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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 재즈 음악가, 17번 한국 방문한 이유

흥미로운 소재·음악적 감동과 환희 담은 <땡큐, 마스터 킴>

10.09.05 14:16최종업데이트10.09.0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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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이먼 바커 재즈 아티스트 사이먼 바커는 한국의 별신굿 영상을 보고 커다란 음악적 충격에 빠진다. 특히 김석출 선생의 장구에 푹 빠진다. ⓒ 땡큐 마스터 킴


출중한 실력을 지닌 호주 최고의 재즈 드러머 사이먼 바커. 그는 우연히 낯선 음악을 듣고 큰 충격을 받는다. 세상 어느 곳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독특하고 위대한 음악이었다. 그 음악을 듣는 순간 그의 시간은 멈추어 버리고, 그의 음악 인생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마치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난 파우스트처럼!

'파우스트' 사이먼 바커의 운명을 크게 뒤흔든 '메피스토펠레스'는 바로 우리의 무형문화재 82호 기능 보유자이자 무속인 김석출. 사이먼 바커는 김석출 선생을 찾아가 배우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위대한 예술가를 누구나 알 거라고 생각했지만 아무도 그를 모르는 것이 아닌가!

음악의 대가를 찾기 위해 7년간 17번이나 한국 방문

그 사건 이후 그는 홀린 사람처럼 그 음악의 주인공을 찾기 위해 무려 7년 동안 17번이나 한국을 방문한다. <땡큐, 마스터 킴>(엠마 프란츠 감독)은 한국의 위대한 예술가 김석출을 찾는 일에 큰 진전이 생긴 17번째 여정을 담은 로드 음악 다큐멘터리다.

▲ <땡큐 마스터 킴> 포스터 왼쪽은 한국의 포스터, 오른쪽은 호주의 포스터 ⓒ 땡큐 마스터 킴


이 다큐멘터리는 흥미로운 소재, 깊은 울림을 주는 음악의 향연, 나지막하게 퍼지는 이들의 치열한 삶의 흔적과 열정, 그리고 음악과 어울리는 빼어난 영상이 큰 미덕이다.

사이먼 바커의 17번째 여행은 김덕수 사물놀이패 출신의 국악인 김동원(원광대 전통공연예술학과 교수)을 만나면서 시작된다. 그런데 김동원이 사이먼 바커와 연결을 해 주기로 한 김석출 선생은 병중이라 당분간 만날 수가 없다. 그는 이미 84세의 고령이었던 것이다.

대신 김동원은 사이먼 바커에게 우리 음악의 다른 대가들을 소개한다. 그리고 이들 대가들은 김석출을 찾아가는 여정의 '다리'가 된다.

진정성으로 우리 소리의 깊은 울림 담아

이 다큐멘터리에서 압권은 역시 음악이다. 명창 배일동의 하늘을 찌를 듯한 우렁차고 통쾌한 소리, 박병천의 혼을 사로잡는 구음, 진유림의 심장을 두드리는 오고무, 신들린 듯한 김석출의 장단을 흩트리는 장단 등. 우리 전통 음악의 대가들을 만나는 것은 형언키 어려운 음악적 감동과 환희를 준다.

▲ 국악의 명인 박병천 장구 장단과 함께 영혼을 울리는 깊은 구음은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의 큰 감동을 준다. ⓒ 땡큐 마스터 킴


<땡큐, 마스터 킴>이 담아낸 이들의 음악은 너무나 훌륭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지금까지도 가슴 설레며 머리털이 곤두설 정도다. 상상을 초월하는 연습을 통해 쌓은 기량과 엄청난 에너지, 복잡한 기교를 구사하는 그들의 즉흥 연주는 가히 세계 일품이라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음악적 기량을 쌓아나가는 과정의 치열함도 크나큰 감동을 준다. 특히 소리꾼 배일동은 수년째 폭포 옆에서 먹고 자면서 소리를 갈고 다듬는다. 선암사 계곡에서 2년, 지리산 달궁 계곡에서 5년이다. 삶의 모든 것을 버린 채 그토록 오래도록 독공 수련을 하는 것은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다.

그는 산열매를 따먹으며 밤낮없이 홀로 혹독한 수련을 하며, 그 과정에서 자신만의 소리를 찾아간다. 그에게는 소리만이 삶의 모든 것으로 보이며, 그의 삶 자체가 경이로움으로 다가온다. 이 다큐멘터리가 대중적 인지도가 있거나 명망이 있는 이가 아니라 당시 무명이던 '숨은 명창'을 찾아 영상에 담았다는 점에서 진정성이 돋보이기도 한다.

▲ 명창 배일동 다큐에서 가장 큰 인상을 남기는 명인이다. ⓒ 땡큐 마스터 킴


우리가 모르는 우리 음악의 위대함 깨닫게 해

한국 전통 음악의 또다른 대가들과 만나는 사이 사이먼 바커가 고대하는 김석출 선생을 만날 기회가 찾아온다. 사이먼 바커는 어렵사리 김석출 선생을 만나 그에게 배움을 요청한다. 김석출 선생은 흔쾌히 사이먼 바커를 가르치겠다고 답한다.

그러나 그에게 사사하고자 했던 사이먼 바커의 열망은 아쉽게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김석출 선생은 그와 만난 지 3일 만에 다른 세상으로 떠나고 만다. 절로 아쉬움의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한국 전통 음악가와 호주 재즈 음악가의 만남으로 이루어진 결실은 아름답다. 한-호 문화교류 프로젝트 그룹 '다오름'을 낳았기 때문이다. 비록 김석출 선생에게 직접 배우지는 못했지만, 사이먼 바커는 소리꾼 배일동 등과 함께 새로운 음악 세계를 펼친다. 앞으로 이들의 음악적 성과가 기대된다.

<땡큐, 마스터 킴>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번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했으며, 이집트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캐나다 핫독스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등에서 상영되어 호평을 얻었다고 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흔치 않은 완성도를 보여 주며, 우리가 몰랐던 우리 음악의 감동과 환희를 깨닫게 해 의미가 크다.

▲ 다오름 호주 재즈 아티스트 사이먼 바커와 국악인 배일동 등은 한-호 문화교류 프로젝트 그룹 다오름을 결성해 수준 있는 퓨전 음악의 세계를 보여 준다. ⓒ 땡큐 마스터 킴


전통 음악의 현실 돌아보길

9월 2일 개봉한 이 다큐멘터리는 강렬한 매력으로 사람들 사이에 회자될 것이 기대된다. 그래서 한편 이 다큐멘터리를 볼 관객들의 반응이 벌써부터 염려스럽기도 하다.

언제나 그랬듯이 관객들은 이를 보고 '문화적 자긍심'이니 '서양인이 인정한 민족 음악의 우수성' 등이니 하는 언사를 남발할 것이다. 특히나 언론에서 말이다. 그러나 그런 언사를 남발하는 것은 음악학적으로 봐도 맞지 않는 무지의 소치일 뿐만 아니라, 전통 음악을 풍성하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민족적 자긍심을 갖는 것에 이 다큐멘터리를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찰이 아닐까. 이 다큐멘터리를 호주 감독이 맡고 일본의 NHK가 후원 제작했다는 사실, 나아가 우리 음악의 저변 상실 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신비적 포장 넘어, 전통 음악을 설명할 음악 언어 개발해야
<땡큐, 마스터 킴>은 우리 음악을 설명할 음악 언어를 개발할 필요도 느끼게 한다. 이 다큐는 기(氣), 도(道), 음양, 신명 등 우리 소리에 담겨 있는 삶과 철학 개념들로 우리 음악을 풀어나간다. 그것은 우리 전통 음악인들의 의식을 반영한 것이다. 이를테면, 소리꾼 배일동은 자신의 수련을 다음처럼 설명한다.

"음은 계곡이고, 양은 산입니다. 폭포는 음과 양이 바로 만나는 지점이지요. 폭포에 살면서 음양의 기를 끌어당겼던 것 같아요."

경우에 따라선 동양 철학의 개념으로 구성한 점이나 이런 설명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테다. 그러나 여기엔 함정이 있다. 음악은 음악 언어로 설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이미 주어져 있는 두루뭉술한 동양 철학의 개념을 빌려와 치장하는 것은 신비주의로 무장하게 될 뿐이다.

국악의 명인들이 보여 주는 예술의 위대함은 직접 체험해 보지 않고는 말로 표현하기 무척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의 음악을 설명할 개념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낭만적 신비로 무장해 버리면 음악학의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예를 들어, 우리에게 판소리를 채보할 수 있는 기보법조차 없다는 것도 문제다. 서구의 5선보는 판소리를 채보하기에 적절하지 않다. 기교가 다른 판소리를 서구의 5선보에 담기는 무척 힘들다.

세종대왕이 만든 전통적인 기보법인 정간보도 그렇다. 정간보는 궁중 음악에 있어서는 서양의 5선 기보법보다 훌륭한 기보법이 되어 주지만, 민속 음악인 판소리를 채보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판소리를 채보할 독자적인 기보법의 개발이 필요하다. 마냥 낭만적 신비로 우리 음악을 포장하는 데 익숙해져 버리면 이런 필요에 대해 게으름으로 대응하게 된다.

<땡큐, 마스터 킴>에 비치는 국악의 신비적 포장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은 이유다. 우리 음악에 대한 신비주의는 음악 언어의 개발, 우리에게 필요한 음악학의 발전을 막는 함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봐야 할 것이다. <땡큐, 마스터 킴>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를 남긴다는 점에서도 무척 훌륭한 다큐다.

땡큐 마스터 킴 김동원 배일동 사이먼 바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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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9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2002년, 오마이뉴스 2.22상 수상 2003~2004년, 클럽기자 활동 2008~2016년 3월, 출판 편집자. 2017년 5월, 이달의 뉴스게릴라 선정. 자유기고가. tmfprlansgh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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