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 파이터' 김보성의 데뷔전은 무엇을 남겼을까. 영화배우 출신 김보성은 지난 10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로드FC 35 웰터급(77㎏) 경기에서 일본의 곤도 데쓰오(48)와 대결했다. 1라운드 종반 오른쪽 눈 부위에 부상을 당하면서 아쉽게 무릎을 꿇기는 했지만 내용상으로는 선전했다고 할만하다.

김보성의 진심은 이미 충분히 증명됐다. 경기에 앞서 대전료 전액을 소아암 돕기에 기부하기로 공약했고, 경기력 면에서도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진지하게 노력해왔는지 확인할수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기 쉬운 50대의 나이에 보여준 불굴의 도전정신과 투혼 자체는 마땅히 박수를 받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좀 더 차분하게 다시 돌아봐야 할 필요도 있다. 무엇보다 김보성 본인이나 그 가족들, 그리고 그의 경기를 지켜봤을 수많은 소아암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그의 도전을 과연 감동 코드로만 섣불리 미화해도 되느냐의 문제다. 그런데 대부분의 미디어들은 하나같이 김보성의 도전을 '아름다운 패배'나 '투혼'에만 초점을 맞춰 포장하려고 한다.

김보성의 무모한 도전

ROAD FC 데뷔전 치른 김보성, 안와골절 판명 김보성이 10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XIAOMI ROAD FC 035에서 일본의 콘도 테츠오와 데뷔전을 가졌다. 소아암 어린이 돕기로 ROAD FC 데뷔전을 치른 김보성은 메디컬 체크를 받았고, 안와골절 진단을 받았다.

▲ ROAD FC 데뷔전 치른 김보성, 안와골절 판명 김보성이 10일 오후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XIAOMI ROAD FC 035에서 일본의 콘도 테츠오와 데뷔전을 가졌다. 소아암 어린이 돕기로 ROAD FC 데뷔전을 치른 김보성은 메디컬 체크를 받았고, 안와골절 진단을 받았다. ⓒ 로드미디어


냉정히 말하면 김보성의 도전은 일종의 스턴트 쇼와도 같은 것이었다. 승패 결과를 떠나 처음부터 해서는 안될 무모한 도전이었다. 김보성은 한쪽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 장애(6등급)까지 있었다. 그나마 괜찮은 오른쪽도 시력이 좋지 않아 렌즈를 착용한 채 링에 오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상적이라면  이런 경기에 나서서는 절대 안되는 몸이었다. 애초에  시한폭탄을 안고서 링에 뛰어든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요즘 격투기가 쇼비즈니스의 측면이 강하다고 하지만, 적어도 링 안에서는 연출이 없는 오직 실전만 있을 뿐이다. 신체적 제약이 있다고 사정 봐주면서 날아오는 주먹은 없다. 사실 김보성의 도전이 알려졌을 때부터 많은 이들이 승패보다도 사고가 없기만을 바랐다.

하지만 불길한 예감은 1라운드부터 적중했다. 상대의 고의는 아니었겠지만 하필 김보성의 가장 큰 불안요소였던 눈에 펀치가 적중했다. 경기 뒤 병원 응급실을 찾은 김보성은 안와(눈 주위 뼈) 골절 진단을 받았다. 조금만 더 정통으로 맞았다면 오른쪽 눈마저 실명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운이 좋았기에 망정이지, 만에 하나 김보성이 정말 실명을 하거나 더 큰 부상을 당하는 상황이라도 벌어졌다면 어떻게 됐을까. 경기출전 자체는 김보성 본인의 의지라고 해도, 애초에 파이터가 될 만한 몸상태에 미달인 50대 배우를 상업적인 일회성 이슈를 위하여 링안에 들여보내는 것을 부추기거나 동조한 주변인과 관계자들 모두 엄청난 비난과 책임론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로드 FC출범 이래 최악의 사고가 될 수도 있었다.

치명적 부상을 당할 뻔한 김보성

 서로의 주먹이 오가는 과정에서 김보성(사진 오른쪽)은 눈에 충격을 받았다.

서로의 주먹이 오가는 과정에서 김보성(사진 오른쪽)은 눈에 충격을 받았다. ⓒ 로드FC


분야는 조금 다르지만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은 몇 년전 프로레슬링에 도전하여 큰 화제를 모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리얼리티'라는 명목으로 애초에 전문적인 레슬러도 아닌 연예인 출연자들에게 실제로 위험한 공연을 요구하여 안전불감증이라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더구나 김보성의 도전은 짜여진 연출이 아닌 실제 그대로의 실전 격투기 시합이었다. 방심하면 어떤 돌발 사고가 벌어질지 알 수 없는 운동이다. 김보성은 연예인이나 격투기 선수이기 전에 한 집안의 가장이고, 본인의 무모한 행동으로 자칫  사고라도 벌어졌을 때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상처를 줄 수 있는지도 생각했어야 했다. 격투기계 역시 이런 식의 자극적인 억지 이벤트로 대중의 시선을 끌려고 해서도 안된다.

용기와 만용은 철저히 구분되어야한다. 이번 김보성의 도전이 준 진정한 교훈은 '중년도  할수 있다', '불가능은 없다' 같은 미화로 귀결되어서는 곤란하다. 오히려 책임있는 성인이라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해야 할 일과 하지말아야 할 일이 따로 있다는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는 진리뿐이다.

진정한 기부와 봉사가 본래 목적이었다면 굳이 스스로를 쓸데없이 위험에 몰아넣는 스턴트쇼 따위는 결코 필요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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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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