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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 관객에게 잔잔한 동(洞)을 전하다

[리뷰] <혜화,동>을 보고

11.03.03 11:10최종업데이트11.03.03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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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운 겨울, 혜화(유다인 역)는 재개발 공사가 한창인 곳에서 유기견을 찾는다. 유달리 주인 없는 개들에게 애착을 가진 그녀, 그냥 보기엔 동정 그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녀의 깊은 표정에는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혜화의 주변을 배회하는 한 수줍은 청년이 나타나고 평화로운 일상을 보내던 혜화에게 가슴이 무너지는 사연이 밝혀지는데....

2011년 시작한 지 고작 2개월이지만, 벌써부터 '올해의 발견'이라는 수식어를 서슴지 않는 작품이 나타났다. 바로 <혜화, 동>. 제목 독특하다. '혜화'는 주인공 이름이라고 이해하겠어, 그런데 동은 뭐야? 영화의 배경이 되는 "겨울" 冬 자를 뜻하는 건지, 아님 유기견을 보면서 자신의 옛 과거와[?] 동일시하는 그 同을 나타내는 건지.

영화는 두 가지 구조로 이야기한다. 유기견을 찾아해메는 혜화와 한수와의 아픈 과거. 그 과거에는 원치 않은 아이를 임신, 키울 수 없었던 슬픈 사연이 있다. 엄마는 아이를 두려워하고, 아빠는 도망가고 두 할머니는 이 아이를 자신의 자식들 인생에 지우려고 한다. 그런 상처 투성이 속 혜화와 한수는 안타까운 성장을 하고 몇 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난 것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영화의 제목 <혜화, 동>은, 겨울보다는 혜화의 슬픈 과거를 상징하는 유기견과 그녀 사이의 모습을 동일시하는 구조의 "동"으로 말하는 듯 하다.

혜화는 자신의 아픈 상처를 유기견과 동일시해[?] 스스로 치유하려고 노력한다 ⓒ 비밀의 화원(제작), (주)인디스토리(배급)


하지만 영화는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형식적으로 살짝 아쉬운 점이 드러난다. 충분히 좋은 작품인 것은 인정하나, 과연 "올해의 발견"이라고 극찬을 할 작품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독립영화의 시스템에서 어쩔 수 없다고 양보해도 <혜화, 동>은 어떤 영화적 도전이 없다. 차분한 드라마 사이 주인공 혜화에게 모든 걸 걸어 영화에 대한 형식적 고민보다는 오히려 안전한 단막극으로 몸 사리는 움직임이 더 보인다. 물론 그런 흐름이 작품의 치명적 실수를 남기거나 하지는 않지만 원톱 '드라마'의 한계 속 가끔 클라이맥스를 놓쳐 감정을 길게 끄는 지루함이 동반된다.

하지만 영화는 후반부 꽤 괜찮은 역전을 한다. 평균수준의 단막극에서 여러 가지를 고심한 영화적 이야기를 선보여 주인공 혜화와 한수,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모든 인간 관계와 사회적인 성찰을 요구한다. 약간의 억지성은 있지만 그 이야기 속 혜화를 짓누르고 있던 어떤 것을 폭발시켜 큰 흡입력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혜화,동>은 가장 센티멘탈적인 사회 성찰 드라마다. 혜화, 한수는 큰 실수를 저질렀고, 그들이 하는 행동에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선택들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비난하기 보다는 왜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지 드문 보이는 사회 시스템의 무관심이 아쉽고, 불합리한 요소들을 은근 슬쩍 꺼내 조용한 반성이 계속된다. 서정적인 피아노 반주 속에 캐릭터의 심리들이 조금씩 드러날 때쯤 <혜화,동>은 잔잔하지만 깊은 주제의식으로 관객의 마음과 "동"한다.

결국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주인공 혜화는 영화의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가 영화를 지배하고 이끈다. <블랙스완>의 나탈리 포트만이 저돌적으로 영화를 이끌어 간다면, <혜화,동>의 혜화는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며 또박또박 영화가 가지는 주제를 드러낸다.

다소 그녀의 마지막 선택이 너무 감성적이지 않나 생각 하지만 주인공 혜화를 통해, <혜화,동>은 어떤 장르적 재미나 일차적 감정을 넘어 영화 속 상처의 곪음 속에 재시작을 두려워 한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그때의 혜화 "동"은 상처로 얼어붙은 마음속의 겨울 冬(동)을 지나 희망을 짐작하는 다음의 봄으로, 다시 한 번 관객의 마음 속 잔잔한 洞(동)을 전한다.

한수야, 이제는 도망가지 말고, 우리 "혜화"를 부탁해 ⓒ 비밀의 화원(제작), (주)인디스토리(배급)


혜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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