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열린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현대글로비스와 한국전력공사의 경기에서 선수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다.

9일 열린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현대글로비스와 한국전력공사의 경기에서 선수들이 스크럼을 짜고 있다. ⓒ 박장식

 
럭비가 '비인지 종목'의 한계를 넘고 인기 종목으로 올라설 수 있을까. 지난 3월 26일부터 4월 9일까지 강진 하멜럭비구장,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에서 열린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1차 대회에서는 럭비 국내대회의 흥행 가능성을 실험해 볼 수 있는 여러 무대가 펼쳐졌다.

럭비 국내대회 사상 최초로 유료 관중을 모으기도 했던 이번 대회에서는 720여 명의 관중이 입장하는 등, 럭비 종목의 성장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었다. 특히 1차 대회 최종전에는 선수들과 감독, 최윤 대한럭비협회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미디어데이 역시 개최되어 지난해 올림픽 이후 처음으로 공식적인 자리에 나서기도 했다.

물론 협회에서는 지금까지 '코리아 럭비 리그' 등 여러 대회를 개최하기는 했지만, 이른바 '대회'로서의 측면보다 경기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경우가 많았기에 색다른 시도가 더욱 기대된다. 9일 1차 대회 최종전 현장을 찾았다.

시끌벅적 경기장... 외국인 관중도 왔네

인천 남동아시아드럭비경기장. 이날 진행된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1차 대회 최종전에는 유료 관중을 받는다는 파격적인 시도가 벌어졌다. 대한럭비협회에서는 "'한국의 럭비 경기 관람은 공짜다'라는 기존의 관행에서 우리 럭비인들이 먼저 탈피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고 이유를 전하기도 했다.

럭비 경기에서 이른바 입장료를 받은 것도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이후 처음 있는 시도였다. 그때 입장료는 7천 원.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1만 원의 입장료를 받았다. 국제대회보다도 비싼 입장료였다. 입장료야 럭비 저변 확대를 위해 쓰인다 해도, 흥행이 되지 않으리라고 우려할 수 있는 여지도 충분했다.

하지만 첫 시작이 좋았다. 이날 포스코건설과 국군체육부대, 그리고 한국전력공사와 현대글로비스의 경기를 볼 수 있는 일일권은 720여 장이 팔렸다. 본부석 측 관중석에서는 실제로 적잖게 모인 관중들이 상기된 얼굴로 이날 경기를 지켜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출전 기업 역시 직원들과 함께 단체 응원전을 펼치기도 했다.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현대글로비스와 한국전력공사의 경기에서 라인아웃 상황 선수들이 공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현대글로비스와 한국전력공사의 경기에서 라인아웃 상황 선수들이 공을 차지하려 하고 있다. ⓒ 박장식

 
눈에 띄는 것은 외국인 관중이었다. 경기장 한편에 삼삼오오 자리를 깔고 앉은 외국인 관중들은 럭비 경기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맥주 한 잔을 곁들이거나, 극적인 트라이 순간에는 환호성을 지르는 등 해외의 럭비 월드컵 장면을 보는 듯한 풍경도 보였다.

이날 경기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2년 만에 관중들 앞에서 펼쳐진 경기였다. 그런 만큼 선수들 역시 좋은 경기력으로 관중들 앞에 돈과 시간이 아깝지 않은 경기를 펼쳤다. 특히 선수들에게는 이날 경기의 결과에 따라 1차 대회의 최종 순위가 정해진만큼, 긴장감 역시 적잖았다.

라인아웃(라인 밖으로 빠져나간 공을 받기 위해 선수가 다른 선수의 무등을 타 공을 받는 것, 기자 말)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높이 서려 애썼고, 극적인 트라이를 만들기 위해 돌진하는 선수들의 얼굴에서는 비장함도 묻어났다. 

경기 결과는 한국전력공사의 승리였다. 이날 한국전력공사는 2020 도쿄 올림픽에도 출전했던 김광민의 첫 트라이, 이어진 김기민의 컨버전 킥이 물꼬를 텄다. 51-20으로 승리한 한전은 1차 대회 3승 0패로 전승 우승을 기록했고, 현대글로비스는 2승 1패로 준우승을 기록했다.

"관중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네요"

경기 직후 미디어데이는 최윤 대한럭비협회 회장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전력공사 김동환 감독·김광민 선수, 현대글로비스 김용회 감독·손민수 선수, 찰스 로우 럭비 국가대표팀 감독 등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었다. 최윤 회장은 "비인지 스포츠이지만 인기 스포츠로 우리 스스로가 거듭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인사했다.

특히 최 회장은 "지난해 올림픽에도 다녀온 선수들이 올해는 럭비 월드컵과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한다. 선수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럭비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고, 그렇듯 오늘 경기에서도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다. 아시안게임 금메달 가능성도 충분하다"며, "(내가 구단주로 있는) 배구보다도 럭비를 잘 부탁드린다"며 현장에 웃음을 안겼다.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미디어데이에서 선수들과 감독, 최윤 회장(맨 왼쪽)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미디어데이에서 선수들과 감독, 최윤 회장(맨 왼쪽)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박장식

 
1차 대회에서 우승한 한국전력공사 김광민 선수는 "준비를 힘들게 했는데, 연습한대로 잘 한 덕분에 승리했다. 선수들 모두에게 고맙다"며, "잘 추스려서 2차 대회도 잘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현대글로비스 손민수 선수 역시 "준비된 것이 나오지 못했는데, 오늘 경기가 교훈이 될 것 같다"며 멋쩍게 웃었다.

관중 입장 경기를 2년 만에 치른 후기는 어떨까. 김광민 선수는 "관중 분들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운동장에서 느껴지는 것이 있다"며, "밖에서 들리는 환호와 함성 덕분에 힘이 되고, 경기력도 더 좋아진다"고 말했다. 손민수 선수 역시 "이렇게 관중이 많이 온 것은 처음"이라며, "많은 힘이 되었다"고 말했다.

일주일에 한 번, 주말에 경기를 치르는 것에도 소감을 남겼다. 김광민 선수는 "전국체전은 한 게임 끝나면 하루 쉬고 다음 경기에 나서야 해 회복이 어려웠다. 그런데 일주일만 쉬더라도 회복이 충분히 된다는 점에서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한전 김동환 감독은 "과거 18명, 19명으로 전국체전을 치르던 시절에는 일주일 동안 예선부터 결승까지 가야 하는데, 부상 때문에 선수 정원을 채우지 못해 기권한 적도 많았다"라며, "우리나라는 선수들의 TO가 많지 않기에 이런 변화도 좋다"고 말했다.

최윤 회장은 럭비의 '인지 스포츠화'에 대해 "실업팀의 경기를 좋은 환경에서 치르고, 좋은 미디어를 통해 선수들이 빛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럭비를 어렵지 않은 스포츠로 인식케 해 축구처럼 아이들이 즐길 수 있도록 저변 확대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동호인 팀으로 출범한 'OK 럭비단'의 공식 경기 출전 시점에 대해서도 답했다. 최 회장은 "현재까지 19명의 선수단이 있고, 추가적으로 5명의 포워드 선수를 뽑으려 하고 있다. 이번 전국체전 15인제에 처음 나가려고 준비하는 중"이라며, "각 지역을 통해 선수들을 선발하려 한다"고 답했다.

"축구장에 '폴'만 세우면 럭비 구장으로 쓸 수 있는데..."
 
 대한럭비협회가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이후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찰리 로우 국가대표팀 총감독이 말하고 있다.

대한럭비협회가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이후 열린 미디어데이에서 찰리 로우 국가대표팀 총감독이 말하고 있다. ⓒ 박장식

 
한국 최초의 럭비 전용구장이지만 사라질 위기에 처한 서울럭비구장의 대체구장 이야기에 대해서도 질문이 나왔다. 최윤 회장은 "이미 서울특별시 등 관계 기관 등과 협상에 들어갔고, 당연히 대체 구장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좋은 소식 들릴 수 있지 않을까"라고 답했다.

이어 최 회장은 "축구장과 럭비장은 크기가 비슷하지만, 럭비장은 적지 않은가. 하지만 사실 축구장에 폴만 세우면 겸용구장으로 얼마든지 쓸 수 있다"며, "럭비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구장이 많이 필요한데, 이 역시도 여러 지자체와의 협의를 통해 추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서천오 전 국가대표팀 감독 역시 "축구장의 피치를 10m만 늘리면 럭비 경기에도 쓸 수 있다"며, "지자체에서 경기장을 만드는 분들이 그런 부분을 고려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향후 국가대항전에 대한 각오를 밝히는 질문도 이어졌다. 한전 김광민 선수는 "지닌 2019년부터 시스템이 많이 바뀌어왔다. 찰리 로우 감독님, 그리고 선수들 역시 서로에 대해 잘 안다. 아직 2년이 남았지만, 준비 잘 한다면 도쿄 올림픽에 이어 파리 올림픽에도 충분히 출전할 것"이라고 각오했다.

찰리 로우 감독은 5월 열릴 7인제 아시안컵,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대한 각오도 밝혔다. "7인제 종목은 신체적인 접촉은 덜해도, 지속적인 달리기가 주요하기 때문에 좋은 선수들을 선발해야 할 것 같다"며, "15인제도, 7인제도 대표팀 감독으로서 실업팀 감독/코치와 함께 어떤 선수의 선발이 적합한지 찾겠다"고 밝혔다.

특히 찰리 로우 감독은 "아울러 15인제의 경우 80분의 경기를 지속하는 체력, 전략적인 노하우, 마지막으로는 실수를 없애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1년 내지 2년 후에는 국제적인 경쟁력도 지닐 수 있으리라고 본다. 적절한 선수들 선발을 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럭비는 숨은 맛집 같다"는 말, '찾아오는 맛집' 되길
 
 9일 열린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현대글로비스와 한국전력공사의 경기를 바라보는 관중들의 모습.

9일 열린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현대글로비스와 한국전력공사의 경기를 바라보는 관중들의 모습. ⓒ 박장식

 
이날 미디어데이에서는 현대글로비스 김용회 감독의 말이 맴돌았다. "럭비는 숨은 맛집 같다. 맛을 알게 되면 광팬이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말이었다. 실제로 도쿄 올림픽을 통해 럭비를 알게 되었다는 럭비 팬들도 적잖았고, 현장에서는 럭비를 이미 아는 사람이 친지들을 데려와 럭비의 룰을 알려준 것도 인상깊었다.

럭비는 실제로 쉬운 스포츠이다. 공을 들고 상대편 인골 지역까지 달려가 공을 바닥에 찍으면 된다. 규칙은 단 하나이다. '앞으로 패스하면 안 된다'는 것. 하지만 럭비에 대한 접근성이 여러모로 낮았던 탓에 '어렵다'는 이미지가 깊었다. 하지만 이번 럭비 리그의 접근성이 더욱 높아지면서 그런 면이 해결될 여지 역시 커졌다.

최윤 회장의 말도 그랬다. 최 회장은 "럭비는 15명이 자기 역할을 하는 스포츠다. 인생, 그리고 사회 시스템과 비슷하다"며, "성취감을 느끼고, 리더십도, 희생 정신도 느낀다. 무서운 도전을 과감하게 한 친구들에게는 서로 리스펙트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인생'을 닮은 종목이면서도, 누군가에게 크게 관심받지 못했던 우리 사회 속 자신의 삶과 비슷한 럭비 종목이기에 더욱 이 종목이 인기를 끌기를 바란다. 선수들의 국제대회 호성적, 그리고 선수들의 허슬 플레이가 이어진다면, 언젠가 다른 종목처럼 '매진 행렬' 역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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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비 2022 OK 코리아 슈퍼럭비리그 찰리 로우 럭비 리그 비인지 종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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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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