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갑순이> 종영을 앞둔 6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배우 유선을 만났다. 드라마는 종영까지 2회를 남겨뒀지만, 이미 모든 촬영과 쫑파티까지 마친 상태. 유종의 미를 거뒀기 때문일까? 61부작 긴 호흡의 드라마를 마친 유선에게서 지친 기색은 찾아볼 수 없었다.

7%로 시작한 <우리 갑순이>는 중후반부로 넘어서며 시청률이 20%까지 치솟았고, 그 인기몰이의 중심에는 누가 뭐래도 재순(유선 분)과 금식(최대철 분)의 로맨스가 있었다. 이들의 사랑이 어찌나 큰 사랑을 받았던지,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의 제목을 장난스레 <우리 재순이>로 바꿔 부르기까지 했다. 그만큼 유선의 활약상이 대단했다는 뜻이다.

우리 갑순이? 우리 재순이!

 SBS <우리 갑순이> 방송화면 캡처. 배우 유선.

시청자들은 드라마의 제목을 장난스레 <우리 재순이>로 바꿔 부르기까지 했다. 그만큼 유선의 활약상이 대단했다는 뜻이다. ⓒ SBS


유선은 재순을 향한 시청자들의 열렬한 지지와 응원에 대해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는, 재순의 삶을 안타깝게 바라봐주신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유선은 <우리 갑순이>를 "큰 선물과도 같은 작품이었다"고 표현했다.

"재순이가 드라마 속 인물 중에 가장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잖아요. 시청자들이 풀릴 만 하면 또 꼬이고 꼬이는 재순이의 인생을 안타깝게 바라봐주신 게 아닐까요? 굴곡이 큰 재순이로 살면서 다채로운 경험을 많이 했어요. 제게는 선물 같은 작품이었죠."

극 중 재순은 첫 결혼에 실패한 뒤, 조건만 보고 재혼하지만 두 번째 결혼 생활도 평탄하지 않았다. 남편 금식은 차가웠고, 아이들도 재순에게 곁을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순은 위기나 갈등의 상황마다 그저 기다리거나, 피하는 방법을 택했고, 이는 시청자들에게 답답함을 안겨줬다. 하지만 이런 재순은 집을 나간 뒤부터 갑자기 부모님과 아들 똘이에게 모질고 독하게 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많은 시청자가 당혹스러워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를 연기한 유선은 "(재순의 모든 행동이) 이해 가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고 말했다.

"저는 재순으로 살면서 그 감정으로 연기하는 사람이잖아요. 그래서인지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없었어요. 시청자분들은 재순이 변해도 너무 변한 거 아니냐고 하셨지만, 사실 그런 상황이 오면 모두 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옥탑방에서 아들과 연탄 갈고 살면서, 김밥 팔고 생선 장사하며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데 어떻게 온화한 성품을 유지할 수 있겠어요.

부모님의 말씀을 인생 가장 큰 조언으로 믿고 살던 재순이지만, 부모님이 전과자에게 자신을 시집보내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땐 얼마나 배신감이 컸겠어요. 이전처럼 대할 수 없겠죠. 금식의 사랑도, 다른 남자와 결혼하려고 웨딩드레스까지 입었으니 다시 받아들이는 걸 스스로 용납할 수 없었던 거예요. 재순을 이해하고 연기하는 데 걱정이나 어려움은 없었어요. 모든 감정을 작가님이 이해되도록 써주셨고, 저는 납득하면서 연기할 수 있었어요."

문영남 작가 작품, 꼭 출연하고 싶었던 이유

 SBS <우리 갑순이> 방송화면 캡처. 배우 유선.

SBS <우리 갑순이> 연장의 최대 수혜자는 배우 유선이 아닐까? 후반부 금식과의 로맨스가 본격적으로 다뤄지면서 재순을 향한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도 커졌다. ⓒ SBS


유선은 거듭 문영남 작가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유선은 "문영남 선생님 작품 한번 해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있었다"고 고백하며, "문영남 작가와 부성철 감독이 새 주말 드라마에 들어간다는 기사를 보고, 먼저 이 작품에 함께하고 싶다고 프러포즈했다"고 전했다.

"정말 감사하게도 작가님, 감독님이 흔쾌히 받아주셨어요. 주말 드라마에 대한 로망도 있었거든요. 제 필모를 보면, 시청자분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작품들, 제 이름과 얼굴을 알린 작품이 모두 주말 드라마였거든요. 최근 출연했던 미니시리즈, 영화들 성적이 저조했고, 시청자분들과 멀어지는 느낌이 있었어요. 대중에게 다가가고 싶다는 갈증에, 이쯤에 주말 드라마 한번 하고 싶다는 구체적 바람도 있었죠."

그럼 왜 하필 문영남이었을까? 유선은 문영남 작가를 "캐릭터 하나하나를 살려주시는 분"이라면서 "모든 캐릭터를 끝까지 책임지고 그려주는 작가를 만나는 게 모든 배우들의 소망일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드라마는 주인공인 갑돌-갑순부터, 달통-영란이까지 짝꿍 없는 캐릭터가 없어요. 모든 캐릭터가 멜로 짝꿍이 있다는 건 축복이에요. 캐릭터에 대한 애정이 있으시다는 거잖아요. 주인공의 고모, 친구, 엄마로만 끝나는 캐릭터가 얼마나 많나요? 하지만 문 작가님 작품 캐릭터들은 모두 자기만의 이야기와 멜로라인이 있어요.

처음 시놉시스만큼 캐릭터가 펼쳐지지 않을 때가 많아요. 계획됐던 설정에서 변화되는 경우도 있죠. 이게 배우들에게 가장 힘들고 상처가 돼요. 그런 의미에서 모든 캐릭터를 끝까지 책임지고 그려주시는 문영남 작가님은 정말 최고의 작가님이시죠. 재순이 캐릭터가 살아서가 아니라, 모든 캐릭터를 챙겨주시는 걸 보고 감동했어요."

유선은 문영남 작가의 다음 작품에서 섭외가 온다면 응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1초 틈도 없이 "무조건"이라고 답했다.

"문 작가님 작품에 작은 역할이란 없어요. 모든 캐릭터가 각자 자기 사연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러니 어떤 역할을 주시든, 기꺼이 감사하게 연기할 것 같아요."

시청자 관심 중요성 깨달았다

 2017년 4월, 배우 유선 <우리 갑순이> 종영 인터뷰

주말이나 일일드라마를 미니시리즈로 진입하기 위한 디딤돌로 여기는 배우들도 많다. 하지만 유선의 생각은 달랐다. ⓒ 모션미디어


사실 많은 배우가 드라마보다는 영화를, 일일이나 주말보다는 미니시리즈를 선호한다. 시청률은 주말 드라마나 일일 드라마가 훨씬 안정적으로 높게 나오지만, 주말이나 일일 드라마 출연을 미니시리즈로 진입하기 위한 디딤돌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유선의 생각은 달랐다.

"시작부터 기대작으로 주목받는 미니시리즈들도 시청률이 안 나오면 조용히 묻히잖아요. 어떤 작품을 하든, 일단 시청자가 보셔야 해요. 보셔야 내가 뭘 할 수 있고, 뭘 소통할 수 있는지 배우인지 알 수 있잖아요. 파격적으로 연기 변신을 하면 뭐하고, 열연하면 뭐하나요. 시청자분들이 보지 않으시면 기억조차 되지 않아요.

어린 친구들, 이왕이면 미니하고 싶고, 좋은 캐스팅 라인에 들고 싶고, 기대작 들고 싶어 해요. 연속극 하면 뒤처지는 것 같다, 이런 선입견 있는 친구들도 많죠. 사실 저도 많은 성공과 실패를 겪으면서 바뀐 거예요. 제가 미니시리즈 운이 없기도 했지만, 주말 드라마가 잘 됐고, 프랑스 로케까지 다녀왔던 작품은 잘 안 됐어요. 이미지 변신한 적도 있었는데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니 안 한 거나 다름없죠. 하지만 흥행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거잖아요. 저를 믿고 찾아주는 분들이 있고, 제가 재밌고 즐겁게 연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대작이든 일일이든, 연속이든 주말이든, 함께하고 싶어요."

61부작 드라마를 마치자마자, 쉴 틈도 없이 차기작을 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우리 갑순이> 마지막 촬영을 마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건만, 당장 내일 새 작품의 리딩이 있단다. 유선의 차기작은 tvN <크리미널 마인드>로, 원작에서 커스틴 뱅스니스가 연기한 페넬로페 가르시아 역이다.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클릭 하나로 알아내는 컴퓨터 천재. 유선은 "오랜만에 누구의 엄마가 아닌 역할"이라면서 "인물 자체로 보여드릴 수 있는 캐릭터다. 휴식보다 새로운 작품이 자극될 것 같다"며 들뜬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러블리하고 상큼한 역할"이라는 부연설명도 함께.

모험 떠나고 싶다

 2017년 4월, 배우 유선 <우리 갑순이> 종영 인터뷰

배우와 캐릭터가 찰떡같이 맞았을 때, '물 만난 것 같다'고 표현한다. 유선은 아직 그런 경험이 없다면서 "그런 캐릭터를 만나기 위해 모험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모션미디어


"배우는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잖아요. 펼쳐 보이지 못한 캐릭터가 너무 많은데, 선택은 이미 보여드렸던 이미지 중에서 받게 되죠. 마냥 '왜 난 이런 역할만 들어와'하고 불평해봐야,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도 내가 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모르잖아요. 답답하지만 현실이니까…. 그래서 기회가 있다면 최대한 제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어요. 비록 그게 모험이 될 지라도요.

사실 저도 제가 뭘 더 할 수 있는지, 제 옷이 뭔지 모르겠어요. 배우와 역할이 잘 맞았을 때, '물 만난 것 같다'고 표현해주시잖아요. 제가 물 만난 것처럼 연기할 수 있는 캐릭터가 뭘까요? 생각만 해서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걸 찾기 위한 모험을 떠나고 싶어요."

어느덧 배우 생활 20년. 유선은 "차곡차곡 계단을 밟고 올라온 느낌이 든다"고 했다. 언젠가는 답답한 마음에 "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싶다 생각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우리 갑순이>에서 만난 고두심, 이미영, 이보희, 김혜선 등 선배들은, 유선의 마음속에 남아있던 초조함을 날려줬다. 자신보다 더 오랜 시간 연기자로 살아온 선배 배우들의 내공과 인품을 접하면서, 배우로서의 방향성을 바꾸게 됐다고.

"선배님들을 보면서, 나도 이렇게 오래도록 존경받는 배우, 찾아지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이전에는 막연하게 '난 죽을 때까지 연기할 거야. 배우로 죽을 거야' 이런 생각만 했거든요.

선배님들과 가까이 지내면서, 이분들이 내공과 힘의 근본이 인품이라는 걸 느꼈어요. 결국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는 일이잖아요. 물론 연기는 당연한 거고요. 저도 선배님들처럼 가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동안은 위를 보고 연기했다면, 이젠 멀리 보고 싶어요. 배우로서 방향성을 바꾸고 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유선 재순이 우리 갑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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