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워낭소리>와 맹자의 곡속장, 차마 소의 눈물 볼 수가 없구나

현정부의 곡속 정치를 꿈꾸며

09.02.15 14:18최종업데이트09.02.15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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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아!'
'안 팔아!'

<워낭소리>의 늙은 소는 할아버지가 바라보는 거울 속의 또다른 자아였습니다. 할머니는 키울 능력도 없으면서 소를 키운다며 늙은 소를 팔라고 성화지만 할아버지는 팔 수가 없습니다.

마지막까지 생명의 의지를 다해 자신의 삶을 지탱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의 모습이 바로 할아버지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소와 같이 살았고, 소와 같이 살고자 하는 할아버지지의 소리 없는 의지가 그의 눈빛과 주름에서 느껴졌습니다.

영화 속에는 일관되게 과거와 현대, 느림과 빠름, 인간과 자본, 생태와 효율 등의 가치가 교차되고 있습니다. 연출자의 의도를 넘어 우리에게 주는 메세지는 반성과 반추와 돌이킴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영화의 막이 내려지며 두 가지 장면과 생각이 머리 속에 각인되어 맴돌았습니다.

▲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동행 그들은 다르지만 하나인 삶이었다. 성실한 것은 하늘의 도요, 성실해 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이다. ⓒ 인디스토리


하나는 소와 할아버지가 동행하며 걷는 모습입니다. 카메라가 그들의 무겁지만 하루하루 변함없이 똑같은 걸음을 크로즈업하며 비추었을 때, '성(誠)'을 떠올렸습니다. 성은 쉼없이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삶의 자세이자, 생명의 증거입니다. 중용에 보면 '성자천지도야(誠者天之道也) 성지자인지도야(誠之者人之道也)'의 구절이 있습니다. 성실한 것은 하늘의 도요, 성실해 지고자 노력하는 것은 인간의 도이다. 할아버지와 소의 동행에서 성실해지고자 하는 삶의 도를 봅니다.

▲ 늙은 소의 눈물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를 보며 측은한 마음을 느낀 양혜왕에게서 맹자는 왕도정치의 가능성을 말한다 ⓒ 인디스토리


또 하나는 소의 눈물입니다. 소의 눈물을 보며, 할아버지도 울었고 할머니도 울었고 나도 울었습니다. 소의 눈물에서 생명에 대한 측은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맹자의 양혜왕편에 보면 소의 눈물을 통해 정치를 일깨우는 '곡속장'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히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제나라 선왕(齊宣王)이 맹자에게 춘추전국시대의 패자인 제(齊)나라 환공(桓公)과 진(晋)나라 문공(文公)에 관해서 물었습니다. 맹자는 속임수와 무력을 앞세워 나라를 다스린 그들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고 하며 '왕도'를 말합니다. 그는 제 선왕에게 '백성을 보호하고 왕노릇을 한다면 막을 자가 없을 것'이라고 하지요. 제 선왕이 나도 그렇게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느냐고 묻자, 맹자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可)'라고 말합니다. 그 근거로 제나라 신하에게 들은 왕의 일화를 꺼냅니다.

"왕께서 당상에 낮아 계시는데, 소를 끌고 당하로 지나가는 자가 있었습니다. 왕께서는 이를 보시고 '소가 어디로 가는가?'하고 물으시자, 대답하기를 '장차 종(鐘)의 틈을 바르는데 쓰기 위해서입니다.'하였습니다. 왕께서 '놓아주어라. 내가 그 두려워 눈물을 흘리고 벌벌떨며 죄없이 사지로 끌려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다.'하였습니다" - <맹자> 양혜왕 편의 일부

여기에서 소를 도살해 쓰려는 것은 새로 종을 만든 후 그 틈새를 메우기 위해 소의 피를 바르기 위함입니다. 맹자는 이 일화를 통해 차마 함부로 할 수 없는 왕의 마음을 보았다고 말합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를 불쌍히 여기고, 측은하게 여겨 함부로 할 수 없는 왕의 마음에서 바로 왕도의 실마리를 확인한 것입니다. 

맹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무엇일까요? 바로 도살장에 끌려 가는 소의 눈물과 부들부들 떠는 모습에서 마음이 아팠듯이, 그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을 불쌍히 생각하고 그들을 측은히 여긴다면 바른 정치, 인과 의를 바탕으로 하는 왕도정치가 실현된다는 것입니다.

<워낭소리>는 이렇듯 우리의 본성을 확인시켜주고, 바른 정치의 바탕을 얘기해 주고 있지는 않을까요? 위정자들에게 워낭소리를 보여주면 어떨까요? 그들의 눈물에서 왕도 정치의 희망을 뽑아볼수는 없을까요? 위정자들의 위선적 눈물에 익숙한 세상이라고요? 하지만 어찌합니까. 희망이 없으면 삶, 미래도도 죽는 것을. 

맹자는 이어 왕도와 패도를 엄격히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힘으로써 백성들을 굴복시키고 다스리는 것이 패도이고, 왕이 인(仁)과 덕(德)을 행함으로써 백성의 마음을 감화시키고 참되게 복종하는 것을 왕도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왕도가 가능한 근거로 인간의 선한 본성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선한 본성의 실마리로 네가지 단서, 즉 '사단(四端)'을 말하지요. 맹자가 말하는 왕도정치가 비현실적이고 이상적이라는 비판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반추하며 우리가 꿈꾸는 사회가 '성'스런 사회가 될 지는 없을지언정, '정의'롭고 '인간'다운 사회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맹자의 사단을 빌어, 위정자에게 묻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서민의 힘겹고 치열한 삶에 대한 측은한 마음은 있습니까?(측은지심)
정부의 정책과 잘못에 대한 부끄러운 마음은 있습니까?(수오지심) 
권력을 국민에게 다시 돌려주고 싶은 사양의 마음은 있습니까?(사양지심)
국민의 삶과 미래를 위한 옳고 그름을 현명하게 분별하고 있습니까?(시비지심)

꼭 요즘 정치를 보면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와 똑같습니다.

'잘 해!'
'못 해!'

워낭소리 맹자 곡속장 정부 측은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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