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이스라엘 아데산야(사진 왼쪽)에게 강펀치를 날리는 도전자 알렉스 페레이라

챔피언 이스라엘 아데산야(사진 왼쪽)에게 강펀치를 날리는 도전자 알렉스 페레이라 ⓒ UFC 제공


 
'객관적 전력까지도 뒤집어버리는 천적관계?'

UFC 미들급 최강의 남자로 꼽히던 이스라엘 아데산야(33·나이지리아-뉴질랜드)가 천적에게 또 무너졌다. 미들급 챔피언이었던 그는 13일(한국시간) 미국 뉴욕 매디슨 스퀘어가든서 있었던 UFC 281 '아데산야 vs. 페레이라' 메인이벤트서 도전자 랭킹 4위 알렉스 페레이라(35·브라질)에게 5라운드 2분 1초 만에 TKO패로 무너졌다.

아데산야의 패배는 관계자와 팬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단순히 잘나가던 챔피언이 고개를 떨구고 말아서가 아니다. 둘 사이에 얽힌 천적 관계가 다시 이어지며, '설마'가 '역시'가 됐기 때문이다. '소름이 끼친다'고 표현하는 팬들도 한둘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데산야는 입식격투기 시절부터 페레이라에게 두 번이나 패한 적이 있었다. 2016년 중국에서 접전 끝에 판정패 당했으며 다음해 절치부심해서 나선 2차전 브라질 경기에서 또 다시 무릎을 꿇고 말았다. 1차전 판정패를 의식한 듯 적극적으로 경기에 임했고 실제로도 우세한 내용을 만들어냈다.

페레이라는 공격에만 집중하던 아데산야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레프트 훅을 터트리며 KO로 경기를 마무리 지었다. 당시 패배는 이날 경기 이전까지 아데산야의 프로 격투 스포츠 105전 중 유일한 KO패로 남아있다. 때문에 종합 무대에서 승승장구하던 시절에도 '아데산야가 진정한 역대급 강자로 남기 위해서는 페레이라를 넘어서야 한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 아데산야에게 이번 승부는 절호의 기회였다. 무대는 다르지만 페레이라를 이길 수만 있다면 마지막 남은 찜찜한 꼬리표까지 떼어낼 수 있었다. 아쉽게도 이번 승부는 2차전 당시의 상황을 되풀이하고 말았다. 4라운드까지 경기를 우세하게 이끈 것은 아데산야였다. 5라운드를 무난히 넘긴다면 승리가 유력했다.

점수에서 뒤진다고 판단한 페레이라는 보다 적극적인 공격으로 승부수를 던졌고 결정적인 한방에 아데산야가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페레이라는 숨돌릴 틈 없이 후속타를 냈고 결국 승부가 끝났다고 판단한 심판이 경기를 중단시키면서 새로운 챔피언이 탄생했다. 아데산야 입장에서 그야말로 땅을 치고 통곡할 상황이었다.

이렇듯 일대일로 자웅을 겨루는 격투기에서 언뜻 보면 이해못할 천적관계가 종종 존재한다. 객관적 전력에서는 A선수가 유리한 듯 보이지만 이상하게 B선수만 만나면 힘을 못쓰거나 경기가 이상하게 풀리지 않는다. 다 잘했다 싶은 순간에 이변이 터진다. 그렇다고 B선수가 모든 선수에게 강한 것도 아니다. 유독 A선수에게만 강하다. '너는 누구길래 도대체…' 이에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던 각본 없는 격투 드라마 속 천적 관계를 모아보았다.
 
 전성기 시절 티토 오티즈(사진 왼쪽)는 척 리델에게 유달리 약했다.

전성기 시절 티토 오티즈(사진 왼쪽)는 척 리델에게 유달리 약했다. ⓒ UFC 제공


한때 최강 그래플러 오티즈, 리델에 울고 또 울다

'아이스맨' 척 리델은 UFC 라이트헤비급 원조 독재자 중 한 명이다. 타격 위주의 공격패턴 거기에 대부분 공격이 펀치에 집중되었지만 체급 내에서 그를 넘어설 파이터는 한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다. 랜디 커투어와 함께 옥타곤을 가장 잘 활용하는 선수로 유명한 그는 특유의 스텝과 카운터펀치로 쟁쟁한 도전자들을 물리쳐왔다. 그 바람에 가장 손해가 막심했던 선수는 '악동' 티토 오티즈다.

리델만 없었으면 챔피언으로서의 장수는 물론 더 좋은 커리어를 남길 뻔했던 불운한 '2인자'는 UFC 47 'IT`S ON', UFC 66 'LIDDELL VS. ORTIZ'에서 거푸 고배를 마시며 사실상 정상 등극의 의지를 완전히 상실하고 만다. 오티즈는 압박형 그래플링 하나로 체급 내에서 위용을 떨치던 파이터였다. 타격가 타입인 리델과의 스탠딩 싸움은 필패인지라 어떻게든 그라운드로 전장을 바꿔야만 했다.

하지만 리델은 최고의 테이크다운 디펜스를 갖춘 파이터였다. 어지간한 타이밍 태클은 어렵지 않게 척척 막아냈고 클린치 상태에서도 노련하게 상대의 그립을 뜯어내기 일쑤였다. 어디 그뿐인가. 설사 테이크다운을 허용하더라도 특유의 동작으로 어렵지 않게 몸을 일으키고는 했다. 눌러서 압박할 틈 자체를 주지 않았다. 그래플러인 오티즈는 혼신의 힘을 다했으나 리델을 넘어뜨리지 못했고 항상 뒷마무리는 속사포 같은 연타의 허용이었다.

물론 그라운드 싸움을 무기로 하는 스타일에 유달리 강한 리델은 어찌 보면 오티즈뿐만 아닌 모든 '그래플러의 천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더레이 실바, 비토 벨포트, 포레스트 그리핀 등 타격이 강한 선수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는 최고의 그래플러 오티즈였음을 감안하면 연패와 일방적인 경기내용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었다.

물론 이후 오티즈는 리델에게 승리를 거두기는 했다. 2018년, 8년 만에 케이지에 돌아온 리델에게 1라운드 실신 KO승을 거두며 이전의 설움을 어느 정도는 풀었다. 하지만 당시 리델은 워낙 공백기가 길어 예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선수 생활 막판부터 기량을 잃어버린 상태였는데 하물며 오랜기간 쉬면서 아예 딴 사람이 되어버렸다.

반면 오티즈는 선수 생활을 꾸준히 이어가며 어느 정도 기량을 유지해나가던 상태였다. 당시 기량을 잃은 리델을 감안하면 복수라고 할 수 없는 경기였고 실제로 대부분 팬들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위기다.
 
 명성에서는 많이 딸렸던 퀸튼 잭슨(사진 위쪽)이지만 그는 진정한 척 리델의 천적이었다.

명성에서는 많이 딸렸던 퀸튼 잭슨(사진 위쪽)이지만 그는 진정한 척 리델의 천적이었다. ⓒ UFC 제공


'누군가의 천적' 리델, 퀸튼에게는 '고양이 앞의 쥐'
 
라이트헤비급에서 여러 선수들에게 절망의 벽을 안겨줬던 리델에게도 '천적'은 있었다. 다름 아닌 퀸튼 '람페이지' 잭슨이 바로 주인공이다. 퀸튼만 만나면 일방적으로 작아지고 또 작아졌다. "나에게 생소한 링이라는 게 컸다. 옥타곤이었다면 나의 승리다." 2003년 프라이드 미들급 그랑프리에 UFC의 자객 신분으로 도전장을 던졌다가 퀸튼에게 처참하게 패한 뒤 리델이 뱉어낸 말이다.

당시 리델은 UFC 라이트헤비급 최강의 타격가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시종일간 퀸튼에게 끌려다녔다. 프라이드 상위 랭커 퀸튼은 리델이 그동안 상대했던 옥타곤의 강자들과는 달랐다. 퀸튼은 리델의 정석과는 다른 독특한 펀치 공격을 두려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특유의 큰 훅으로 맞받아치기 일쑤였고 옥타곤에서는 누구도 잡기 힘들었던 리델 특유의 스텝마저도 활발한 움직임으로 묶어버렸다.

퀸튼의 두터운 안면가드는 정타가 뚫고 들어갈 틈을 주지 않았고, 계속 그라운드로의 전환을 꾀하는 클린치 시도는 리델에게 큰 부담이 됐다. 결국 타격전에서 자신감을 가진 퀸튼의 맹공에 리델은 링 바닥으로 나가떨어졌고 이어진 파운딩 연타에 TKO로 무너지고 말았다.

그때의 경기는 리델에게 큰 상처가 됐다. 아무리 UFC에서 연전연승을 거듭해도 하나의 꼬리표처럼 그의 이력에 오점으로 남았다. 어쩌면 둘의 승부가 거기서 끝났다면 퀸튼이 리델에게 '천적'이라는 말은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맞대결에서는 퀸튼이 이겼지만 그 뒤 리델이 압도적인 커리어를 쌓아나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퀸튼은 UFC에 입성하고 두 번째 경기였던 UFC 71 'Liddell VS. Jackson'에서 또다시 리델을 격파했고 상대 전적의 우위는 물론 파이터 인생의 최고 황금기를 열어젖혔다. 프라이드 당시 링에서의 패배에 이어 본인의 주 전장인 옥타곤에서 조차 그것도 1라운드 1분여 만에 펀치에 의한 넉아웃 패배를 당했다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결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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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디지털김제시대 취재기자 / 전) 데일리안, 전) 홀로스, 전) 올레 , 전) 이코노비 객원기자 / 농구카툰 크블매니아, 야구카툰 야매카툰 스토리 / 점프볼 '김종수의 농구人터뷰' 연재중 / 점프볼 농구카툰 'JB 농구툰' 연재중 / 점프볼 객원기자 / 시사저널 스포츠칼럼니스트 / 직업: 인쇄디자인 사무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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