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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굴의 며느리> 19세 미혼모가 답답했다고?

'19세 미혼모 김순정' 김준형, "아플 땐 철저히 아파야"

11.09.16 08:21최종업데이트11.09.1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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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일일드라마 <불굴의 며느리>에서 만월당 막내딸 김순정 역할을 맡은 배우 김준형. ⓒ 이정민

대학생들이 개강을 맞은 지 보름 여가 지났다. 개강을 맞은 대학가는 여느 때보다 분주한 풍경일 것이다. 방학동안 쉽게 보지 못했던 친구들과 회포를 풀려는 이들로 넘쳐나기 때문이다.

그 어떤 행동도 허락될 것만 같은 청춘들의 틈에서, 어느 자리에도 얼굴을 비추지 못한 채 홀로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여자 아이가 있다. 

이 아이, 김순정의 나이 고작 19살. 그라고 친구들처럼 함께 밤늦도록 웃고 떠들며 놀고 싶지 않을까. 서로 깊이 사랑한다 생각해 마지않았던 남자친구의 '배신'으로 졸지에 미혼모가 되어 버린 아이는 이제 뱃속 아이 '별이'를 위해 누구보다 강한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주위 따가운 눈초리에도 아랑곳 않고 다시 학교로도 돌아갔다.

MBC 일일드라마 <불굴의 며느리>에서 영심(신애라 분)이 신우(박윤재 분)와의 사이를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진우(이훈 분)를 둘러싸고 혜원(강경헌 분)과 세령(전익령 분)이 팽팽히 대립하고 있는 와중에도 순정은 이렇게 묵묵히 자신과의 싸움을 벌여왔는지도 모른다. 그 '순정'을 연기하고 있는 신인배우 김준형을 만났다.

'만월당에 피어난 들꽃처럼 연기하라'

"힘들었어요. 힘든 것보다, 어려웠어요. 드라마 시놉시스를 받기 전에는 미혼모에 대해 '어떻게 저렇게 힘들게 사냐'는 생각에 연민과 동정의 마음만 있었지 '내가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었거든요."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를 낳겠다는 결심을 한 아이'. 바로 <불굴의 며느리>의 순정이다. 처음 시놉시스를 받고 김준형은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역할에 '어떻게 순정이에게 접근하지'라는 생각이 앞섰다. 김준형은 "인물과 동일한 면이 있어야 연기하기가 쉬운데, 달랐기 때문에 더더욱 이해하는 게 중요했던 것 같다"며 "일단 미혼모를 다룬 영화나 책, 다큐멘터리는 다 찾아봤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임에도 어떤 생각으로 아이를 낳으려고 하는지 이해하게 됐다고는 생각해요. 그럼 이제는 순정이가 돼서 연기를 해야 하는데, 제 배 안에 아이가 있다고 아무리 생각을 해도 실제로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조언을 얻어 일부러 단화도 신고, 옷도 편하게 입고. 몸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세한 데 주의를 기울이며 하나하나 만들어 가고 있어요. 대본 안에서 어떤 감정으로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하는지도 공부하고, 채워가며 연기해야죠."

SBS <당돌한 여자>(2010)로 안방극장에 발을 들였지만, 김준형에게 <불굴의 며느리>는 사실상 자신의 얼굴을 본격적으로 알리는 첫 기회다. 그래서 김준형은 더더욱 자신의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김준형이 이해하고 있는 '김순정'은 어떤 인물일까.

"일단 그 남자를 너무 좋아했죠.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에 대한 환상을 만들잖아요. 그랬는데 그 남자가 180도 변한 모습에서 상처를 받았을 거에요. 게다가 처음엔 가족까지 순정이 편이 아니었으니까요. 힘든 순간에 처했을 때 순정이 편에 서 줄 수 있는 사람은 아기였다고 생각해요. 종갓집 막내딸로 사랑을 많이 받았을 것 같지만, 사실 아빠 없이 지내면서 마냥 사랑을 받았을 것만 같진 않아요.

감독님께서 '만월당에 피어난 들꽃처럼 연기하라'는 말씀을 해 주신 적이 있어요. 아마 순정이는 어렸을 적부터 어른스러워서 어머니 말씀에 항상 순종하고, 혼자 머리도 빗고 옷도 챙겨 입고 학교를 다녔을 것 같아요. 그런 아이에게 찾아온 생명은 많은 식구들 속에 살았지만 2% 채워지지 않았던 외로움이나 사랑을 채워줄 수 있는 존재인 거죠. 그래서 순정이는 '뱃속의 아기가 정말 나를 잘 알고 내 편이 되어줄 것 같은 유일한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리하여, <불굴의 며느리>는 순정의 성장담이다

여기까지 쉼 없이 이야기하는 김준형의 표정에서 누구보다 자신의 배역에 대해 숱하게 고민했을 나날들을 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살면서 경험했던 것을 연기로 표현할 때에도 많은 이들이 어려움을 겪는데, '겪어보지 못한 일'을 실제로 겪는 것처럼 선보이기까진 얼마나 많은 고민을 거쳐야만 했을까.

그런 고민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순정이가 있을 수 있었다. "시청자 게시판에 '순정이 떄문에 짜증난다'는 말도 있더라"는 그의 말처럼, 시청자의 눈에는 일면 순정이의 모습이 답답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김준형은 "순정이의 행복한 결말을 위해선 아플 땐 철저히 아파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의 미니홈피에 "결코 잘 쌓아올린 공든 탑은 한 번에 와르르 무너지지 않을 거야"라고 적은 것도 극중 순정이의 이야기 전개와 무관하지 않다.

"사실 드라마 초반부터 대본 지문에 '우울한 순정이'가 많았어요. 그래서 저도 '어떻게 맨날 똑같아, 아이가 자라면서 감정도 달라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마지막에 순정이의 행복한 결말을 위해선 오히려 아플 땐 철저히 아파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단히 바닥을 잘 쌓아올리면 나중에 행복하고 강단 있는 모습이 입체적으로 보일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쟤 삶도 꽃이 피는구나'하고요. 지금은 슬픔을 더 간직하면서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야 나중에 행복하게 짓는 미소도 더욱 의미 있는 미소가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유난히 답답한 캐릭터'와 같은 게 배우의 계산 때문이었다니, 배우의 영리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시청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김준형이라는 배우가 이끄는 대로 순정이의 성장을 쫓아가는 것이 되겠다. 때로는 답답한 순정이에게 "으이구, 이 바보야"라고 화도 내다가, 점점 더 '어머니'의 면모를 갖춰가는 순정이를 응원하기도 하면서.

최근 출판된 한 소설에, "자식을 낳는 것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생을 다시 한 번 살기 위해서다"라는 구절이 있다. 부모는 자식을 기르며 다시 한 번 삶을 살고, 그러면서 성숙해져 간다는 의미에서다. <불굴의 며느리>의 순정이에게도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불굴의 며느리>는 한편으로 19세 순정이의 성장담이기도 한 것이다.

불굴의 며느리 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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