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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어긋나 있어도 우리는 가족

어머니를 잃은 감독과 가족이 필요한 우리들에게

10.02.26 20:47최종업데이트10.02.26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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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걸어도 걸어도' ⓒ 걸어도걸어도

 

일본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촬영장에서 스탭들 몰래 어디론가 사라지곤 한다. 배우와 스탭들은 감독을 애타게 찾지만 한 두번이 아니라 이젠 너무나 익숙하다. 하염없이 실종된 감독이 나타나길 바랄 뿐. 그러다 나타난 감독은 '길을 잃어버렸다'며 천연덕스럽게 다시 영화에 임한다. 구름낀 하늘을 카메라에 담아달라고 한다.

 

영화 <환상의 빛>으로 데뷔해 1995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골든 오셀라상을 받고, 1998년도에 연출한 <원더풀 라이프>로 낭트삼대륙영화제 그랑프리, 제46회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FIPRESCI상을 수상하고, 각본을 쓴 지 15년 만에 <아무도 모른다>를 영화로 만들었다는 고레에다 감독. 그의 6번째 장편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눈부신 푸른 바다가 멋진 요코하마의 아담한 마을에서 그렇게 제작되기 시작한다.

 

지난 2009년 일본 주요 영화제 6관왕을 석관하며 전 세계 평단과 관객들을 사로잡은 걸작이라는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지난 5-6년 동안 부모를 잃고 그간 부모를 돌보지 못했던 장남으로서의 후회로 가득한 감독의 안타까움과 가족에 관한 영화다.

 

수많은 프로그램을 기획한 TV디렉터로 일하다 영화의 세계에 뛰어든 감독은 그간 픽션의 세계에 다큐멘터리 기법을 이용한 작품들을 선보여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감독은 사회적인 사건을 다룬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제작하기 이전부터 가족에 대한 영화를 마음속에 품어 왔었다 한다. 그리고 잠시 잊었던 것을 되살려, 어느 평범하기 그지 없는 한 가족의 여름날 하루를 담아냈다. 

 

특히 일본의 여느 가정에서 보일 법한 소소한 일상의 단편들을 자연스럽게 엮어 어색함이 없게 했다. 이를 위해 시나리오를 직접 쓴 감독은 배우들과 충분한 대본연습을 통해, 가족 구성원들이 자신의 캐릭터를 충분히 이해-토론하고 진지하게 연기할 수 있도록 했다.

 

<걸어도 걸어도>의 출연진들은 우선 주연으로 그간 코믹한 연기로 주목받은 아베 히로시를 비롯해, <도쿄타워>에서 오다기리 죠의 어머니 역을 맡은 배우경력 47년의 키키 키린 등 일본의 연기파 배우들이 한 가족으로 어울린다. 이에 불의의 사고로 가족들 곁을 일찍 떠난 장남과 비교당하는 게 싫었던 차남으로 진지한 연기를 보인 아베 히로시는, 이 영화를 위해 '기분이 좋아지지 않으려 노력했다'고 한다.

 

그래서 영화는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나 충실하다. 대본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나눠먹는 음식(옥수수튀김)과 장남의 죽음을 잊지 못하는 어머니의 옷차림, 소품 등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가며 감독은 자신이 그리고자 한 가족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장남의 기일에 오랜만에 만난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 요코야마 의원의 원장으로 오랜 세월 의사로 일하다 눈도 나빠지고 대형병원이 들어서 병원일을 그만둔 소심한 할아버지와 바다에 빠진 청년을 구하다 익사한 장남, 실직중인 것을 들키고 싶지 않아 거짓말을 하는, 미술 복원일을 하는 고지식한 차남, 옛남편과 사별한 뒤 4년만에 차남과 결혼한 착한 며느리, 장남 대신 살아남은 25살의 뚱뚱한 청년을 기일마다 불러 괴롭힌다고 고백한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를 닮은 딸 등등.

 

우리들의 인생은 늘 아주 조금씩 어긋나지만 가족이란 이름으로 한데 어울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기쁨이고 의미라는 것을 영화는 비탈진 언덕길과 추운 겨울을 견딘 노란 나비, 매미소리가 요란한 여름날에 녹아낸다.

 

감독과 배우, 스탭 모두가 한없이 즐겨워 보인 영화 <걸어도 걸어도>. 이번 주말 연휴 가족들과 함께 보면 어떨지?

 

영화 '걸어도 걸어도' ⓒ 걸어도걸어도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2.26 20:47 ⓒ 2010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뷰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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