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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바람야구도 관리야구도 아니다"

김성근 전 LG 트윈스 감독 전격 인터뷰

02.12.10 07:48최종업데이트02.12.16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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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수를 너무 혹사시키고 이기기 위해 번트만 댄다. 데이터를 맹신해 선수 교체가 잦고 경기를 지연시킨다. 경기가 재미없다."

2002년 팀을 시즌 준우승까지 끌어올린 프로야구 전 LG 트윈스 김성근(60) 감독. 하지만 그에게는 위와 같은 비판이 쏟아진다.

야구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컴퓨터 감독`이라고 불리는 그는 어려운 팀을 맡아 뛰어난 조련사로서의 능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타고난 야성의 기질과 고집으로 늘 프런트와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고 이는 항상 불씨가 되곤 했다.

계약기간을 남기고 도중하차 한 것이 이번 트윈스까지 5차례나 된다. 프로 감독 중 가장 많은 팀을 책임져 왔다는 기록(?) 아닌 기록도 가지고 있는 그다.

그렇다면 그에 대한 고정관념 및 비판을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약 4시간동안 이어진 인터뷰를 통해 그 궁금증을 풀어보았다.

만신창이 트윈스, 새로운 팀으로 거듭나다

"(선수들이) 야구의 고마움을 모르고 있었어요. 야구하는 거 자체가 고마운 거예요. 당시 선수들은 연습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외출하면 늦게 들어오고…. 돌파정신이 없었어요. 같은 야구인으로 슬펐어요. 승부는 인내와 끈기다. 그런데 신바람 야구는 끈기가 없다. 힘나면 야구하고 아니면 포기하고. 즉, 신바람이 안 나면 그 자리에 머물러 버리지요."

ⓒ SP 김진석김성근 감독이 가장 싫어하는 표현 중 하나가 `신바람 야구`였다. 신바람 야구는 단지 캐치프레이즈라는 것. 트윈스 감독으로 부임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선수들 스스로 하려는 의지가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부임 뒤 정신교육에 힘을 쏟았다.

"어려움을 돌파해 이겨내야 한다고 자꾸 이야기했어요. 나고야 캠프에서 하루 40여분 이상 강의했지. 그 때 의식 개조하려 노력했어요. 내게 더 큰 잠재력은 없는지. 자기 스스로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노력해보라고 교육했어요."

2군 감독 시절 장문석 선수가 가장 먼저 도마 위에 올랐다. 2001년 포스트 시즌,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안경현 선수에게 홈런을 맞고 패전한 뒤 선수들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던 장 선수. 하지만 미안함만 있을 뿐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김 감독에게 가장 먼저 선수들 앞에서 혼이 났다.

"조인성이 2군 보내고 그런 것도 같은 이유예요. 자기가 원하는 쪽으로 공이 오지 않으면 투수에게 뭐라고 했거든. 근데 길거리 지나가다 어떤 사람이 발을 밟았을 때, 밟힌 사람이 오히려 `죄송합니다` 그러면 밟은 사람이 얼마나 미안하겠어요. 포수가 미안하고 하면 투수는 더 미안해하고, 그러면서 신뢰관계가 생기는 거지. 그게 믿음이에요. 포수를 믿어야 맘놓고 던지는 거죠. 캐처의 조건. 걔 그거 배웠어요.

김재현, 이병규, 유지현 마찬가지였어요. 나만 잘하면 되고 못해도 그만. 잘 안 된다고 방망이 부러뜨리고 그러면 나머지는 뭐가 되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그거를 알아야 했어요. 아마 애들 나 많이 미워했을 거예요."(웃음)

동시에 그는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려고 노력했다. 시즌 시작 전 모든 매체에서는 트윈스를 약체로 꼽았다. 하지만 김 감독은 오기가 생겼다.

"선수들에게 김성근이 힘으로 4강까지는 할 수 있다고 장담했어요. 다만 그 이상의 성적을 위해서는 나머지는 코치, 선수들 힘을 빌려야 할 수 있다고. 이런 건 나로서도 모험이었어요. 지금까지 혼자 해도 4강까지는 했는데 이건 새로운 트라이였어요. 하지만 모험하지 않으면 새로운 것은 없다. 나를 포함해 각자가 기술 한계에 도전하자. 체력이든 정신력이든 나아질 수 있을 거라고 말했어요."

김 감독의 마음을 선수들도 알았는지 조금씩 달라지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선수들의 `인내와 끈기`는 대단했고 결국 가을 잔치에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었다.

"그런 면에서 시즌 중반 4강에서 한번도 안 미끄러졌어요. 쭉 지켰죠. 바로 이 인내력이 달라진 트윈스의 모습이었어요. 더구나 서용빈, 김재현 나가면서 내가 노상 말하는 잠재력이 발휘 됐어요. 우리가 견뎌낸 거죠. 이기면서 선수와 팀 성장했어요. 이기는 맛, 이기는 방법을 알면서 소위 말해서 선수 스스로가 그 안에 뭘 해야 하는 거 느껴간 거지."

"내 야구는 관리야구가 아니다"

"혹사라뇨? 관점의 차이일 뿐이죠" 타이거즈 오봉옥 선수 인터뷰
레이더스(현 SK 와이번스) 시절 김성근 감독의 제자였던 타이거즈 오봉옥 선수는 `김 감독이 선수를 혹사시킨다`는 평가를 부정했다. 오히려 아무것도 몰랐던 자신에게 자신감을 불어준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 김성근 감독 선수 혹사시킨다는 말이 많다.
"혹사라고 생각 안 한다. 관점의 차이다. 선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다."

- 그럼 왜 오 선수는 김성근 감독이 떠난 뒤 부진했나.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랬다.
"하기 나름인데. 좀 그런 거 같다. 나 같은 경우 연봉문제도 있었다."

- 김 감독은 오 선수 본래 폼을 바꿔서 성적이 부진했다고 했는데.
"감독님이 지적하신 게 맞을 것이다."

- 김 감독 코치 스타일이 다른 분들의 것과 차이가 있다면
"운동 많이 한다. 체력이 없으면 무척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이는 성장 도움이 된다. 또 단점도 캐치하지만 장점 많이 살려준다."

- 오 선수가 본 김 감독에 대해 말해달라.
"아버지와 같은 분이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야구에 눈뜨게 해준 분이다. 잔정이 많다. 감독님은 겉으로는 강하신 것 같지만 내면으로는 여린 분이다. 아마 배웠던 선수들은 모두 아버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면 모두 그렇게 이야기한다. 운동은 혹독하게 시켜도 개개인한테 아픈데 사소한 거, 발이나 손 조금이라도 아프면 꼭 챙겨주신다. 또 운동말고는 전혀 터치 안 한다. 서로 믿고 하니까. 음.. 김현욱이 경우 허리 아파서.. 그만둘까 했을 때 감독님 만나서 좋은 성적 냈다."

- 혹시 김 감독 관련 잘못된 시각이 있다면?
"우리나라 현실적으로 한 팀에서 감독을 길어야 2, 3년 밖에 못한다. 일본이나 미국처럼 5년 , 10년 하지 못한다. 단기간 성적 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번트대기도 하고 그런 건데.. 팬들이 몰라주면 아쉽다. 이번 감독님 며칠 전에 해임됐다는 거 이해 안 된다." / 강이종행 - 그러면 지금까지 말씀하시는 것이 관리야구인가요?
"음.. 내 야구는 관리야구 아니에요. 나 스스로 틀에 박혀 지내는 게 싫어요. 시즌 중엔 선수단 미팅 거의 하지 않았어요. 코치들이 부담스러워 할까봐 경기 뒤 저녁식사도 같이 안 해요. 단, 시간 안에 돌아와라. 술을 마시든 놀든 시간 안에만 돌아오면 된다. 그리고 다음 경기에 지장 없게 해라. 그건 프로선수로서의 기본이라고 했죠. 1년 내내 움직이니까 구속하면 스트레스 받아 안돼요."

선수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간섭한다는 주위의 평가와는 다르게 김 감독은 선수들의 사생활 등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았다고 한다. 틀은 정해 놓지만 결국 프로 선수는 자신이 알아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자율과 관리는 다른 게 아니에요. 자율 안에 관리가 있고, 관리 안에 자율이 있는 거예요. 미국을 봐요. 규범이나 법이 있어 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하지 않나요. 풀어주는 것이 자율이 절대 아니에요. 자율은 무서운 것이지요. 관리는 감독이 하는 게 아니라 선수 스스로 하는 거예요."

대신 감독은 `아버지` 같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아버지는 선수들을 차별하면 안 되고, 그들의 바람막이 역할을 해야 한단다.

"선수가 두 명 있어요. 두 사람 다 함께 살아야 하죠. 그런 거 믿음으로 응답해야 해요. 절대 차별하면 안돼요. 하지만 아버지는 항상 손해 봅니다. 돈벌어 학교도 보내고 결혼도 시키고.. 감독도 그런 취급받아요."

- 히딩크 감독이 월드컵에서 학연 등에 관계없이 실력으로 선수들을 평가해 인정받았잖아요.
"그건 히딩크 문제가 아니에요. 지도자로서 기본이에요. 이 세계는 과거는 중요하지 않아요. 스타라고 특별히 봐주면 안돼요. 현재와 미래가 중요한 거죠. 결국 똑같이 선수들을 대해야 하는 거죠."

또한 아버지는 아이들이 불이익 당하지 않도록 바람막이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구단과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아버지가 바람막이 역할을 잘 해야 아이들이 믿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감독하면 구단하고 제일 먼저 맞서요. 동물의 왕국 봐요. 사자를 보면 왕끼리 싸우잖아요. 구단과 감독도 싸우는 거죠. `오야`로서 당연한 거예요. 그래야 선수들 안심하고 오야(리더)를 따라 오죠. 사실 내가 어느 팀이든 빨리 잘린 이유도 그런 것이다. 살아가는 방법으로는 무척 힘들어요."

김 감독은 결국 밑은 포용하되 이를 보호하기 위해 위와는 끊임없이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를 이해 못하는 구단은 김 감독을 건방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난 구단에 10원 더 달라고 한 적 없어요. 선수들에게 이거 해달라 저거 해달라 그러면 그랬지."

ⓒ SP 김진석 "4:0에서 번트? 승부는 살아있기 때문이다"

- 플레이오프 5차전 6:2 상황, 7회말 2사 1루에서 이상훈 투수 꼭 넣어야 했나요?
"그 때 점수 내줬으면 흐름이 넘어갔을 거예요. 그 다음에 쓸 피처가 갑갑하기도 했고. 그랬다면 이상훈이도 부담스러웠을 겁니다. 또 다음날 하루 쉬는 것까지 생각했어요."

- 시즌 중반 김 감독님에 반대했던 팬들이 말하길 4:0 상황에서 3번 타순인데 대타 세워 번트를 댄 것을 예로 들더라고요.
"우리 팀 상황을 보면 왜 번트를 대는지 알 거예요. 무사 주자 2루에서 삼진이나 내야 플라이로 죽으면 주자 못 가죠. 안정하게 가기 위해 번트를 대요. 그래서 3루로 가면 점수 뽑기 그만큼 쉬워지죠. 피처들의 수고가 덜하게 되는 거예요. 이 싸움을 사람들은 몰라요.

그래서 선수들에게 확인 사살해야 한다고 말해요. KS 6차전 김응룡 감독 게임 버리고 있었어요. 번트로 확인 사살했어야 했는데 실패했죠. 그게 결국 우리의 패배까지 연결됐고. 승부의 세계 이거 무서운 거예요.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투수 입장에서는 주자가 1루, 2루, 3루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긴장도가 달라지죠. 볼 배합도 달라지고. 그래서 번트 성공하면 점수 뽑을 확률이 그만큼 높아지는 거예요.

또 우리 팀으로 보면 투수를 소모하면 안돼요. 피처는 적게 쓰고 이기는 게 최고예요. 4, 5점 리드 할 때 번트 대는 거 고민하기도 하는데 쓸데없는 짓 아니에요. 왜냐면 6점 리드하면 마무리 쓸 필요 없지만 3점 차면 마무리 써야 해요. 그러니까 6점 리드하면 전력 보충이 될 것 아닌가요."

김성근 감독은 승부가 살아있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이 때문에 `확인 사살`이 필요하다는 것. 이를 위해 김 감독에게 필수적인 것이 바로 `데이터`다.

"데이터 야구는 때에 따라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해요. 살리기 위해서는 현실에 맞춰야 해요. 준비된 데이터와 경기 당일 우리 선수들의 움직임, 상대 선수들의 컨디션 등을 보고 잘 조화시켜야 해요. 이를 위해 `감`이라는 게 중요하죠."

김 감독은 데이터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열변을 토하며 하나하나 설명하기 시작했다.

ⓒ SP 김진석"매일 밤 새벽 3시까지 필요한 데이터를 모아요. 그리고 몇 번에 걸쳐 그걸 머릿속에 넣지요. 한 타자가 투수에게 1년 동안 10타수 4안타를 쳤다고 했을 때 4할 타자라고 해요. 하지만 안타 쳤을 때 타자와 투수의 컨디션은 어땠는지, 구질은 커브였는지, 직구였는지, 높은 볼이었는지, 낮은 볼이었는지, 잘 맞았는지에 따라 10타수 4안타는 무효화될 수 있어요. 그게 난센스죠. 그런 거를 모두 머릿속에 넣어야 해요. 그래서 야구 잘 하는 사람은 기억력이 좋아야 해요."

준비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이를 잘 활용하기 위해 경기 당일 뛰어난 선수들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야 한다.

"결국 관찰하는 눈이 필요해요. 시합 전 기자들과 앉아 이야기하면서 눈은 운동장 연습하는 선수들을 봐요. 아마 나랑 같이 이야기한 기자들 기분 나빴을 거야. 눈을 안 보니까. 상대 선수 건 우리 선수 건 놓치면 절대로 안돼요. 그거 기억하려면 술 먹고 그러면 안되죠. 밤새 그것에 파묻혀야 해요. 그래서 시즌 중엔 술 안 먹어. 그래서 사람들은 김성근이가 밥 안 산다, 술 안 산다고 욕해요. 좀팽이라고."(웃음)

김성근 식 데이터 야구의 결정체는 올 시즌 기아와의 플레이오프.
"첫날 기아 배팅 하는 거 보니까 모두 밀어 치는 연습하고 있었어요. 순간적으로 보고 수비 위치 이동을 시켰어요. 또 김경언이가 우리에게 4, 5할 쳤거든. 직구를 잘 쳤고 커브도 위험했어. 그런데 타구는 대부분 1, 2루와 우중간 쪽으로 흐르더라고. 그래서 병규를 우중간에 배치했지. 그래서 결정적일 때 슬라이딩으로 잡은 거야. 장성호도 그랬고. 야구 무섭다는 거예요. 벤치에서 볼 던지라고 하고 수비 위치 조종해서 계산대로 된 것이 기아 전이었어."

- 혹시 데이터 야구가 맞지 않았던 기억은?
"코리안 시리즈 마지막 마해영이 홈런. 언제나 잡아당기는 선수인데 먹혀서 밀어 쳐서 홈런이 나왔죠. 그래서 데이터 야구를 맹신할 수 없어요."

"선수 혹사시키지 않았다"

이밖에 김성근 감독 야구를 일컫는 표현들이 있다. `투수를 혹사시켜 선수 생명을 끝나게 한다. 선수들을 믿지 않는다, 모든 걸 혼자서 판단한다`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김 감독은 하나하나 반박했다.

ⓒ SP 김진석먼저 그는 투수를 혹사시켰다는 말에 대해 전적으로 부정했다. 오히려 `혹사`라는 표현은 매스컴 용어라며 무조건적인 사용에 반기를 들었다.

"미국과 일본에서 시즌 동안 200이닝 이상 던지면 혹사라고 해요. 내 선수 중 200이닝 이상 던지는 선수 누구였는지 봐요. 내가 감독 그만두고 다친 선수들 보면 두 가지 이유로 그렇게 됐어요. 하나는 가을, 겨울 동안 충분히 어깨를 보호했어야 해요. 바뀐 코칭스태프가 그런걸 생각했어야 하는데. 태평양 때 박정현이. 동계 연습 때 볼 30, 40개 던지다가 삼성과 연습게임에서 추운데도 7회까지 던지게 했어요. 당연히 다칠 수밖에. 최창호, 정명원이도 마찬가지예요. 신윤호도 작년 야구 월드컵에 나가지 말았어야 했어요.

또 하나는 투구폼을 바꿔서 실패한 케이스예요. 트윈스 최원호, 어깨 수술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제 권유로 폼 바꿔서 대표적으로 아픈 곳 없앤 성공한 경우죠. 폼이 나쁘면 특정한 부분에 무리가 올 수 있어요. 선수마다 무리하지 않고 던질 수 있는 폼을 만들어야 해요. 오봉욱이 자기 폼 있을 때 잘 던졌는데 코치가 폼 바꾸고 부진했죠. 그런데 다시 자기 폼 찾아서 성공했어요."

`선수들을 믿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도 그는 아니라고 말했다.

"믿는다, 안 믿는다는 거는 옆에서 보는 개념이에요. 선수를 안 믿으면 어떻게 해요. 원 포인트 릴리프도 그 나름의 임무가 있는 거 아니겠어요. 믿으니까 기용하지. 그건 교체하는 타이밍, 피처 스위치의 하나의 방법일 뿐이에요. 사실 예전엔 세이브 투수, 대주자, 대수비, 왼손 투수에 오른손 전문 대타 등이 전혀 없었죠. 그거 내가 만들었어요. 지금은 다 그렇게 쓰고 있잖아요. 이겨야 하는 전재 조건에서 나온 하나의 방법이죠."

`혼자 하려고 한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인정했다. 하지만 트윈스에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예전엔 내 몸이 무기였어요. 혼자 한다기 보다 예전엔 나보다 (야구에)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사람이 없었어. 쌍방울 때 자정에 시작해서 해 뜨는 거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그러면 `아! 밝아졌구나`하고 아침 먹고 4시간 정도 잤죠.

하지만 트윈스에 와서는 `내걸 뺏어가라`라고 말했어요. 트윈스 코치들 올 해 공부 많이 했을 거예요. 올해는 연습 계획부터 다 맡겼어요. 그래서 나로서는 모험이라는 거였어요. 불안하기도 했고."(웃음) "지금 생각해보면 팀 개선, 의식구조 개선, 코치 육성 다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김성근 감독은 우승은 못했지만 올 시즌을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올 시즌을 바탕으로 내년엔 한번 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 SP 김진석"올 시즌 특히 포스트 시즌 거치면서 선수들이 어른스런 야구에 눈을 떴어요. 두 다리 땅에 딱 붙이고 떡 허니 상황보고 하는 게 어른야구에요. 그래서 2003년 트윈스 야구는 전략으로 이기는 야구를 할 단계였죠. 팀 힘은 약하지만 가을 해보니까 전략 가지고 할 만 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2003년 전략야구를 해야 하니까 코치가 더 필요했던 거예요. 그런데 견해차이가 있었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것은 `트윈스 야구가 어떻게 되는가`에 주목하는데 구단은 `김성근이 야구가 어떻게 되어가나`만 봤죠. 내 중심은 트윈스인데 구단은 나만 봤어요.

트윈스의 히트(안타)는 많이 늘었어요. 야구 묘미는 히트치고 스틸하고.. 그런 가운데서 계속 점수 내고. `새로운 야구`를 한 거에요. 뭐랄까 세련되고 현명한 야구를 했다고 하면 될 거에요"

- 그러면 올 시즌 트윈스 야구는 `김성근식 새로운 바람 야구`였겠네요.
"그렇죠."

한국 시리즈에서의 아쉬운 패배 뒤, 서울로 올라오는 차안에서도 그는 맥주를 마시며 내년 시즌을 계획했다. 그 날 집에 도착해서 또 새벽 3시까지 기록지를 봤다. 식구들은 이런 김 감독에게 "오늘까지 이래야 하냐"며 투덜거렸다고 한다. 하지만 김 감독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야구`였기 때문이다.

김 감독은 스스로 작은 찻잔 혹은 들국화라고 표현하며 `이류`임을 자처한다. 크고 작은 두 찻잔이 선수, 팀의 능력이라면 자신은 큰잔을 지닌 스타보다 작은 잔의 선수 혹은 팀을 최대한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 소명이라고. 또 거칠었던 과거를 비유해 스스로 `들국화`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화려한 `장미`는 라이온스 김응룡 감독. 둘은 다르지만 세상엔 두 존재가 다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만신창이었던 팀을 좋은 성적을 내게 했던 그의 바탕엔 작은 찻잔을 가진 선수들에 대한 애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김 감독이 맡았던 프로 팀은 모두 5개, 그 중 OB 베어스, 쌍방울 레이더스, 태평양 돌핀스, 트윈스 등 4개팀은 최하위권으로 평가됐으나 모두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하지만 정작 우승은 한번도 일궈내지 못했다.)

이전까지 `이류`를 자처한 자신을 `우승 한번도 못한 감독`으로 치부하며 알아주지 않던 분위기에서 이번엔 평가를 받는 것 같아 다행이라는 김성근 감독. "나를 응원해준 팬들에게 너무 고마워요. 이번 12일 쌍방울 있었던 제자들과 팬들이 회갑 해준다는 것도 고맙고요."

이야기를 마친 뒤 그가 이야기 한 고마운 야구, 아버지, 오야, 과정, 작은 찻잔, 들국화... 등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리고 그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이를 쉬 이해하긴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마찬가지겠지만 그는 말을 하기 보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걸 우선으로 했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 SP 김진석이제 그는 다시 야인으로 돌아갔다. 어딘가에 있을 작은 찻잔들을 찾는 들국화가 되어.

"작은 잔을 가진 사람들은 도처에 있어요. 중학교 선수들이 될 수도 있고 고등학교 선수들이 될 수도 있죠. 이 선수들을 데리고 1등을 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우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나타낼 수 있으면 그만이죠. 그 때까지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예요. 내가 프로 감독도 했다 아마 야구에 가기도 하는 이유죠. 그런 면에서 난 지조가 없어요. 프로, 아마 가리지 않고 부르면 가니까요. "

김성근 감독의 하루일과
▲ 지난달 22일 잠실에서 열린 준 플레이오프 2차전. 기자들을 뒤로하고 걸어나가는 김성근 감독
KBS 하일성 해설위원이 "김성근 감독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열심히 연구하는 감독"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을 정도로 김 감독은 야구에 파묻혀 산다. 트윈스 시절 그의 하루일과를 보면 이런 그의 모습이 잘 드러난다.

홈 경기의 경우, 경기가 끝나면 샤워 등 정리를 하고 웬만하면 바로 집에 들어간다는 김 감독.
"집에 가서 밥먹고 한시간 가량 일기를 쓴다. 그리고 난 뒤 기록과의 싸움이다. 우리 선수들과 상대 선수들의 내용을 다 보는데, 빨리 끝나야 2시 반에서 3시다. 기록은 선수별 몇 타수 몇 안타 등 기본적인 것과 안타를 쳤으면 몇 구에 어느 구질의 공을 어느 방향으로 쳤다는 등 구체적인 것들도 섞여 있다."

새벽 3시경에야 잠이 든다는 김 감독은 "누우면 그로키 상태다. 나무토막이 된다"며 "뒷골이 `띵`하면서 바로 잔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10시 경 기상해서 2시간 가량 운동을 한다. 주로 워킹(산책)을 하고.. 한 5km 정도 한다. 워킹을 하면 머리가 맑아져요. 그리고 복근운동과 푸시업을 한다. 그러면 2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샤워를 하고 그제야 아침밥을 먹는다."

아침을 먹고 밤에 뽑은 데이터를 본다고. 꼼꼼히 살펴본 뒤 오더를 짠다. "이 때는 상대 피처의 과거 데이터를 참고한다."

"그리고 운동장으로 가서 우리 선수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운동하는 모습을 보며 컨디션 등을 살핀다. 그 뒤 최종 오더를 결정한다. 그러다 보면 기자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상대편 선수들의 컨디션을 살핀다. 기자들과 얘기할 때는 그간의 긴장을 잠시나마 가라앉힌다. 경기 시작 15분 전, 감독실에서 마지막으로 데이터를 보고 덕아웃으로 들어간다."

김 감독은 애국가 제창할 때 중요한 의식을 치른다. 일종의 정신 집중력 훈련.
"그 때 국기 게양대를 `떡` 본다. 집중력을 연습하는 것이다. 뚫어지게 게양대를 보다보면 봉만 보이고 태극기, KBO 깃발들이 안 보인다. 다 된 것이다. 그러면 피처들의 미세한 손동작까지 잘 보인다. 기하고 비슷하다." / 강이종행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www.sple.com)에서 제공했습니다. 2002-12-10 09:37 ⓒ 2007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스포츠피플(www.sple.com)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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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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