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연애대전> 포스터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연애대전> 포스터 ⓒ 넷플릭스


초반엔 이 무슨 '신박'한 스토리인가 했다. 결론은 실망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연애대전> 이야기다.

<연애대전>은 극단적인 남성 혐오자와 극단적인 여성 혐오자라는 두 인물을 대립시켜 로맨스를 엮어낸다. 여성을 혐오하는 남자는 새로울 게 없지만, 남자를 혐오하면서 '원나잇'을 즐기는 여성 캐릭터는 드라마에서 좀처럼 발견하기 힘들다. 이런 면에서 드라마는 초반 여성의 섹슈얼리티에 대해 상당한 호기심을 자극하며 시동을 걸었다.
 
바람둥이로 통하는 주인공 여미란(김옥빈 분)은 변호사다. 유능하지만 "생리 휴가, 출산 휴가" 요구하는 "골치 아픈" 존재들로 여겨지는 여자 변호사는 극 중에서 로펌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생존을 위해 급 취업을 하여 인기 최고의 배우 남강호(유태오 분)를 만나게 되면서 이들의 괴상한 로맨스가 시작된다.

여미란은 태권도, 쿵후, 복싱, 킥복싱 등 잡다한 무술을 두루 섭렵하며 갈고닦은 무술 고단자다. 게다가 이를 교묘히 뒤섞은 하이브리드 싸움 기술로 길거리 파이팅에 백전백승하는 야전 고수다. 다른 건 몰라도 그가 벌이는 무술은, 특히 악당을 한 주먹으로 퇴치할 때는 엄지 척을 연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바로 이 무술 매력이 시청자인 나를 홀린 것처럼, 여성 혐오자인 남자 주인공 남강호도 매료시켜 버렸다.

이럴 수는 있다. 본래 끌린다는 것은 나와 다른 어떤 면이 격한 매력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니까. 이렇게 강렬한 다름은(동질감도 마찬가지다) 종종 개인의 성향과 취향 등이 반영된 개인적인 호불호라 착각할 수 있지만, 이 또한 대부분 사회가 주조한 성별 고정 관념의 결과이기 쉽다. 그저 약하고 보호해 줘야 된다고 여겨지는 여자라는 이미지가 남자들을 안심시키기 때문에 선호될 뿐이다. 강호는 미란의 남다름 즉 보호가 필요 없는 강인한 여자라는 면에 강력히 어필된 셈인데, 왜일까?
 
엄마와 전 애인, 두 여자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연애대전> 스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연애대전> 스틸 ⓒ 넷플릭스

 
그는 이런 트라우마를 가졌다고 여겨진다. 어릴 적 사업 실패로 몰락한 아빠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엄마가 돈 많은 새 남편을 맞이한 것, 그리고 갑자기 스타덤에 오른 전 애인이, 강호의 희생과 헌신에 기대 성공한 것이 아닌데도, 자신의 미래를 위해 헤어지자고 한 것. 이 사건들은 아픔이랄 수는 있지만, 이 상처가 약물로 다스려야 할 만큼의 트라우마를 남겨 "어른 여자는 다 싫어"라 선언하게 된 계기라 이해되기는 무리다.
 
그는 엄마와 전 애인인 두 여자를 통해 여자라는 존재는 "영악하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이라 결론짓고 여성 혐오관을 정립한다. 허나 "영악하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면모란 다른 측면으로 조명되면 얼마든지 큰 장점이 될 수 있기에 그 자체로 맹목적인 여성 혐오의 조건이 될 수 없다. 이를 강호의 개인사로 반추한다 해도, 엄마는 아이를 키워야 했을 테고 전 애인은 더 성공하고 싶었을 수 있다. 이 점이 극도의 여성 혐오를 생성한 정당한 조건으로 설정될 수 있을까. 이보다는 강호의 억지 트라우마 설정을 통해 아들을 위해 혹은 남자 애인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계율을 위반할 시, 여성은 혐오당해도 싸다는 암시를 던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또한 강호가 "영악하고 이기적이고 계산적"이지 않고 "단순무식하고 용감한" 여자라서 사랑하게 된 미란은, 그가 혐오한다는 저 항목 어디에 맞서는 대척점에 있는 것일까? 미란은 직장에서 생존하기 위해 매우 '영악'한 전략으로 때론 비굴하게 때론 '이기적'으로 임하고 있으며, 생활비와 채무를 변제하기 위해 강호의 매니저와 가장 연애계약을 맺을 만큼(이는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이용하고 금전을 지급한다는 면에서 상당히 문제적이다) '계산적'이기도 하다.

이런 모순은 '낯선 여자'라는 매력으로 쉽게 무마되며, 그가 극렬히 거부했던 어떤 혐오도 명쾌히 상쇄하지 않으면서 사랑의 묘약으로 처방되고 있다. 이러한 전개는 그저 터무니없는 혐오를 주체하지 못하는 아직 다 자라지 못한 남자가, 만만한 여자에게 조롱과 비난 등의 언어폭력을 퍼부으며 괴롭혀온 부끄러운 성차별을 트라우마라 교묘히 방패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트라우마와 이런 사랑이라니...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연애대전> 스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연애대전> 스틸 ⓒ 넷플릭스

 
미란이 강호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도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 강호를 여성 혐오자에 변태라 의심하다 서서히 오해를 풀어가는 과정은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이를 경유해 "나를 욕망하는 남자들에게 군림하고 싶었다"는 바람둥이 미란이 불현듯 한 남자에게 정착하게 되는 신화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캐릭터를 무참히 붕괴시켰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게다 '여자의 바람이 결국 최고의 남자를 만나기 위한 방황이었다'로 치닫는 결론은, 이 드라마가 초반 성적으로 개방된 여성이라는 매우 색다른 캐릭터를 내세워 성평등한 서사를 견인하는 듯 가장했지만, 결국 한 남자에게로의 귀속이라는 허망한 결론으로 내달음으로써, 좋은 남자가 나쁜 여자의 성적 방종을 교정하는 데 성공했다고 믿게 한다.

방종한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교정하려는 드라마의 의도는, 사생활 폭로로 미란이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화신으로 추락하고, 강호의 팬들을 경악시켜 그를 위기에 처하게 하면서, 더욱 명징하게 드러난다. 이런 과정에서 문란한 여자로 전락한 미란의 발가벗겨진 성적 자기 결정권이 전 애인의 과녁이 빗나간 변호로 기사회생하기는 한다. 미란의 성적 방종이 알고 보니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방식에 입각한 나쁜 남자를 징벌하려는 미란의 정의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증언되면서, 그녀는 다시 한 남자의 애인으로 적격 판정을 받는 것이다.

이쯤에 이르면 드라마가 발신하려는 메시지는 결국, 한 여성이 누릴 성적 권리 따위 같은 것은 없다고 선고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연애대전>의 '대전'은 허상일 뿐 미란의 완패이며, 여성의 성적 권리는 사회가 허락하는 한에서만 용인된다고 재우치는 가부장의 채찍질이 교묘한 눈속임 속에 자행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윤일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연애대전> 성적 권리 성적 자기 결정권 나쁜 남자 팜므파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