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타 토키토시 유바리판타스틱 영화제 프로그래머.

시오타 토키토시 유바리판타스틱 영화제 프로그래머. ⓒ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회제


추운 겨울, 폭설이 일상인 작은 소도시지만 전 세계 영화인들이 가보고는 감탄하는 영화제가 있다. 1990년에 시작해 올해로 31회를 맞은 유바리판타스틱 영화제는 말 그대로 호러, 판타지 등의 특정 장르 영화의 장이자 공간 자체가 주는 묘한 느낌으로 스타들도 무장해제 시키는 곳이기도 하다.
 
제26회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가 한창인 12일 오후 시오타 토키토시 프로그래머를 만났다. 유바리판타스틱 영화제 창립 멤버인 그는 마침 자신의 첫 연출작인 <리리카의 별>을 들고 왔다. 폐 탄광촌, 이젠 그 인구가 1만도 채 안 되는 노령화 도시에서 영화제를 이어가고 있는 그 힘의 원천이 궁금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올해 부분 비대면으로 치러지는 유바리판타스틱 영화제에 앞서 부천에서 오프라인 행사를 소화 중인 그는 기자에게 "역시나 영화제는 대면으로 해야 한다는 걸 체감하고 있다"며 인사말을 건넸다.
 
시민이 살려낸 영화제
 
홋카이도 지역의 탄광촌이었던 유바리시는 급격한 노령화와 인구 감소로 공동화 현상을 심하게 겪고 있다. 더욱이 유바리영화제를 만들었던 나카다 데쓰지 전 시장이 테마파크, 스키장, 골프장 건설 등 무리하게 도시 부흥 사업을 추진하고, 분식 회계 및 거액의 차입금까지 지며 결국 시를 파산에 이르게 한다. 그 이후로 현재까지 유바리는 중앙정부의 직접 통제를 받고 있다.
 
파산으로 시 당국의 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게 된 2007년 유바리영화제는 중단되기도 했다. 하지만 주민들이 직접 영화제 살리기에 나섰고, 이듬해 부활한다. 예산은 평년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주민들이 영화제 곳곳에서 헌신하며 일본과 세계 영화인들도 그에 다시금 호응하기 시작했다.
 
"유바리영화제에 오고 싶다는 분이 여전히 많지만 코로나19 등으로 최근 2년은 온라인으로만 진행했다. 예전의 끈끈한 느낌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주민들도 더욱 고령화되기도 했고. 사람들의 열망에 보답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또다른 가능성을 모색 중에 있다. 사실 눈밭에서 치러지는 영화제는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드문 환경이긴 하다. 이게 큰 매력이지 않나 싶다.
 
날씨가 안 좋으면 고립되기도 하고, 함께 눈을 치우는 그런 상황에서 즐겁게 보낸 면이 있다. 최근엔 예산 문제로 피치 못하게 여름에 개최하고 있지만 다시금 겨울에 개최하는 걸 기대하고 있다. 아무래도 제설 등 문제로 겨울엔 비용이 많이 느는 게 사실이거든."

 
전임 시장의 정치적 목적이 반영돼 시작된 행사지만 유바리영화제는 시체스 영화제 등 유럽 주요 판타스틱 영화제와 견줄 전통과 호응이 있었다. 후발 주자인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가 부상 중이지만 '좀 이상한', 좋은 의미로 '낯선' 장르 영화를 소개하는 장으로 세계 영화계의 활력이 돼 왔다.
 
"(영화제가 시작된) 1990년대 초반이라는 시기는 일본에서 판타지 장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던 때였다. 유바리 영화제도 그 흐름에 맞춘 것이지. 젊은 영화인들이 장르 영화를 많이 만들었고, 사람들이 한껏 빠졌던 시기였다. 그러다 영화제가 중단된 이후 시민들이 나서서 영화제를 홍보하고 다니셨다. 도쿄에 우리 사무국이 있는데 거기까지 찾아와서 여러 영화인들에게 유바리 영화제에 참여해 달라고 애원하곤 했지. 이미 유바리 지역이 판타스틱 영화제로 잘 알려져 있기도 했고, 영화인들 입장에선 뭐 계속 참가해도 좋지 않나 하는 의견이 있었다."
 
 시오타 토키토시 유바리판타스틱 영화제 프로그래머.

시오타 토키토시 유바리판타스틱 영화제 프로그래머. ⓒ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회제


다시금 활력을 꿈꾸며
 
시오타 토키토시 프로그래머는 영화제 초반에 있었던 일화 몇 가지를 들려줬다. 1회 때 심사위원으로 온 배우 존 보이트가 어린 딸을 데리고 왔고, 그가 바로 안젤리나 졸리였다는 사실을 전하며 그는 "딸에게 스키를 알려달라 부탁해서 우리 스태프가 아주 열심히 가르쳤다. 지금도 그 스태프는 자기가 꼬마 안젤리나 졸리와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며 자랑하곤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배우 가츠 신타로, 로제 바딤 감독, 데니스 호퍼 감독은 쏟아지는 눈을 보며 '와! 하늘에서 하얀 가루가 내린다'며 좋아하고 다녔다. 공교롭게 세 사람 모두 마약 혐의로 타격을 입었지 않나(웃음). 3회 때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신인으로서 경쟁 부문에 초청돼서 왔는데 호텔에서 한참 대본을 쓰고 있더라. 그게 바로 <킬빌>이었다."
 
영화 <킬빌>에 등장하는 철퇴 소녀 고고 유바리(쿠리야마 치아키)가 바로 유바리 영화제 때의 기억을 담은 캐릭터였다. 시오타 토키토시 프로그래머는 "돌아보면 역시나 영화제 안에서 많은 영화인을 만나고, 결국 나 스스로도 영화를 만들게 된 게 가장 큰 보람"이라며 "지자체가 파산하고 영화제가 없어질 위기에 놓였을 땐 정말 막막하고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2017년 기준 유바리 시의 인구는 8612명으로 1만이 채 안된다. 여전히 이런 망한 도시에 영화제가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 또한 나오는 게 사실이다. 신임 시장이 공개적으로 폐지를 언급한 강릉국제영화제, 그리고 평창 동계 올림픽의 레거시 사업으로 시작된 후 성장을 거듭해 온 평창국제평화영화제를 두고도 우려의 시선이 가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시오타 토키토시 프로그래머는 "사실 적은 인구 문제 같은 건 매번 나오던 이야기"라며 "그렇기에 너무 시나 도의 행정에만 의지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예산 등을 절대적으로 지자체에 의지하면 위기는 언제든 생길 수밖에 없다. 좀 더 시민이 주체가 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 안 좋은 사례지만 도쿄국제영화제가 지금 존재감을 많이 잃은 것도 결국 관 주도의 행사라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유바리도 정치적 목적으로 탄생했지만 시가 도산한 후 주민들이 살려냈다. 함께 시민들이 움직여 지역활성화를 도모하는 식으로 발전했다고 본다."
 
현재 유바리판타스틱 영화제는 100프로 민간 협찬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도산 이후 관리 지역이 됐기에 국비를 전혀 지원받을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게 독립성을 더욱 강화하는 자극제가 되지 않았을까. 사무국 인원들이 일본 전역을 돌며 스폰서를 구하는 고단함이 있지만 영화인들과 주민의 자존감 만큼은 확고하게 지키고 있었다.
 
시오타 토키토시 프로그래머는 현재 오프라인으로 진행 중인 부천국제판타스틱 영화제를 들며 "결국 오프라인에서 관객과 함께 소통하는 중요성을 확인하고 있다. OTT나 VOD를 통한 영화 보급은 피할 수 없는 추세긴 하지만 오프라인과 온라인 장점을 활용한 극장 체험이 잘 병행되는 게 영화제의 미래가 아닐까 싶다"고 나름의 속생각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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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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