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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보며 이명박 정부 정책을 떠올리다

<에반게리온: 서>에 나오는 '사도'와 닮은 이명박 정부

08.01.28 11:42최종업데이트08.01.28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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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재미없었다. 영화 속 주인공 대사를 내가 대신 읊조리고 싶을 정도였다.

 

"내가 대체 왜 여기 있는 거지?"

 

그 너무도 재미없던 영화는 바로 <에반게리온: 서>(이하 <에반게리온>)였다. <에반게리온>을 TV 시리즈물로 접하지 않은 나도 쉽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부터가 애초에 잘못이었다. <에반게리온>을 처음 접하는 내게는 도통 무슨 내용인지 따라가기가 힘들었다.

 

'사도'라는 존재는 무엇 때문에 그토록 인류를 공격하는 것이며, 주인공인 신지가 그 사도를 막을 로봇(에반게리온을 처음 본 나로서는 로봇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을 이해해주기 바란다)에 타는 이유 역시 잘 공감이 가지 않았다. 급기야 꾸벅꾸벅 졸기까지 했다. 그리고 고대하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본래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앉아 있곤 하지만 지루함에 빨리 벗어나고 싶어 재빨리 나갈 준비를 했다. 그래서 재빨리 옷을 입고 상영관을 나서려는 순간 무거운 침묵이 나를 엄습해왔다.

 

▲ 사도와 싸우는 신지 강력한 적 사도와 싸우는 신지를 보면서 이명박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떠올랐다. ⓒ 태원엔터테인먼트

다른 영화 관객들과 달리 <에반게리온>를 보러 온 관객들은 모두 자기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는 거 아닌가. 다른 영화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자마자, 나가는 이들이 99%인데 유독 이 영화 관객들은 제자리에서 일어설 줄을 몰랐다.

 

정말 재빨리 상영관을 나서고 싶었지만 다른 관객들의 알 수 없는 정신적 힘에 눌려 주섬주섬 옷을 천천히 챙겨 입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나가주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그러나 엔딩 크레딧이 오르기 직전 나갔던 한 명의 관객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영화도 재미없어 견딜 수 없었는데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 노래 하나 듣자고 더 견딜 수는 없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맨 마지막에 예고편이 나온다고 한다). 결국 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을 등 뒤로 그대로 받아내며 다른 관객보다 앞서 상영관 문을 나섰다.

 

이명박 정부 사도와 닮아잖아

 

영화를 보고 글로써 풀어내지 않으면 답답한 지라 <에반게리온>에 대해서도 글을 쓰고 싶었으나 쓸 수가 없었다. 재미도 감동도 느끼지 못했는데 무슨 염치로 글을 쓴단 말인가. 그렇게 <에반게리온>에 대해 글쓰기를 포기하려고 할 때 새로 들어서게 될 이명박 정부가 '영어몰입교육을 하겠다'는 발표를 접했다. 바로 이 발표 때문에 <에반게리온>에 대해 어떤 글도 쓰지 않으려는 마음이 바뀌었다.

 

그 발표로 인해 영화를 보는 동안 한 번도 감정 이입을 할 수 없었던 신지에게 감정이입이 단 번에 되었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인 신지는 처음에는 아버지의 명령 때문에 그 다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로봇에 탑승하는 등 로봇을 한 번 탈 때마다 긴 시간의 고민을 한 후 탄다.

 

그러나 그런 고민은 로봇을 타는 순간 한순간에 잊혀진다. 왜냐하면 그가 로봇을 타는 순간만큼은 다른 생각을 할 틈도 없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강력한 적 '사도'를 어떻게든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인류의 적으로 표현되는 '사도'를 보는 순간 곧 들어서게 될 '이명박 정부'가 떠올랐다.

 

▲ 사도 인간 세계에 들어오는 순간 반드시 막아야 한다. ⓒ 태원엔터테인먼트

물론 난 이분법적으로 이명박 정부 정책이 악이고, 그에 반대하는 사람이 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에반게리온>에 계속해 등장하는 강력한 '사도'들을 보면서 이명박 정부가 끊임없이 내놓는 정책들이 떠올랐다. <에바게리온>에 관한 다른 글을 보니 어쩌면 인류의 적인 '사도'를 없애는 것보다 인류가 더 빨리 사라져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전쟁', '환경파괴' 등 정말 지구 평화를 위해 없어져야 할 존재는 인류일지도 모른다. 전쟁으로 서로 죽이고 환경을 파괴하여 다른 종족들이 점점 사라지게 하는 존재이기에 객관적 시각에서 보자면 지구의 멸망을 가장 앞당길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으니까.

 

그처럼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이 어쩌면 우리 국가에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책이 될지도 모른다. 오히려 그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정책을 열렬히 반대했던 나 같은 사람들이 훗날 역사 교과서에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고 기록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훗날 역사 평가가 어떠하든 분명한 것은 모든 문제는 보는 관점과 가치관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에반게리온>에 나오는 '사도'랑 닮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다양한 목소리가 있음에도 다른 선택의 길을 주는데 인색해보이기 때문이었다.

 

<에반게리온>에서 사도가 일단 쳐들오면 인간들은 일단 막아야만 한다. 막지 않으면 자신들이 사는 터전이 망가지는데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여력이 없다. 대화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작정 인류가 사는 공간을 공격부터 하는 '사도'를 막자면 어떻게든 물리치고 봐야 한다.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을 보는 내 심정이 딱 그렇다. <100분 토론>에서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대운하'에 관한 토론회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한 시민 논객이 대운하를 찬성하는 패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이명박 정부가 내년부터 대운하 공사를 추진하실 거라고 했는데, 그렇게 시작하는 날을 못 박아 놓는다는 얘기는 어떤 반대 얘기가 있든 그때가 되면 하시겠다는 말씀 아닌가요.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부터 하시는 게 낫지 않습니까?"

 

▲ 공격당하는 사도 대화의 여지는 없다. 일단 사도가 들어오면 막아야만 살 수 있다. ⓒ 태원엔터테인먼트

온갖 자료와 논리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반박해도 결국은 제대로 들어주지 않을 것이라는 그런 비판과 다소간의 체념이 묻어나는 질문이었다. 이렇게 되면 반대하는 입장에서도 더욱더 강경하게 반대할 수밖에 없다.

 

사실 신지가 로봇에 타기 전에 한참을 고민하듯, 한때나마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 청년 실업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믿고 지지했던 나였기에 이명박 정부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로봇에 올라타기가 망설여지기는 했다.

 

그렇지만 신지가 결국은 로봇에 타기로 결심하고 탄 이상 반드시 '사도'를 물리쳐야 하는 것처럼, 이명박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영어몰입교육 방안'을 보고서는 반드시 이 정책을 백지화시켜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지금껏 보았던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도 하지 않은 이명박 정부가 반대 의견을 충분히 잘 종합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신지가 '사도'를 물리쳐야 하는 것처럼 일단은 나도 그 정책이 섣불리 시행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막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 사도와 싸우는 신지 사도와 싸울 결심을 하기까지는 꽤 많은 고민을 하지만 일단 싸우기로 결정하면 막는데 정신이 없다. ⓒ 태원엔터테인먼트

더 우울한 것은  '영어몰입교육'을 전면 재검토하는 성과를 얻더라도 <에반게리온>에서 적군으로 등장하는 '사도'가 하나가 사라지면 또 다시 하나가 오는 것처럼 이명박 정부가 내놓는 정책들도 '사도'들처럼 계속해서 밀려 올 것이고, 이명박 정부와 보는 관점이 많이 다른 나로서는 어떻게든 말리고 싶은 정책들이 많을 것이라는 점이다(대운하, 대북 정책 등).

 

이러다 신지가 '사도'한테 계속해 당하기만 해 결국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폭주하는 것처럼 나도 제발 시행되지 않았으면 하는 정책들이 밀려들어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폭주할까 두렵다.

 

그리고 우습게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보면서 자기까지 했던 <에반게리온> 후속편을 기다리고 있다. 그것을 보면 조금이라도 이 답답한 마음을 덜어낼 방법을 알까 싶기에. 물론 그전에 이명박 정부 정책이 '사도'와 다른 모습으로 내 눈에 보이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2008.01.28 11:42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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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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