 일이'라는 말을 꺼내진 않지만 하나둘 꼬이는 상황에서 이정수는 상식적 대응을 한다. 그러니까 귀가 어두운 노인에게 자신의 기분대로 짜증을 내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자신의 생명도 귀중하지만 자신보다 더 약하고 어려움에 처한 여성을 먼저 도와야 하는 걸 안다. 그리고 실천한다.

재난은 급작스럽고 이유 없이 다가오는 법. 사고를 당한 그가 의지할 곳은 곧 구조대다. 구조 본부 대장 대경(오달수 분)으로 대변되는 대원들 역시 상식적이다. 문제는 이들과 연계된 시스템인데 국가로 대변되는 상부가 위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반응하지 않는다. 정부 및 지자체는 고립된 사람을 수치화 해 다른 터널 공사의 경제적 가치를 논하다 구조 시점을 놓치고, 책임자는 "잘 협의해서 하라"는 주어도 목적어도 없는 발언만 남긴 채 사건현장을 떠난다.

이 내용이 영화에 직접적으로 묘사된다. 언론 시사 직후 김성훈 감독은 "현실에 발을 걸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현 시스템을 향한 비판적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추론할 수 있다. "단 한 사람 때문에" 라는 말이 영화 중 몇 번 등장하고, 그렇게 말하는 이들에게 "사람이 살아있잖나"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참 낯이 익다. 가공의 이야기지만 분명 우린 이와 비슷한 여러 외침을 실제로 들어왔다. 가까이는 수백 명의 학생과 시민들을 바다에 수장시켜버린 사건에서 좀 더 되짚어 보면 재개발 광풍에서 삶의 기본적 터전을 지키려 했던 용산참사 피해자들에게서.

영화적 재미와의 공생 관계 

 영화 <터널>의 한 장면.

영화 <터널>의 한 장면. 대한민국의 현실을 고발하는 <터널>은 감독의 장면 배치가 두드러지는 영화이다. ⓒ 쇼박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직접적이고 빠르게 사건을 전개시키면서 김성훈 감독은 은연 중에 현실을 짚고 폐부를 찌르는 시도를 꾸준히 한다. 특히 장면 배치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인물이 극적인 순간 및 극적 위기를 겪는 직후 느린 템포로 타인들의 식사 장면을 넣는다든가, 사고에 대해 기자들 앞에서 발표하는 장관의 모습 이후 개들이 짖는 장면을 붙이는 식이다.

이렇게 현실과 영화 사이에서의 연결고리를 통해 감독은 진짜 재난은 터널이 무너지는 등의 불가항력적인 재난이 아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나라와 하나의 생명을 은연중에 경제적 가치로 치환해 버리는 현대인의 '병증'에 있다고 말하는 듯하다.

이를 증명하듯 시사 직후 이어진 간담회에서 김성훈 감독은 "60억 명의 사람들 개개인이 다 하나의 우주인데 우린 그걸 까먹고 살지 않나"라며 "생명과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강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정우 역시 "도롱뇽과 사람을 비교하는 장면이 있는데 도롱뇽이 아닌 사람이 갇혀 있다고 오달수 선배가 외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장르의 탈을 쓴 채 영화는 훌륭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꽤 효과적으로 구성해 놨다. 관객에 따라 장르적 재미는 조금 반감된다 말할 수 있다. 또 김성훈 감독의 전작 <끝까지 간다>와 비교하면 아쉬워할 여지도 분명 있다. 촘촘한 구성보단 과감한 구성을 김성훈 감독은 택했다. 그리고 영화 종결 부분까지 그 선택은 흔들리지 않고 일관돼 있다. 여기에 점수를 더 주고 싶다. 한국 영화계에 이처럼 도전하는 기성 감독이 몇이나 있던가.

참고로 영화 시작 초반 10분은 놓치지 말자. 혹여나 지각한다면 재관람해야 할 영화다.

''터널' 무너지는 대한민국 고발! 배우 하정우와 김성훈 감독, 오달수가 3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터널> 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터널>은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되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 빠진 터널 속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 사람들과 사회,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리얼 재난 드라마다.10일 개봉.

▲ ''터널' 무너지는 대한민국 고발! 배우 하정우와 김성훈 감독, 오달수가 3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열린 영화 <터널> 시사회에서 포토타임을 갖고 있다.<터널>은 무너진 터널 안에 고립되어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재난 상황에 빠진 터널 속 한 남자의 이야기이자 그의 구조를 둘러싸고 변해가는 터널 밖 사람들과 사회,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리얼 재난 드라마다.10일 개봉. ⓒ 이정민


한 줄 평 : 재난의 재정의 그리고 책임자 및 관련자들을 낯 뜨겁게 하는 예리함이 바로 이 영화의 미덕.

평점 : ★★★★ (4/5)

영화 <터널> 관련정보


감독 : 김성훈
출연 : 하정우, 오달수, 배두나
제공 및 배급 : 쇼박스
제작 : 어나더썬데이, 하이스토리 등
상영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 126분
개봉 : 2016년 8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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