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막을 열흘 앞두고 사실상 취소된 5회 고창농촌영화제

개막을 열흘 앞두고 사실상 취소된 5회 고창농촌영화제 ⓒ 고창농촌영화제

 
지방선거 이후 새로 선출된 지방자치단체장에 의해 지역의 영화제가 영향을 받는 사례가 또 다시 발생했다. 국제영화제에 이어 적은 예산으로 비교적 알차게 진행되던 작은 영화제가 영향을 받은 것이어서 영화계의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오는 10월 28일 전라북도 고창에서 개최를 앞두고 있던 5회 고창농촌영화제가 행사를 열흘 앞두고 갑자기 축소돼 '사실상 취소'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아무리 작은 영화제라 하더라도 준비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영화제가 취소 수준으로 축소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영화제 기간 활동할 자원봉사 선발도 끝난 상태였다.
 
"말은 축소라는데, 영화제 없애는 것"
 
고창농촌영화제 측은 "18일 공모로 진행했던 작품에 대해 시상만 하고 개막식이나 영화상영 등의 행사는 이뤄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어 "고창군이 '올해 영화제를 축소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다"며 "말은 축소라고 하는데, 내년 예산도 책정이 안 된다고 들어서 아예 영화제가 없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고창농촌영화제 측은 "아쉬울 때는 영화제 만들어 달라고 하다"가 "군수가 바뀌었다고 아예 없애는 행태를 보면 군수가 영화계와 영화인들을 아주 우습게 보는 인상이라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고 속상하다"며 유감을 나타냈다.
 
이에 대해 고창군 측은 축소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고창군의 실무 관계자는 "영화제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고 시상식만 진행하는 것으로 이 역시도 조직위원장, 사무국장 등과 협의하고 있으며 영화제 조직위 내부에서 여러 가지 상황을 고심 중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취소는 아닌 것 같다는 동향파악만 하고 있다. 영화제 조직위 측의 의견을 참고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또한 '영화제 조직위원회가 예정대로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결정하면, 예정된 예산 지원 등이 이뤄지는 것이냐는 질문에 "이후 상황은 알 수 없다"고 했고, '예산 회수가 결정된 것이냐?'는 물음에도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갑작스런 축소 이유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영화상 시상식도 아니고 영화제에서 기본인 영화상영을 없애면서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에서는 전임 군수가 만든 사업을 현 군수가 못마땅하게 생각해 없애려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공직에서 은퇴한 고창지역 인사는 "전임 군수가 문화적 토대를 닦아 놨는데, 그걸 다 무너뜨리려는 인상이다"라며 "선거에서 경쟁자였던 전임 군수가 벌여 놓은 사업이 다 싫은 모양이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열흘 남겨 놓은 영화제를 축소라는 이름으로 취소시킬 수 있는 것이 일개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않냐"라고 덧붙였다.
 
 2021년 고창농촌영화제를 방문해 응원의 마음을 전한 변영주 감독

2021년 고창농촌영화제를 방문해 응원의 마음을 전한 변영주 감독 ⓒ 고창농촌영화제 제공

 
고창농촌영화제는 영화제 외에도 지역에서 영화 워크숍을 운영해 단편영화를 제작해 오고 있고, 젊은 귀농자들이나 지역 주민들에게는 유튜브 활용법을 교육해 지역 농산물 판로에도 활용하도록 돕고 있다.
 
변영주 감독은 지난해 고창영화제를 방문한 자리에서 "산, 들, 강, 바다, 갯벌이 모두 있는 고창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농·산·어촌의 정겨운 풍경을 모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영화학도는 물론, 지역주민들에게 현직 영화강사와 함께하는 단편영화 제작과 영화제 실무과정을 교육하기도 하는 모습이 놀라웠다"며 "고창농촌영화제가 이들에게 위로와 치유, 공감을 전해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다"고 관심을 보이기도 했었다.
 
소규모 행사지만 지역의 작은 영화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적은 예산으로 지역의 영상문화 확대에도 애쓰면서 차츰 주목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날벼락을 맞은 셈이다
 
민주당 지자체마저
 
하나의 작은 영화제가 없어지는 것에 불과할 수 있지만 이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은 현 군수가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 때문이다. 잇따라 두 개의 국제영화제가 멈추게 된 강원도의 경우 보수 정권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책임이 있는 국민의힘 소속 단체장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문화예술에 차별과 배제의 굴레를 씌운 행태에 책임 있는 정치세력이, 영화제 지원을 끊는 방식으로 없애려는 행태에 영화계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최근 끝난 부산영화제에서도 국내 영화제 주요 관계자들이 모여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지난 10월 8일 부산영화제에서 열린 '최근 국제영화제 폐지에 따른 영화인 토론회'

지난 10월 8일 부산영화제에서 열린 '최근 국제영화제 폐지에 따른 영화인 토론회' ⓒ 성하훈

 
그런데 민주당 소속 단체장마저 똑같은 행태를 보이면서 영화계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이다. 과도한 예산이 들어가는 행사도 아니고, 최근 한국영화에서 주목받고 있는 지역영화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던 활동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014년 부산영화제 사태 당시 전북지역의 전주영화제가 표현의 자유 수호를 위해 애쓰는 등의 활동을 보인 것과도 비교되고 있다.
 
충무로의 한 영화단체 관계자는 "열흘 뒤에 무슨 천재지변이 예고된 것도 아닌데, 갑자기 취소한 것은 지역에서 애쓰는 영화인들의 노력을 한순간에 짓밟은 행동처럼 보인다"며 "민주당 소속 지자체장이 똑같은 짓을 한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고창농촌영화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