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 김다솔 세터

흥국생명 김다솔 세터 ⓒ 박진철 기자

 
승승장구하던 흥국생명이 갑작스런 난조에 빠졌다. 그동안 불안했던 부분들이 집중 부각되면서 패배 원인에 대한 팬들의 비난도 커지고 있다.

흥국생명은 1일 현재, 2022-2023시즌 V리그 여자부에서 7승 3패(승점21)로 2위를 달리고 있다. 1위는 10전 전승(승점28)으로 독주하고 있는 현대건설이다.

현재까지는 기대 이상의 성적이다. 지난 시즌 최하위권인 6위에서 2위까지 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또한 김연경(34·192cm)의 합류가 없었다면, 흥국생명의 전력은 김채연·박혜진의 부상 이탈 등을 감안하면 지난 시즌보다 오히려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경기력이 급격하게 흔들리면서 우려를 낳고 있다. 흥국생명은 지난 11월 25일 현대건설에 세트 스코어 0-3으로 완패했다. 내용적으로도 현대건설과 1차전 패배 때보다 나빴다. 그리고 11월 29일 GS칼텍스와의 경기에서도 2-3으로 패했다. 그러면서 올 시즌 첫 연패를 기록했다. 

"토스가 너무 낮고, 토스를 하다 만 것 같다" 혹평

흥국생명이 연패에 빠진 핵심 원인은 비교적 확연하게 드러났다. 권순찬(47) 흥국생명 감독의 자책성 발언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터들의 토스 난조, 감독의 선수 기용·전략 패착 부분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올 시즌 흥국생명 세터들은 연승 중일 때도 토스가 낮아 장신 공격수인 김연경(192cm), 옐레나(196cm)의 공격 타점을 맞추지 못한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실제로 주전 세터인 김다솔(25·173cm)은 전반적으로 토스 높이가 낮다. 또한 토스를 높게 하면, 속도가 느리고 볼 끝이 힘없이 축 내려오는 게 가장 큰 문제점이다.

한 여자배구 해설위원은 11월 29일 중계 도중 "김다솔의 토스가 너무 낮고, 토스를 하다 만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러다 보니 공이 공격수에게 오다가 만다. 좀 더 자신감 있게 뿌려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런 토스를 계속하면, 아무리 기량이 뛰어난 장신 공격수도 상대 팀 블로킹에 막히거나 유효 블로킹이 돼서 수비로 걷어올려지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어깨에 무리가 가서 부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올 시즌 V리그 경기를 중계하는 여자배구 해설위원들의 단골 멘트는 또 있다. 바로 "흥국생명 세터들이 김연경에게 토스하는 것에 자신감이 없고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다. 김연경이 나쁜 볼을 개인 기량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였다.

김연경은 올림픽 등 국제대회와 해외 리그에서 V리그보다 블로킹 수준이 훨씬 높고 견고한 세계 최정상급 팀들과 경기할 때도 장신 블로킹 위에서 공격을 내리찍거나, 다양한 코스로 성공시킬 정도로 세계 최고의 기량을 수없이 증명해 왔다.

때문에 김연경에게는 토스 높이를 세워서 네트에 가깝게 쏴줘야 한다. 그게 어렵다면, 상대 블로킹을 보고 알아서 때릴 수 있게 토스를 높고 힘있게 쏴주면 된다. 

그런데 현재 흥국생명 세터들은 장신 공격수 맞춤형 토스를 할 역량이 안 되는 듯한 '무기력한 토스'가 많고, 이단 연결마저 공격수보다 불안정하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감독·세터 '김연경 사용법' 모른다... 비효율 운영

또한 김연경은 한 번 공격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토스를 연속적으로 주면 대부분 성공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 스스로 공격 리듬을 찾아서 장신 블로킹을 무력화시키는 다양한 공격을 선보이게 된다. 매 경기 김연경의 공격 성공률이 높게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현재 흥국생명 세터들은 김연경의 공격이 실패하면 곧바로 다른 선수에게 토스를 해버린다. 심지어 김연경 앞에 상대 팀의 단신 선수들이 서 있는데도 김연경에게 토스할 생각도 하지 않는 모습을 자주 노출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김연경에게 토스하는 빈도수가 급격히 줄었다.

문제는 최근 2연패를 하는 동안 흥국생명 공격수 중 김연경의 공격 성공률이 가장 높았다는 점이다. 김연경은 어려운 볼을 많이 때렸음에도 현재 V리그 여자부 전체 공격 성공률 부문에서 3위(43.98%)에 올라 있다. 오픈공격 성공률도 4위(42.66%)다. 5위는 같은 팀의 옐레나(37.4%)다.

그런데도 김연경의 공격 시도 횟수가 너무 적었다. 특히 GS칼텍스전에서는 5세트 경기를 했는데도 공격 시도 횟수가 옐레나 51회, 김연경 30회로 절반 수준에 그쳤다.​

옐레나를 향한 고집스럽고 불안한 토스를 남발하다 보니, 옐레나마저 최근 공격 컨디션이 크게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낮은 토스 때문에 미들 블로커인 이주아(22·185cm)도 대표팀에서 보여준 위력적인 속공이 사라지고 있다.

세터들이 너무 비효율적인 경기 운영을 한 셈이다. 이런 흐름이 계속되면, 제아무리 세계적인 선수라도 공격 리듬이 깨질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은 감독이 작전 타임 등을 통해서 교정을 해줘야 하지만, 거의 없었다. ​

흥국생명 '낮고 빠른 배구'와 무관... '오류' 두드러져

한편, 김다솔이 흔들릴 때 교체 카드로 박은서(22·173cm) 세터를 투입하지만 상황은 더 악화되기 일쑤였다. 팀 훈련 때 주전들과 손발을 맞추지 않은 듯한 모습이 역력했다.

일각에선 흥국생명 토스를 보면서 '낮고 빠른 배구'를 추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흥국생명의 현재 모습은 그런 배구와도 전혀 상관이 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데다, 토스마저 난조에 빠졌기 때문이다. 

흔히 낮고 빠른 배구를 한다고 알려져 있는 일본, 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세터들이 공격수 타점도 못 맞출 정도로 낮은 토스를 남발한 사례가 전무하다. 오히려 전 세계에서 공격수 타점과 들어오는 타이밍을 가장 잘 맞춰주는 정교함, 토스 궤적(포물선)이 좋고 볼 끝이 살아 있는 힘있는 토스로 정평이 나 있다.

더군다나 현재 흥국생명은 선수 구성상, 낮고 빠른 배구를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주전 멤버들의 신장 구조가 유럽 강팀들의 장신 군단에 가깝기 때문이다. 유럽형 토털 배구를 해도 부족할 판에 정반대 유형의 배구를 한다는 건 '자멸 행위'나 다름없다.

납득 어려운 선수 기용... 상대 팀 분석도 실패
 
 흥국생명 작전 타임 모습

흥국생명 작전 타임 모습 ⓒ 박진철 기자

 
감독의 선수 기용, 상대 팀 분석 등 전술적 패착이 연패 도중 두드러지게 나타난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현재 흥국생명에서 김연경을 제외하고, 서브 리시브와 공격이 비교적 안정적인 아웃사이드 히터는 단연 김미연(29·177cm)이다. 때문에 강팀과 빅매치 때는 경험도 많은 김미연을 주전으로 투입하고, 흔들릴 때 잠시 다른 선수로 교체했다가 다시 투입하면서 경기를 끝까지 책임지게 하는 게 정석이다.

그런데 권순찬 감독은 '서브 1위' 팀인 현대건설과 2번의 맞대결에서 서브 리시브가 가장 불안한 김다은(21·180cm)을 장시간 투입했다가, 두 경기 모두 결정적 패인을 제공하고 말았다.

특히 현대건설과 2차전에서는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선수 기용을 했다. 김미연을 선발 출전시켰다가 김다은을 기용했고, 김다은이 불안한 모습을 보이자 3세트 초반부터 박현주(21·176cm) 카드를 꺼내들었다. 

박현주는 아포짓 포지션인 데다 서브 리시브나 수비가 불안한 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박현주를 상대 팀 장신 선수인 야스민(192cm)과 양효진(192cm) 앞에 세웠다. 이날 야스민은 공격 컨디션이 올 시즌 최고였다. 박현주가 들어오자 야스민은 더욱 편안하게 폭격을 퍼부었다. 

결국 공격과 수비 모두 한계가 금방 드러났고, 반전의 계기도 없이 완패로 끝났다. 그러자 여자배구 팬 사이트 등에서 "감독이 경기를 미리 포기했다"며 맹비난이 쏟아졌다. 

한편, 최근 블로킹도 급격히 약화되면서 블로킹과 수비 위치 조정 등 코칭스태프의 상대 팀 분석에서도 허점을 드러냈다. 또한 원 포인트 서버도 정윤주, 박수연 등 서브 강도와 안정감이 높은 선수를 더 자주 활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상 최고 흥행 메이커'의 부담감과 책임

권순찬 감독도 자신의 전략 실패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하기도 했다. 그는 GS칼텍스전 패배 직후 언론 인터뷰에서 "선수 교체 타이밍 등에서 제가 실수를 했다. 제가 생각을 잘 못해서 경기에 진 것 같다"고 자책했다.

흥국생명은 현재 '김연경 신드롬'의 영향으로 V리그에서 독보적인 흥행 메이커 역할을 하고 있다. 흥국생명 경기는 평일과 주말, 수도권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관중이 기본적으로 4000~5000명이 들어찬다. 

오는 7일 광주광역시에서 열리는 페퍼저축은행-흥국생명 경기는 다른 팀들 경기 때와 달리 3층 좌석까지 '추가 개방'했는데도 벌써 티켓이 매진됐다.

이런 추세라면, 올 시즌 여자배구는 V리그 역사상 '최고 평균 관중' 신기록을 세울 가능성이 높다. 국제대회 부진, V리그 기간 중 카타르 월드컵 등으로 지난 시즌보다 흥행이 추락할 위기 상황에서 대반전이 생긴 것이다.

당연히 흥국생명이 연패를 계속할지, 변화된 모습을 보여줄지는 초미의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흥국생명의 다음 경기는 2일 IBK기업은행과 맞대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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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생명 권순찬 김연경 관중 KOV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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