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쏠 때 마다 골드 맞추던 선수들, 사람 맞아?

[체험] 국내 최대 아마추어 양궁 동호회 영학정 양궁장을 가다

08.08.23 18:28최종업데이트08.08.23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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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학정 양궁장. 5m부터 90m까지 쏠 수 있다. ⓒ 김동환


지난 14일 저녁 7시 10분경. 서울 지하철 수색역에 갑자기 "앗!" 하는 굵은 비명이 울려퍼졌다. 비명소리가 들리던 곳을 쳐다보니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모여있다. 이들은 박성현과 장쥐안쥐안의 올림픽 여자양궁 개인전 결승을 DMB휴대폰으로 보고 있었던 것. 지하철에 올라탄 직장인들은 비명을 지르지 않도록 손으로 입을 막고 온 몸으로 양궁 경기를 관람했다.

양궁이 한국인들의 관심을 끌게 된 것은 1984년 제23회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에서 서향순이 금메달을 차지하면서부터. 이후 양궁이 한국의 금메달 단골 종목이 되면서 올림픽 기간이 되면 양궁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크게 급증했다.

올해도 마찬가지. 베이징올림픽 양궁 종목에서 한국이 남여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에서 박성현과 박경모가 은메달을 따내자, 국내 최대 아마추어 양궁 동호회인 영학정 홈페이지의 '질문있습니다' 게시판은 일반인들의 질문으로 뜨거워졌다. 지난 2006년부터 운영된 게시판의 전체 게시물 134개 중 올해 8월 5일 이후의 게시물이 절반 정도. 거의 대부분이 양궁을 배우고 싶다는 일반인들의 질문이다.

양궁에 '양'자도 모르지만, 일단 가보자 

18파운드짜리 리커브. 왼쪽 팔에 부착된 것이 암가드. 활 앞쪽에 형광색 조준기가 붙어있다 ⓒ 김동환


TV에서 보던 것처럼 자신이 쏜 화살이 멀리 있는 과녁의 '골드'를 꿰뚫으면 어떤 기분일까. 올림픽 막바지인 지난 20일 오전 10시 30분, 기자는 양궁 체험을 위해 서울 목동 안양천 부근 영학정을 찾았다.

양궁장은 생각보다 넓었다. 영학정 양궁장의 사대(射臺) 길이는 약 30여m. 사대는 비와 햇빛을 피할 수 있게끔 지붕이 쳐져 있다. 과녁은 사대로부터 5m, 10m, 20m, 30m, 70m, 90m 위치에 각각 두개씩 놓여있었다.

양궁에서 화살을 정확하게 쏘기 위해 사용하는 장비는 많지만 초보자는 일단 양궁용 활과 화살만 있으면 양궁을 시작할 수 있다. 양궁은 자신의 팔과 어깨 길이에 따라 화살 길이를 정하고 화살 길이에 맞게 활 길이를 정하는 것이 정석. 그러나 보통 양궁에 처음 입문하는 초보자는 개인 신체지수에 정확하게 맞춘 활이 아니라 자신의 키만한 길이의 기성품을 사용하게 된다.

신장이 182㎝인 내가 사용한 활은 18파운드짜리 리커브. 약 30~40m까지 화살을 날려보낼 수 있다. 실제 양궁 선수들이 사용하는 금속 재질의 메탈리커브는 300만원 이상도 하지만 보통 성인들이 사용하는 리커브는 30만원, 어린이용 리커브는 20만원 안쪽에서 구입할 수 있다.

손가락은 아파오고 왼팔은 부들부들

18파운드짜리 리커브. 활의 길이는 약 180cm. 활은 항상 발등 위에 둔다. ⓒ 김동환

어느 운동이나 그렇지만 초보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세. 양궁이라고 다를 리 없다.

우선 왼팔이 활줄에 쓸리지 않게 보호하는 암가드를 찬다. 사대에 오르면 발을 어깨 넓이만큼 십일(11)자로 벌리고 무게 중심을 양발에 고르게 실은 뒤 발끝과 골드 라인을 맞춘다.

활을 쏘지 않을 때는 항상 활을 발등 위에 놓는 것이 양궁의 매너. 이외 자세는 주변 사람들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자세를 잡고 활을 들어 오른손으로 활줄을 당겨보았다. 활 자체는 매우 가볍다. 당겼을 때 느껴지는 활줄의 장력은 6~7㎏ 정도. 보통 오른손잡이의 경우, 왼팔이 오른팔보다 약하기 때문에 활줄을 턱밑까지 당기면 상체가 전체적으로 뒤로 꺾이고 균형이 흔들린다고 한다.

때문에 정확한 조준과 발사를 위해서는 왼팔의 힘이 중요하다고. '어젯밤에 팔굽혀펴기라도 하고 올 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당 무게의 아령을 왼손으로 잡고 어깨높이에 맞춰 수평으로 들었을 때 팔이 전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라면 18파운드 리커브를 자유롭게 조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활줄을 당겨본 후에는 당긴 활줄을 유지하는 연습을 한다. '앵커'는 활줄을 당겨 오른손을 턱밑에 가져다 놓고 조준을 하는 상태를 이르는 말. 앵커 자세에서는 오른손을 턱밑에 닿게, 활줄은 코 가운데 닿도록 당긴다. TV에서 봤던 선수들의 모습처럼 활줄이 입술을 누른다. 활줄은 검지와 중지·약지를 함께 사용해서 잡는데 힘이 많이 걸리는 중지가 조금씩 아파온다.

화살의 길이는 약 1m 정도. 화살촉 부분은 유선형 금속 캡이 씌워져 있다. 화살의 반대편 끝에는 정확도를 높여주는 화살 깃 3개와 화살을 활줄에 끼울 수 있게끔 노크가 달려 있다. 화살의 무게는 매우 가벼웠다. 전통에 화살을 3대 넣고 다시 활을 잡았다.

이날 쓴 화살촉. 그다지 뾰족하지 않다. ⓒ 김동환

여기까지 익히면 비로소 활줄에 화살을 끼우고 활을 당겨 과녁에 쏠 수 있다.

5번 사대에서 자세를 잡고 활줄을 당겨 5m 앞에 있는 과녁을 조준했다. 조준 줄이 늘어나기 시작하자 부들거리는 왼팔과 함께 조준기가 흔들린다.

조준기를 골드 위치에 놓고 기회를 엿본다. 계속 흔들리는 조준기. 언제 활줄을 놓아야 할까. 머릿속이 하얘졌다.

활줄이 깊게 파고드는 오른손가락의 고통. 다분히 실용적인 나의 자세를 보고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는 동료는 어느새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다.

"10점을 맞추지 말고, 활과 자신을 맞추세요"

영학정 양궁장을 찾아 양궁 레슨을 받은 지 20여 분. 턱밑에서 첫 번째 화살이 발사됐다. 6점이다. '나도 이제 양궁인'이라는 뿌듯함과 가난한 점수에서 오는 실망감이 묘하게 교차한다.

10m 과녁에 6점. 이것이 이날 기자의 최고 점수였다. 활을 쏘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었지만 결국 '골드'에 화살이 맞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는 느껴보지 못했다.

짚을 뭉쳐 만든 과녁에 다가가 화살을 뽑으며 고개를 들어 멀리 있는 과녁들을 보았다. 올림픽 경기 규격인 70m 거리에 서 있는 과녁은 어디가 몇 점인지 그 경계도 잘 보이지 않았다. 올림픽에서 연거푸 골드에 화살을 명중시키던 양궁 선수들이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골드'에 집착하는 기자를 보고 지도를 맡았던 영학정 김정호(46) 코치가 "골드는 그리 중요한 게 아니다"라며 입을 뗀다.

"양궁 경기를 본 초등학교 학생들이 부모님과 함께 양궁장을 많이들 찾습니다. 그런데 부모님들이 가만보면 그래요. 아이가 6점·7점을 맞추면 가만히 계시다가 9점·10점을 맞춰야만 비로소 '잘했다'하며 박수를 치거든요. 양궁은 활과 자신을 맞춰가는 스포츠예요. 계속 하는 게 중요한데 그런 아이들은 으레 금방 그만두곤 합니다."

활을 여러 번 쏘고 화살과 활을 자신의 몸에 맞게 맞춰가는 과정에 즐거움이 있고 그게 잘 되면 자연스럽게 성적은 향상된다는 것. 순간의 성적보다는 활쏘기 자체를 즐기려는 마음자세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집중력 향상이나 오십견 예방, 상체 자세교정 같은 부수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데도, 70m 과녁까지 화살을 날리는 데도 대략 6개월 정도 걸린다"고 말하는 김정호 코치.

영학정 김정호 코치 ⓒ 김동환

그는 "지금은 기자들도 취재하러 많이 오고 일반인들 문의도 많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금방 양궁에 대한 관심도 수그러집니다, 쭉 그래왔어요"라고 씁쓸한 표정으로 말한다.

독일의 철학자 오이겐 헤리겔은 활쏘기를 직접 경험하고 쓴 저서 <활쏘기의 선>에서 '궁사는 화살을 자기 자신에게 쏘는 것이다'라고 기술한 바 있다. 이는 양궁이 단순한 스포츠를 넘어 정신 수양의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넘치는 업무들과 각종 목표에 치여 살아가는 현대인들. 갑갑한 빌딩 숲 속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려온 사람이라면 사방이 탁 트인 양궁장에서 과녁에 직접 화살을 날리며 머릿속을 비워 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의 손을 떠난 화살이 당신의 고민을 담고 시속 250㎞로 날아줄 것이다.

화살을 발사하기 직전의 자세는 이렇다. ⓒ 김동환


덧붙이는 글 김동환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영학정 양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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