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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성폭력인가요?"... 반문하는 가해자

[인터뷰] 정현숙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 겸 대한체육회 선수보호위원회 위원장 ①

08.02.29 15:48최종업데이트08.02.29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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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말 심각한 문제다." 정현숙 대한체육회 선수보호위원회 위원장은 이번 일을 정말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고 해결책 마련을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 이호영

 

11일 KBS 1TV <시사기획 쌈>의 보도로 스포츠계 성폭력 문제가 불거지면서 관계당국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지난 18일 문화체육관광부, 교육인적자원부, 대한체육회는 일제히 '스포츠 성폭력 근절 대책'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 성폭력 지도자 영구제명 조치 ▲ 선수 접촉·면담 가이드라인 수립 ▲ 체육계 통합 성폭력 신고센터 설치 ▲ 여성지도자 할당제 도입 ▲ 상시 합숙훈련 개선 ▲ 체육지도자 자격 강화 ▲ 체육지도자 아카데미 운영 등 구체적인 방안이 시행될 예정이다.

 

3개 기관 중 이 문제에 가장 예민한 곳은 단연 대한체육회다. 지난 22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대한체육회 산하 선수보호위원회(이하 선수보호위) 정현숙(56) 위원장을 만나고 29일 경과 확인을 위한 전화 인터뷰를 더했다.

 

정 위원장은 국가대표 탁구선수 출신으로 현재 대한올림픽위원회(KOC) 부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지난 2006년 열린 제15회 도하아시안게임 선수단 단장으로 '금녀의 벽'을 허문 주인공이기도 하다.

 

"언론의 선정적 접근 말아달라"

 

언론에 성폭력 문제가 드러나기 전 대한체육회도 비슷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었다. 다만 수면 위로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정현숙 위원장은 보도를 접할 당시 심정을 "솔직히 말해 올 것이 왔다"는 한 마디로 요약했다.

 

이어 그는 "사회 전반에 걸쳐 성폭력 문제가 예전과 같지 않다"면서 이 문제가 공론화 된 것도 최근 변화된 사회 분위기의 영향으로 내다봤다.

 

"이런 문제를 쉬쉬하면서 드러내고 해결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는 선수 보호 때문이다. 만약 해결을 하려고 나선다면 선수생활을 못하고 은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고소를 하고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선수들이 2중, 3중으로 고통을 받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한 후배 선수는 '죽고 싶다'는 표현까지 했었다.

 

하지만 이제 덮어두면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쪽으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 과거에는 이야기를 해도 먹혀들어가지 않았는데 이제는 웬만한 부처는 대부분 심각성을 깨닫고 있다. 이번에 좋은 기회를 줬음에도 방안을 못 만들면 대한체육회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덧붙여 정 위원장은 언론의 관심이 자칫 선정적 보도로 이어질까 크게 우려했다. 특히 성폭력은 성추행을 포함한 개념임을 강조했다.

 

"이번 일로 스포츠인 모두가 성폭력의 가해자, 또는 피해자로 비쳐지지는 않을까 걱정된다.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다. 열심히 건전하게 지도하는 지도자들도 많으며 성폭력을 경험하지 않은 선수들도 있다.

 

또한 성폭력이라면 가장 먼저 강간을 떠올리는데 강간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성폭력에는 성희롱, 성추행과 같은 개념도 포함되어 있다. 마치 여성 선수들 대부분이 강간의 피해자인 것처럼 비춰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데 이는 사실과 크게 다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성폭력 근절, 의지는 '확고'

 

▲ 대한체육회 체육진흥본부 경기운영팀 경기운영팀은 대책 마련에 고심하는 부서 중 하나다. ⓒ 이호영

대한체육회의 성폭력 문제 해결 의지는 비교적 확고해 보였다.

 

대책 마련을 위한 사전 회의를 했던 지난 15일, 대한체육회 체육진흥본부 사무실은 대책 마련으로 매우 분주했다. 회의가 끝나도 결과는 얻어갈 수 없었다. 아직 다듬어야 할 사항이 많다는 게 그 이유였다.

 

당시 김칠봉 경기운영팀 차장은 "대책 수립을 위한 사전 모임을 하고 있다. 일선 실무자, 여성 지도자도 나서서 종합 대책을 수립하는 자리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김재원 경기운영팀 팀장도 "아직 외부에 공개될 구체적인 내용이 결정된 것은 아니어서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다.

 

이후 18일 대한체육회는 상당히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했다. 물론 이와 관련해 한 관계자는 "미봉책이 아니냐"고 혹평을 내놓기도 했다.

 

정현숙 위원장도 이 문제를 두고 "단 한 번의 회의서 나온 것이므로 미흡한 것이 당연하다"고 운을 뗐다. 이어 그는 "일시적으로 해결할 문제는 아니다"면서 "이번 대책으로 끝날 것이 아니니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정 위원장이 몸담고 있는 대한체육회 산하 선수보호위는 2005년 7월 설치됐다. 원래 선수보호위는 선수 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구다. 하지만 지난해 프로농구 성폭력 파문으로 인해 규정이 개정되어 성폭력도 다루고 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정 위원장은 "선수보호위가 법적으로 권한 행사를 하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인권위와 협력하거나 소송 결과가 미흡할 경우 직권조사를 통해 처벌이 가능하다. 사안에 따라서 5년, 10년, 영구제명의 '삼진아웃제'를 도입중이며 5년 이하의 처벌은 상벌위원회 규정을 따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선수보호위는 지난 20일 장하진 여성부 장관을 비롯해 관계자들과 장시간 회의를 거치면서 대책 마련에 고심했다. 정 위원장은 이 자리서 "스포츠의 특수성를 설명했고 성폭력 처벌, 조사과정의 사례들을 들으면서 많은 참고가 됐다"며 "여성부와 긴밀한 협조를 부탁했다"고 말했다. 앞으로도 선수보호위는 시민단체를 포함한 관련 기관들과 대화의 창구를 열어놓겠다는 방침이다.

 

가해자들이 '이런 것도 성폭력이 되냐'고 반문하는 경우 있어

 

정 위원장은 성폭력이 일어나는 가장 큰 원인으로 가해자의 무지를 꼽았다.

 

"성폭력 문제를 접하다 보면 가해자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지도자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것도 성폭력이 되냐'고 반문하는 경우도 있다. 어린 선수들과 청소년, 성인 선수들을 지도하는 방법은 분명 달라져야 하는데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게 큰 문제다."

 

또한 피해자의 무감각도 한 원인으로 지목했다. 정 위원장은 "운동의 특성상 자세를 바로 잡기 위해 신체접촉이 많은 편이다. 하지만 선수는 지도자가 지도 외에 다른 감정을 싣는 지 금방 알아챌 수 있다"며 "같은 접촉이라도 느낌이 분명히 다르다. 선수들도 불쾌하면 표현을 하고 자기 방어를 할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육 외에도 해결 방법은 다각도로 검토되고 있다. 정 위원장은 "선수보호위가 성폭력에 관한 책자를 주기적으로 전달해 지도자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도록 할 것"이라며 성폭력 가해자 영구제명에 대해서도 "보다 확고하게 시행할 방침"이라고 힘줘 말했다.

 

일선 지도자들의 열악한 상황도 개선해야 할 부분으로 언급된다. 지금 많은 스포츠 지도자들은 학교에서 돈을 보조해야 하고 학부모들도 동참해야 생활을 유지할 수 있다. 따라서 선수보호위는 지도자를 대상으로 교육을 시키되 처우를 개선하는 방안을 관계당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선수보호위는 시민단체와 연계해 성폭력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여성 지도자 20% 할당제, 학생 선수 학습권 보장 등을 지속적으로 시행해 나갈 예정이다. 정 위원장은 "지금은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장기적으로 끈기 있게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언론의 감시와 국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바란다"고 강조했다.

 

옛말에 '첫 술에 배부를 리 없다'고 했다. 아직은 대한체육회의 '자정능력'에 기대를 걸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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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15:48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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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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