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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의 물고 물리는 거래 <부당거래>

영화 <부당거래>와의 '정당거래'- 부당거래 리뷰

10.10.30 20:23최종업데이트10.10.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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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승완 감독의 신작 <부당거래>에는 착한 사람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정말이다. 온통 나쁜 놈이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연쇄살인범만이 나쁜 놈이 아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압박을 주자 가짜 범인을 잡아들이는 연극을 하자고 하는 경찰 쪽 사람들이나, 그 이벤트에 필요한 범인을 섭외하는 조폭 출신 건설업계 사람들이나, 만들어진 배우를 앞에 둔 검사나 모조리 나쁜 놈들뿐이다. 누가 착한 놈인지는 찾을 기대도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한다. 누가 더 나쁜 놈인지도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어차피 똑같이 나쁜 놈일 뿐이다.

나쁜 놈, 비열한 놈, 악랄한 놈들의 승부

비경찰대 출신이라 빽도 없고 줄도 없는 강철기 반장(황정민 분)은 일이 실패했을 때 가지치기 편하다는 이유로 가짜 범인, 즉 '배우'를 세우는 이 일의 적임자로 선택된다. 건설업계의 큰 손 태광 회장의 입찰 비리를 봐주지 않고 수사하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철기는 대국민을 속이는 이벤트를 하기로 한다. 철기의 일을 돕기로 하는 조폭 출신의 해동건설 대표이사 장석구(유해진 분)도, 자신의 스폰서인 태광의 회장을 털었다는 이유로 철기를 주시하고 있는 주양 검사(류승범 분)도 눈앞의 사람에게 웃으면서 뒤로는 일이 잘못되었을 때를 대비한 '보험'을 들어놓는 것을 잊지 않는 비열한 놈들이다.

물고 물리는 이들의 거래는 하나같이 부당하다. 먹고 먹히는 먹이 사슬에서 살아남기 위해 끝없이 서로 부당한 거래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사람을 해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철기의 부당한 거래는 단지 승진하고 싶어서만은 아니다. 실은 자신을 이름을 팔아 돈을 받은 매제 때문에 하지 않을 수 없다. 주양 역시 검사로서 권력을 잡으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스폰을 받고 있는 자신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서 더 큰 죄를 저지른다. 모두들 상황에 따라 이놈과 손잡고 저놈의 뒤통수를 친다. 죄책감 같은 건 없다. 어차피 저 놈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

영화는 지독히도 악랄한 캐릭터들의 향연으로 한결 같이 나쁘기에 매력적이다. 극 중 주양이 이 자식들 멋있다고 감탄하듯이 정말로 모두들 멋졌다. 연기력을 인정받은 류승범, 황정민, 유해진 세 배우가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큰 기대감을 주었는데 결코 실망시키지 않았다. 자신에게 꼭 맞는 옷을 입은 것 같은 황정민이나 유해진의 턱이 떨리는 미세한 연기도 좋았지만 단연코 이 영화의 최고는 류승범이었다. 그동안의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맡아 보지 못했던 엘리트 역할. 검사로 신분은 상승했지만 인격은 전혀 상승하지 못한 캐릭터. 류승범은 결코 코믹하지 않은 상황에서 리얼리티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웃음을 유발시키는 탁월한 재능을 보여준다. 교양 있는 척 말하면서 내면의 분노를 표현하는 다양한 장면에서 무거운 분위기를 무겁지만은 않게 만들어 준다.

주연배우들뿐만이 아니라 조연배우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충분히 해준다. 철기의 매제 역의 송새벽이나 후배인 마동석, 주양의 부장검사 역의 이성민이나 사무관을 맡은 정만식 등은 영화의 적재적소에서 웃음과 긴장감을 준다. 

거의 두 시간인 러닝타임이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마치 진흙탕에 풀어놓은 개들의 싸움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물고 뜯는, 한 번 물면 봐주지 않는 개들. 정글 같은 현대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들의 몸부림이 조금은 쓸쓸하기도 했다. 단지 영화일 뿐이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자각 때문만은 아니었다. 개새끼라고 욕하기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 우리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사과하기보다 다른 사람의 흠을 찾는다. 다른 사람을 밟아야 내가 설 수 있다. 내가 잘되려면 남이 못 돼야 한다. 남을 못 되게 만들어야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파 하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탈법을 해서라도 사촌을 불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철기에겐 가족과 같은 그나마 가장 선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는 대호(마동석 분)조차 오락실로부터 돈을 받고 그들의 불법을 눈감아 주고 있다. 그건 대호의 말처럼 옳지 못한 일도 아니고 그냥 잠시 빌려 쓰는 대수롭지 않은 일일 뿐이다. 학연, 지연, 다양한 '연緣' 때문에 밀어주고 끌어주고, 아닌 사람은 밀어내고 밟아주고 자신의 욕망을 좇기 바쁜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그 정도는 애교일 뿐이다.

'액션만' 잘 다루는 게 아니라 '드라마'도 잘 만드는 감독

그동안 전작을 통해 스스로 액션키드라고 말하듯 액션에 재능을 보여 온 류승완 감독은 이번 영화를 통해 액션만이 아니라 드라마도 잘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경찰 내부의 파벌 문제, 검찰-경찰의 마찰 문제, 검사와 스폰서 문제 등을 정면 돌파하면서도 재미와 볼거리를 놓치지 않고 있다. 피 튀기거나 스퍽터클한 액션이 없어도 충분히 볼 만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영화는 나쁜 놈이 반성을 해서 착한 놈이 되거나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끝이 난다. 부당한 거래를 했던 놈들이 다치거나 죽는다고 해도, 여전히 벌 받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도 나온다. 겁이 많아서 검사가 되었다는 주양처럼 오래 살려면 검사를 해야 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부당거래>를 보고 나온다면 감독, 배우를 비롯한 모든 스텝과 '정당거래'를 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부당거래와의 정당한 거래를 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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