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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죽는 게 당연한가요?

죽음을 위한 꿈, 영화 <버킷 리스트>

08.04.06 14:49최종업데이트08.04.0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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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길어야 1년의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에드워드 ⓒ 오윤주

“자네는 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시나?”

“저희 아버지요? 올해 일흔 되셨어요.”

“그래? 그럼 이제 그만 돌아가셔도 되겠다. 사실 만큼 사셨네. 아마 우리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 그 정도 되셨을 거다.”

 

몇 년 전 대학병원 의국에서 근무할 때 내가 상사로 모셔야 했던 분이 했던 말이다. 그는 지방 유명 대학병원의 의사이자 교수였다. 이제 그만 돌아가셔도 되겠다니, 난 순간 당황하여 할 말을 잃고 “돌아가시면 안되죠.” 라고 힘없이 말을 이었을 뿐이었다. 아무리 우리나라 의사가 부정적인 이미지를 던져주고 있다지만 남의 부모를 가리켜 이제 그만 죽어도 되겠다고 말을 하다니 복수를 못해준 게 그 이후로 한이 맺혔었다.

 

영화 <버킷 리스트>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에드워드’는 자신이 운영하는 병원 침대에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는다. 그는 힘없이 침대 한쪽으로 돌아 눕는다. 지난 날 ‘이제 그만 죽어도 되겠다’고 했던 그 의사의 말을 떠올리게 했던 장면이다.

 

극 중에서 에드워드의 나이는 66세. 요즘 시대에 그냥 ‘노인’이라고만 칭하기엔 젊은 나이이다. 그러나 손자도 있고 몸도 아프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한 것을 봤을 때 그를 칭할 수 있는 단어는 그나마 ‘노인’이 제일 적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노인’이 죽는 것은 당연한 것일까? 60대보다 많은 70대, 80대 노인이라면, 정말 의문 없이 당연한 것이 ‘노인의 죽음’일까? 젊은이들도 누구나 노인이 된다. 그들에게 지극히 당연하게 다가올 노년의 죽음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해주는 영화 <버킷 리스트>가 이번 주 4월 9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같은 병실을 쓰게 된 '에드워드'와 '카터' ⓒ 오윤주

영화의 주인공은 두 명의 병든, 시한부 인생의 노인들이다. ‘에드워드’는 유명 종합 병원을 여러 개 운영하고 있는 아주 성공한 사업가이다. ‘카터’는 아주 소박하게 살아온 자동차 엔지니어이다. ‘에드워드’는 돈이 많아 병실 안에서도 특별식을 먹지만 찾아오는 사람은 그의 비서 외에는 아무도 없다. ‘카터’는 특별한 음식도 많은 재산도 없지만 그의 아내가 매일 그를 보살펴 주고 자주 찾아오는 아들도 있다. 영화는 이렇게 상반된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생의 마지막 여행을 하는 모습을 그린다.

 

영어 속어 중에 'kick the bucket'이라는 말이 있는데 ‘죽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영화의 제목이 'Bucket list'인 이유는, 두 주인공이 ‘죽기 전에 해야 할 일 (bucket list)’이라는 제목의 리스트를 작성하여 그것을 하나씩 이뤄나가는 여행을 떠나기 때문이다. 고공낙하, 자동차 경주, 아프리카 여행 등을 하며 젊은 시절의 꿈을 이루고 잃어버렸던 마음의 공간을 채우며 죽음을 준비한다.

 

두 주인공의 만남 초반에 등장하는 '코피 루액' ⓒ 오윤주

이 영화에서 눈 여겨 봐야 할 것은 에드워드가 애지중지 하는 그의 기호 식품 ‘코피 루액’ 이다. 카터는 그것을 마셔본 적이 없다. 그저 인스턴트 커피만 즐길 뿐이다. 역사학 교수가 꿈이었으나 가족 부양의 책임에 떠밀려 꿈을 이루지 못한 카터는 모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박식하다.

 

그런 그가 여행 도중 에드워드에게 ‘코피 루액’의 진짜 모습, 즉 ‘원두를 먹은 고양이의 배설물’이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카터의 말에 둘은 박장대소를 한다. 아마도 이 장면이 이 영화의 베스트 신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표현할 수 없지만 은근하게 다가오는 인생의 어떤 의미를 그들의 웃음 속에서 느낄 수 있다. ‘코피 루액’은 그들의 다른 삶을 서로 ‘다를 바 없는’ 혹은 다 ‘똑같은’ 삶으로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동시에 누구의 인생이든 고귀하고 하찮을 것 없이, ‘같은 무게’로 ‘같은 가치’를 지닌다는 의미를 상징하는 듯하다.

 

'카터' 역은 '모건 프리만'이 맡았다. 책을 좋아하는 학구적인 모습으로 나온다. 반면에 '에드워드' 역의 '잭 니콜슨'은 그의 다른 영화에서 처럼 모험을 즐기는 모습이다. 두 배우 모두 기존의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 오윤주

영화 속에서 그들의 여행은 ‘판타지’스러운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돈 많은 에드워드 덕분에 개인용 비행기에서부터 시중 드는 사람, 물방울이 솟는 원형 욕조까지 소박한 사람들에겐 말 그대로 ‘꿈’ 같은 일을 카터는 경험한다. ‘좀 더 현실적일 필요가 있다’ 혹은 ‘너무 상투적인 스토리이다’라는 비판이 분명 나올 듯한 내용이긴 하다. 그러나 노인이라고 꿈이 없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꿈을 이루는 ‘노인’을 그렸다는 것만으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날 “너희 아버지는 이제 그만 돌아가셔도 되겠다”고 말한 그 의사가 이 영화를 본다면 두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자신의 목숨이 너무도 건강하게 붙어 있는 80대가 다가 왔을 때 그는 “이제 그만 죽으셔도 되겠네요”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살만큼 살았다는 이유로 노인들의 생명을 하찮게 대하는 것은 결국 자신을 향한 빈정거림이 되는 것을 왜 그는 똑똑한 ‘의사’이면서도 알지 못했을까.

 

두 주인공은 Bucket list 에 있는 것들을 이룰 때마다 하나씩 지워간다. ⓒ 오윤주

에드워드는 바로 ‘나’의 모습이다. 지난 날 그 의사는 노인이 무슨 꿈이며 여행이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훗날 나의 생명이 아슬하게 붙어있을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면 꿈 이상의 꿈을 꾼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힘 없이 한쪽으로 돌아 눕던 에드워드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영화 속 두 노인의 모습을 보면 내 미래에 다가올, 죽음이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노년의 시간을 몇 십 년 앞서서 느껴볼 수 있다.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하게 여겨질지, 지나온 내 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일지 정확하진 않지만 어렴풋이 알게 된다.

 

우리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당연하다. 안정적인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있는 요즘 저마다 노년을 준비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고 있다. 돈, 두 말 할 필요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돈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노년을 준비하고 싶다면 이 영화를 보는 것도 조금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당연히' 죽어야 하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인생의 가치, '나'의 가치를 느껴보는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는 것이, 아직 노인이 되지 않은 이들에게 필요할 것 같다.
2008.04.06 14:49 ⓒ 2008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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