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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루한 꿈을 꾸는 영화

[리뷰] 영화 <실크(Silk)>를 보고

08.04.04 10:45최종업데이트08.04.04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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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silk의 포스트 ⓒ 오윤주


아직도 서양인들에게 있어 동양은 '신비'의 이미지인 것일까?

얼마 전 티비 프로그램 '미수다'에서 어느 한 출연자가 '서양 남자들은 동양여자를 쉽게 생각한다'고 하는 말을 들었다. 지고 지순한 일편단심의 여인으로만 생각할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동서양의 교류가 이제는 흔해지다 보니 생기는 변화라고 생각했다. 그러데 이 영화 'Silk'는 여전히 동양에 대해 과거의 이미지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 어쩌면, 일본과 프랑스의 교류가 처음 시작될 무렵을 배경으로 한 영화로서 현재가 아닌 당시의 이미지를 재현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영화의 시선은 너무 꿈에 사로잡혀 있다.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흐르는 단조롭고 느린 움직임의 멜로디가 역동적인 사건의 흐름이나 흥미로운 주인공의 대사가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꿈 속의 이야기 같은 느낌을 주려 애쓴 흔적처럼 보인다. 그래서 주인공으로 '마이클 피트'를 선택한 것일까. 그의 여성적인 외모가 풍기는 오묘한 느낌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누에씨를 찾아 일본으로 긴 여행을 떠난다. ⓒ 오윤주


주인공은 '누에씨'를 프랑스로 들여오기 위해 일본으로 여행을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한 동양 여자를 잊지 못한다.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키이라 나이틀리)가 있는데도 말이다. 전체적인 스토리는 이것이 거의 전부이다. 마지막에 '심금을 울릴 듯한' 반전 아닌 반전이 있긴 하다. 그러나 설명을 최대한 줄인 '이미지 부각'의 화면을 계속 보고 있노라니 그 라스트 마저 흐지부지 해 보일 뿐이다.

비밀스럽고 강인한 일본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 오윤주

일본은 신비하고도 무서운 이미지로 묘사된다. 1800년대 에도 막부 후기의 혼란기가 배경이 되어, 다가가기 어려운 비밀스러움을 더욱 부각시켜 준다. 주인공이 마음을 빼앗긴 일본 여자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일본식 다도의 모습이나 주인공의 목욕을 도와주는 모습은 그 안으로 들어가보고 싶은 유혹을 만든다. 그러나 그녀는 어느 힘있는 남자에게 속해 있어 다가갈 수 없다. 이 모든 내용은 마치 '슬로우모션'으로 플레이 한것 처럼 아주 느리게 진행된다. 약 2초 간격으로 멜로디가 움직이는 배경 음악과 함께.

요즘 지나치게 성행하는 '이미지 마케팅' 에 질린 탓일까. 이렇듯 이상 야릇한 분위기로만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영화의 흐름에, 이런 말을 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네가 '모를 것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을 난 이미 알고 있다" 라고. 서양 사람은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네가 동양인이기 때문이라고. 그러나 동서양이 서로에게 느끼는 신비함 자체가 곧 사랑으로 묘사되는 이 영화의 이야기는 분명 설득력이 부족하다.

신비하게 등장하는 일본 여인 ⓒ 오윤주


이 영화의 히든카드는 '키이라 나이틀리'에게 있다. 영화가 2/3정도 지날 때까지 화면 속 그녀를 보면 정말 의외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젊은 여배우 중에서도 앞선 인기를 얻고 있는 그녀가, 더구나 여성적인 카리스마를 풍기는 비교적 강한 이미지의 그녀가 왜 그런 역할을 맡았을까 생각했다. 그녀가 맡은 '헬렌'이라는 여성은 늘 남편을 변함없이 기다리는 매우 여성적인 캐릭터이다. 게다가 주인공이 이끌어가는 이야기의 '바깥'에서 애처롭게 존재하는 인물이어서 그녀의 선택에 다소 의문을 품게 된다. 그러나 이야기의 마지막에 가면 '헬렌'이 '반전'처럼 수면 위로 떠오른다. 그 장면에서 왜 키이라 나이틀리가 '헬렌'의 역할을 맡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남편을 변함없이 기다리고 언제나 사랑하는 헬렌 ⓒ 오윤주


이 영화는 '알렉산드로 바리코' 라는 작가의 원작을 각색한 작품이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니 많은 관객들을 감동 시켰던  영화 '피아니스트의 전설'의 원작자임을 알 수 있었다. 원작은 더 괜찮은 작품 일지도 모르겠다. 원작을 각색하여 영화로 제작된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제작자나 감독, 출연 배우들 모두 원작을 읽고 받은 감동 때문에 영화에 참여하게 되지 않았을까.

그러나 영화 속의 모습은 조금 실망스럽다. 강약 없는 배경 음악 처럼 감동 마저 흐릿하게 만든다. 주인공과 일본 여인 사이의 사랑에 좀 더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야 했다. 아무리 첫눈에 반한들 그저 '한눈에 반했다'라고만 표현 한다면 세상 어느 누가 그들의 사랑에 공감할 수 있겠는가.

일본 여인이 아무 설명없이 주인공에게 편지를 건네주는 장면 ⓒ 오윤주


이제 동서양의 문화 교류는 '동서양' 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빈번하다. 아예 서로 섞여 살기도 한다. 새로운 문화에 대한 신기함과 경이로움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사라져서도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제 서로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게 된 이 시점에서, 과거의 이미지에 고착되어 서로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어쩌면 '고정관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서로를 이해하거나 보완할 수 있도록 표현하는 작품이 이제는 필요한것 같다.

영화 SILK 실크 일본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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